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를 내밀지 말고 귀를 열자!
혀를 내밀지 말고 귀를 열자!
  • 이승희
  • 승인 2011.10.07 0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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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는 우리 딸이 주관하는 듣기 평가를 치른다.

벼락치기도 불가능하고 참고서도 없으며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고 커닝도 불가능한 시험이다. 딸애가 내게 했던 본인 생활, 친구 이야기, 선생님 뒷담화 등에 대한 것을 되묻는 것이기 때문이다.

형제자매 없이 외동으로 자란 딸애는 퇴근한 나를 붙잡고 쉴 새 없이 떠든다. 연예인 신상부터 친구 고민을 거쳐 잘 생긴 지리 선생님의 가족관계까지 소재도 다양하고 스펙트럼도 참 넓다. 그러나 미처 해결 못한 업무에 집안일까지 바쁜 나는 종종 ‘듣는 척’만 했다.

이를 놓칠세라 아이는 자신이 한 이야기 중 일부를 되짚어 내게 묻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그리고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 어디 나가서 소통전문가라 하지 말라는 말을 잊지 않고 날린다.

부모님 세대와 달리 우리 세대나 요즘 세대는 말 잘하는 것을 강조하고 대접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고 뛰어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들과의 소통이 더 어렵다는 것이다.

곰곰 생각해보니 우리 윗세대는 입은 하나인데 귀가 둘인 이유를 강조하는 환경에서 성장해, ‘먼저 이야기해보라’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반대 환경에서 자란 우리와 요즘 세대는 ‘먼저 내 얘기부터 들어라’ 한다.

상대가 말할 땐 집중하지 않고 본인 이야기를 준비한다. 각자의 말을 다 내뱉고 난 이후엔 같은 얘기 아니냐며 귀 기울이지 않은 상대를 탓한다. 이러다 보니 종종 언성도 높아지고 오가는 술잔도 많아진다.

빠른 성공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에서 상대의 말을 성심 성의껏 듣는 일은 쉽지 않다. 떠드는 상대에 비해 듣기만 하는 자신은 왠지 손해를 보는 것 같고 무언가 뒤처질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성공했거나 존경받는 기업과 사람들을 보면 열심히 듣는 것을 ‘우선’ 했다.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지 먼저 들었기 때문에 남보다 빨리 모두가 원하는 기업이 되어 있었다. ‘난 이런 사람이야’를 얘기할 필요 없이 누구나 인정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신문 칼럼니스트 도로시 딕스는 ‘대중에게 다가서는 지름길은 그들에게 혀를 내미는 것이 아니라 귀를 내미는 것이다’고 말했다.

사실 상대방이 어떤 달콤한 말을 하더라도 내가 말하고 싶은 얘기의 절반만큼도 흥미롭지 않다. 그러나 침을 한 번 꿀꺽 삼키는 것으로 그 유혹을 이기고 귀를 먼저 내밀 수 있다면 그대는 이미 소통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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