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영롱한 유리예술로 치유한 음유시인
상처를 영롱한 유리예술로 치유한 음유시인
  • 정민희 논설위원
  • 승인 2011.09.21 1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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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희의 마음으로 미술읽기] ③

현대 건축은 오픈 스페이스인 보이드(void)공간을 설치하는 상업공간이 증가하고 있다. 인테리어 요소로 보아서는 절대 안 되겠지만 공간의 품격을 높여주거나 감성으로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공중에 매달거나 몇 층 높이의 공간을 구성해주는 설치미술작품을 설치하곤 한다.

상품이나 공간의 특성에 꼭 맞는 작품이 설치되는 경우가 드문데 얼마전 명품멀티숍 ‘Boondershop’에 500개의 유리구슬로 꿰어진 4층높이의 아이보리 대형목걸이가 설치되었다. 고급스러운 내부 공간에 쓰여 진 무채색 컬러와 매치가 잘되며 ‘패션’이라는 아이템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주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설치미술로 보였다.

한국과는 인연이 깊지 않았고 새롭게 소개된 영롱하고 아름다운, 또 진귀함으로 간주되는 소형 장신구를 건축적 스케일로 확장시켜 대면하는 방식을 보여준 눈길 끄는 설치미술이었다.

프랑스 중심가 지하철 역에 설치되어 파리의 이정표가 되다시피 한 공공프로젝트 ‘야행자들의 키오스크’(2000)의 작가이자 프랑스 현대 조형미술의 대표작가 ‘장-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의 회고전 ’My way’ 전시를 지난 3월 프랑스 퐁피두센터 이후 첫 세계 순회전으로 서울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후 도쿄의 하라 현대미술관, 2012년 여름에는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으로 순회할 예정이다.

로댕 ‘깔레의 시민’과 함께 글래스 파빌리온에 설치된 ‘라캉의 매듭’

유리라는 아름다운 매체는 현대미술의 형식주의나 개념미술을 탈피해 공간과의 조화로서만 다소 상업 작가로 보여 질 수 있지만 이번 회고전을 통해 보여준 설치, 드로잉, 비디오 퍼포먼스 보면서 20여년간 그의 작품 세계에서의 파노라마는 고통과 상처를 극복해나가는 자전적 삶을 반영한 진지한 주제의식에서 깊은 감동을 이끌어 낸다.

어린 시절 사제의 길을 꿈꾸던 한 남성을 사랑한 오토니엘은 그 연인의 비극적 죽음으로 인해 자신의 예술적 운명이 결정되었다. 떠나간 연인에 대한 애도와 자신의 치유 행위로 부재하는 신체에 대한 집착 등 초기작품은 은밀하고도 시적이다.

이 작업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환상의 세계를 유황, 인, 왁스, 유리와 같이 예측할 수 없는 민감한 재료에 의해 완성된다.

소원을 비는 벽. 성냥개비를 이용해 관객들이 참여하는 퍼포먼스

1995년 베를린에서 처음 소개된 ‘소원을 비는 벽’은 작가의 실험적인 초기 작업에서 대규모 유리 설치작업을 시기적으로 구분하는 전환점의 작업이다.

대규모 벽면에 관객들이 표면에 불을 붙이고 소원을 빌고 ‘상처’의 흔적들이 기념비적인 드로잉으로 재탄생되는 퍼포먼스로 작가와 관객사이의 친밀한 교감을 유도하며 ‘치유’의 과정을 선사한다.

오토니엘은 ‘나의 모든 작품은 자화상이다’라고 말했다.

“첫 번째 자화상은 절망의 노래였다. 나는 예술계에서 나를 드러내고 그로부터 구조되는 기회를 잡았다”라고.

11월 27일까지. 삼성미술관 PLATEAU. 1577-7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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