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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 > 서울뉴스 > 기획특집 | 송규봉의 GIS 특집
     
일방적인 개발과 팽창의 역사…서울의 현대사
[GIS 분석-3] 세종대왕이 서울시장에게 묻는다, 역사를 밀어버릴 자유를 시민에게 물어봤냐고?
2012년 10월 10일 (수) 10:48:13 송규봉 박사 mapinsit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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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은 전국 17만2806명의 백성과 신하를 대상으로 조세제도 개혁에 대해 찬반여부를 물었다.

가가호호 방문하는 직접면담 방식의 여론조사였다. 그런데 서울시장 등 일부 단체장들은 형식적인 공청회 몇 차례 여는 것으로 대단위 도시개발계획을 확정, 추진한다.

서울. 현대사는 그런 식의 개발과정을 겪어 왔다.

서울 개발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GIS 지도를 들여다보며, 이 같은 과오를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현재 서울에 남아있는 1979년 이전에 건축된 주택의 밀집도를 보여준다. 반포, 잠실, 여의도, 압구정동 지역두이드 러진다. 서울의 60~70년대는 다리와 터널을 지나 강남으로 팽창한다. 한남대교(1969. 12), 남산 1·2호터널(1970. 8), 잠실대교(1972. 7), 남산 3호터널(1978. 5), 성수대교(1979. 9)가 개통된다.
세운상가, 서울 현대사의 이정표

2004년 초겨울 서울시청은 분주했다.

청계천 복원공사로 이목을 끌었던 서울시장은 청계천 드라마의 후속편으로 세운상가 재개발을 추진했다. 국제현상 공모를 통해 외국의 저명한 건축가 8개팀이 개발안을 제출했다.

네덜란드 건축가팀은 4위 당선권 밖으로 탈락했다. 예견된 탈락이었다. 초안을 지켜보던 책임자는 여러 차례 직설적으로 ‘당선작’에 들지 못할 것이라 했다. 종로 일대를 ‘빨리 확’ 바꿀 수 있어야 하는데 그의 제안은 정반대로 가고 있었다.

60년대, 세계적 건축가 르코르뷔제의 구상은 건축가 김수근의 손에 의해 한국의 수도에서 실험된다.

세운상가는 ‘도시 안의 도시’를 모토로 주거, 업무, 상업, 교육, 공원, 우체국 등 가능한 도시의 기능을 하나로 통합하자는 구도에서 태어났다.

세운상가 남북 약 1km의 보행로는 층별로 만들어져 상점가를 둘러 볼 수 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대형 주상복합이었다. 세운상가는 금새 강북지역의 신흥부호들이 입주하는 명소가 됐다.

강남과 세운상가는 부침의 한 운명

경부고속도로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강남개발은 압구정동을 정점으로 반포와 잠실로 번져나갔다. 70년대 강남개발이 붐을 이루자 서울의 부는 대거 강남으로 이동한다.

강남은 솟고 강북은 낮아졌다. 세운상가의 인기는 강남 인기에 반비례했다. 1970년 인구·주택센서스에 따르면 도시지역 주택부족율은 46.3%였고 도시지역 가구의 51.6%가 셋집에 살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25%의 주택이 무허가 불량주택이었다. 그렇게 당시 정부가 발표한 250만호 건설계획은 강남개발의 기반이 되었다.

악취가 진동하던 청계천은 1961년에 복개공사가 완공되며 햇빛이 차단된 지하 하수도가 되었다.

미군 휴양지로 지정된 워커힐(광진구 광장동)은 초대 주한 미8군사령관인 워커(Walton H. Walker) 장군의 이름에서 왔다. 일본 관광지에서 휴가를 보내지 말고 서울 시내에서 달러를 쓸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손정목의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는 용산 미군기지에서 가장 빨리 워커힐로 갈 수 있도록 청계고가도로가 설계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청계고가도로와 함께 1967년 세운상가도 완공된다. 그때부터 청계천, 청계고가, 세운상가, 강남은 한 운명이었다.

   
▲ 1980년대 지어진 주택의 분포를 보여준다. 상계지역에서 최고 밀도를 보이고 강남지역은 한강에서 남쪽으로 확대되며, 목동과 강동에 두터운 중밀도를 형성한다.
인구 빅뱅의 연대기

서울의 인구는 1945년 90만, 1955년 157만, 1965년 347만, 1975년 688만, 1985년 963만, 1995년 1059만명으로 정점을 이루다 2005년 1029만과 2010년 1057만 사이를 오가고 있다.

60년대에서 70년대로 오면서 서울인구는 두 배로 늘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대외적으로는 북한의 남침을 대비해 강북의 주거지와 학교를 한강 이남으로 이전하도록 했다.

내부적으로는 1972년 유신헌법을 통해 종신집권이 가능한 법적 기반을 만들었다. 개헌 직후 열린 비상국무회의에서 향후 10년 동안 주택 250만호를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중화학공업 육성을 국가과제로 삼았던 상황에서 주택건설에 필요한 재원마련은 쉽지 않았다. 당시 정부는 주택건설절차를 간소화해 민간자본을 통한 주택건설을 촉진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배분하기 위해 1972년말 ‘주택건설촉진법’을 제정했다.

