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더께 앉은 풍경 간직한‘종 삼’의 공원
세월 더께 앉은 풍경 간직한‘종 삼’의 공원
  • 양재호 인턴기자
  • 승인 2011.09.30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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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공원] 탑골공원의 한가로운 가을날
▲ 탑골공원 팔각정에서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서울 근현대사의 자취가 완전히 지 워지지 않은 종로3가에 오래된 공원 이 있다.

90여 년 전 기미독립만세운동이 시 작됐던 탑골공원, 옛 이름은 파고다 공원이었다.

지금은 전매청의 ‘파고다담배’를 기 억하는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가을 볕 아래 담소를 나눈다. 공원 이름의 유래인 원각사석탑은 보존을 위해 유 리장 안에 갖힌 신세가 됐다.

원각사탑은 유리장 안에서 세상을 보지만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종로의 하루를 살아간다. 매일 멀리서는 경 기도 광명시, 군포시 등에서 이곳 탑 골 공원을 찾는 노인들은 해가 중천 에 뜰 무렵 하나 둘 자리를 털고 일어 나 뒷골목 허름한 식당으로 찾아든다.

탑골공원 뒷골목의 칼국수집이며 백반집 메뉴는 3000원을 넘지 않는다. ‘지전’ 두어 장으로 끼니를 때운 노인들은 ‘종삼’ 가판대에서 ‘까치 담 배’ 하나를 사들고 가을 공기 속에 작 은 구름 한 점을 내뱉는다.

“왜 자꾸 사진을 찍고 그려! 찍지 마!” 한 노인이 언성을 높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옆에 있던 노인은 “어디 서 나왔는가?” 캐묻기 시작한다.

탑골공원에 모이는 노인들은 이미 각종 언론매체에 시달릴 만큼 시달렸다. 그래서 섣불리 달려드는 기자를 나무라고, 호통까지 쳐 내쫒는다.

▲ 탑골공원 주변 먹거리 골목 풍경.
사실, 어르신들께 함부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은 예의를 저버린 일이다. 꾸지람을 들어도 싼 젊은이가 된 것이다. 노인들은 이런 예의 없는 젊 은 것들을 피해 탑골공원 높은 담장 안으로 들어간다. 삼일문은 아침 9시 부터 여름철 저녁 7시까지, 겨울이면 저녁 6시까지 언제나 열려있다.

몇 해 전부터 탑골공원 근처를 찾 는 젊은이들이 늘어났다. 뒷골목 소 박한 평양냉면집 소문이 나면서부터 다. 메밀향 넉넉한 평양식 물냉면 한 그릇에 4500원. 시내 유명 평양냉면 절반 가격으로 실향 노인들을 모시던 이 식당 주인도 탑골공원 주인공들만 큼이나 세월을 피하지 못했다.

그 작은 식당에서 탑골공원 주인공 들과 맛을 찾아 나선 젊은이들이 어깨를 부비며 한 그릇 냉면을 먹는다.

세월의 더께를 채 지우지 않고 있는 탑골공원, ‘종삼’의 가을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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