한여름의 아침에 피는 나팔꽃
한여름의 아침에 피는 나팔꽃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0.08.14 08: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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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의 ‘풀꽃나무 타령’ 26]
▲나팔꽃.   ⓒ송홍선

나팔꽃은 꽃 모양이 나팔처럼 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 땅에서는 관상용으로 널리 심고 있지만 원래 씨를 약으로 쓰기 위해 도입한 식물이다.
민간이나 한방에서는 씨가 소 한 마리와 맞바꿀 정도로 약효가 탁월하다고 하여 견우자(牽牛子)로 부른다.

씨는 부종, 수종, 요통, 태독 등에 약재로 썼다. 또한 천식이나 허탈 증세에 달여 먹었으며, 종기 등에는 검게 태운 씨를 가루로 만들어 참기름에 이겨서 발랐다.

나팔꽃은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에도 더위 따위에 아랑곳없이 싱싱하고 탐스런 꽃이 핀다.
꽃빛깔은 적자색, 흰빛 등 다양하며, 품종 역시 남색에 흰빛 테두리 또는 흰빛에 남색 테두리의 꽃 등 각양각색의 1,000여 종류가 알려져 있다.

씨의 빛깔은 보통 검은빛이지만, 흰빛의 꽃이 피는 품종의 씨는 황백색을 띠기도 한다.

나팔꽃은 흔히 아침의 영광(morning glory)으로 부른다. 아침 일찍 화려한 꽃이 피기 때문이다. 꽃은 햇빛이 강한 정오가 다가오면 꽃잎을 오므린다. 따라서 저녁에 지는 꽃이 아니라 정오에 지는 꽃이다.
일본 격언의 ‘나팔꽃도 한 때’는 덧없이 빛나는 아름다움을 뜻한다.

나팔꽃은 유럽에서 용기와 힘을 상징한다. 또한 아침에 피는 나팔꽃은 호주 등 일부 나라에서 새벽의 힘찬 남자의 발기를 묘사하기도 한다. 프랑스에서는 나팔꽃을 ‘한낮의 미녀’라 하여 아름다운 여자를 비유한다.

반면에 나팔꽃은 변화가 많고 빨리 시들기 때문에 부인들이 좋아하지 않는 꽃이기도 하다. 예컨대 나팔꽃은 붉은빛의 꽃씨를 뿌렸으나 다른 빛깔의 꽃이 피는 등 변화가 많다.

▲흰나팔꽃.   ⓒ송홍선

나팔꽃은 최근 학교에서 실험재료나 대기오염 측정도구로 유용하게 쓰고 있다.

나팔꽃은 옆에 장대를 세워 놓으면 덩굴을 뻗어 장대를 감아 올라간다. 덩굴은 반드시 시계 반대방향으로 감긴다. 덩굴의 끝을 시계방향으로 돌려서 장대와 묶어 놓아도 다음날에는 고집스럽게 방향을 바꾼다.

나팔꽃의 잎은 미량의 대기오염 물질, 즉 오존(ozone, O3), 이산화항(SO2), 옥시던트(oxydant) 등에 민감하게 반응해 잎의 앞면에 무늬를 만든다. 나팔꽃은 덩굴밑쪽 잎이 피해를 받아도 위쪽 잎은 꾸준히 자라기 때문에 오염물질이 계속 방출되는 곳에 놓아두면 시간에 따른 오염 정도를 알아낼 수 있다.

예컨대 잘 알려진 나팔꽃 품종의 스카렛 오하라(scarlett o'hara)는 옥시던트 농도가 0.06ppm만 돼도 민감하게 반응해 잎에 무늬를 나타내기 시작한다.

한편 나팔꽃의 탄생화 이야기는 이렇다.

옛날 어느 고을의 원님은 아름다운 남의 부인을 빼앗을 궁리를 했다. 원님은 화가의 부인을 감옥 같은 곳으로 유인해 유혹했다. 그러나 그녀는 원님의 유혹을 한사코 뿌리쳤다. 남편인 화가는 부인을 그리워하며 날마다 그림을 그렸다.

어느 날 화가는 아내가 갇혀있는 감옥으로 가서 담장 밑에다 그림을 파묻은 후 땅을 치며 하염없이 통곡을 하다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그런데 그 후 부인은 밤마다 남편이 나타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러던 어느 날 창밖을 내다보던 부인은 창살에 매달려 자라는 풀이 마치 자기를 부르는 것 같아 깜짝 놀랐다. 이 풀은 얼마 안 있어 꽃이 피었다. 꽃은 남편이 그림을 그리다가 쉬고 있을 때 불었던 나팔을 닮았다.

부인은 그 꽃을 남편의 넋으로 생각하며 통곡했다. 사람들은 화가가 불던 나팔을 닮은 이 꽃을 나팔꽃이라 불렀다.

이 이야기는 결속, 기쁨, 허무한 사랑 등의 꽃말 중 허무한 사랑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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