민간 건설사들이 지은 주택도 정부의 자금지원을 받은 것이면 입주자선정 등 분양방법에서부터 주택관리까지 정부가 직접 통제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또 민간 건설사들에게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주택건설을 유도함으로써 주택건설은 민간자금에 의존하고, 정부는 주택보급에 주력하는 공영개발 공급체제가 만들어진다.

   
▲ 1990년대 주택개발의 흐름을 보여준다. 수도권 신도시 개발 붐과 동시에 서울 전역에 87만호의 신규 주택이 대량으로 공급된 시기를 압축하고 있다.
인구팽창의 지리적 분포


1980년대 서울에는 공영개발 방식으로 개포(73만평), 고덕(95만평), 목동(130만평), 상계(112만평), 중계동(48만평) 등에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세워진다.

6공화국 들어 아파트 200만호의 공약이 추진되며 90년대가 열린다.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수도권 5개 신도시로 공영개발의 바통은 이어진다.

2005년 기준 서울에 남아 있는 230만 주택지도는 서울시 인구 빅뱅의 시공간적 변천사를 대변한다.

첫 번째 지도(왼쪽 윗 지도)는 현재 서울에 남아있는 1979년 이전에 건축된 주택의 밀집도를 보여준다. 반포, 잠실, 여의도, 압구정동 지역이 두드러진다. 서울의 60~70년대는 다리와 터널을 지나 강남으로 팽창한다. 한남대교(1969. 12), 남산 1·2호터널(1970. 8), 잠실대교(1972. 7), 남산 3호터널(1978. 5), 성수대교(1979. 9)가 개통된다.

두 번째 지도(왼쪽 아래 지도)는 1980년대 지어진 주택의 분포를 보여준다. 상계지역에서 최고 밀도를 보이고 강남지역은 한강에서 남쪽으로 확대되며, 목동과 강동에 두터운 중밀도를 형성한다.

세 번째 지도(오른쪽 윗 지도)는 1990년대 주택개발의 흐름을 보여준다. 수도권 신도시 개발 붐과 동시에 서울 전역에 87만호의 신규주택이 대량으로 공급된 시기를 압축하고 있다.

네 번째 지도(오른쪽 아래 지도)는 2000년 이후의 주택건설의 밀도를 담고 있다. 재건축·재개발의 바람을 타고 2002년부터 추진된 뉴타운 정책으로 이어진다.

역사를 밀어버릴 자유?


2004년 세운상가는 도심의 미관을 해치는 장벽이자 처치 곤란한 퇴물이다. 세운상가를 완전히 철거해야 할 이유는 여럿이다.

서울의 역사를 대변하는 사대문 안쪽의 동서축을 가로막고 남산과 종묘의 남북 녹지축을 절단한 콘크리트 장벽이기 때문이다. 청계천 복원의 성공과 배치되는 60년대의 퇴락한 디자인의 흉물이다.

복잡하고 지저분하고 꾸불꾸불 비좁은 골목은 생산과 유통의 속도를 잡아 먹는 비효율의 상징이기도 하다. 확 밀어버리고 번듯하고 반듯하게 만들고 싶은 충동을 자극한다. 그 해, 세운상가 국제현상 공모의 정서적 심사기준이었을 것이다. 시장 임기는 중반을 지났고 머지않아 대통령 선거가 기다리고 있었다.

네덜란드팀은 건축가 램 쿨하스가 맡았다. 현장답사에서 그는 세운상가 골목길을 찬찬히 둘러 보았다. 램은 어린 시절 인도네시아에서 자랐다.

   
▲ 2000년 이후의 주택건설의 밀도를 담고 있다. 재건축·재개발의 바람을 타고 2002년부터 추진된 뉴타운 정책으로 이어진다.
세종대왕이 서울시장에게 보낸 메시지


특파원으로 일한 아버지는 모국의 식민지 정책에 반대했고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지원했다. 램은 현지 어린이들과 뒤섞여서 장터를 뛰어다니며 자랐다. “세운상가도 당신들의 역사다. 그때 건축가도 지금의 골목길도 당신들의 역사다. 세운상가를 밀어버릴 권리가 내게는 없다.”

램 쿨하스는 세운상가 골격을 모두 유지한 채 층별로 공원녹지를 살리는 리모델링안을 고집했다. 신축건물도 모두 옛골목길 생김새 그대로 디자인에 비뚤배뚤 반영했다. “안다. 떨어져도 좋다. 방향이 옳기 때문에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단호했다.

램 쿨하스의 제안은 누구에겐 ‘쿨’하고 누구에겐 답답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서울시장 자리는 자신의 구상과 향후 정치적 입지를 위해 준비한 것을 보여주는 다급한 경연장이 되었다.

시장이 되면 ‘쿨’한 슬로건과 구상을 쏟아낸다. 시장을 연임할 수도 있고 대권을 꿈꿀 수도 있다. 그러나 시민을 위한 시민에 의한 시민의 서울시를 만들기 위해 먼저 경청해야 한다.

시장의 입지를 위해 각본대로 연출된 소통이 아니어야 한다. 확 뜯어내고 거대한 하드웨어 프로젝트를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강박 관념을 버리고 우선, 시민들에게 물어봐 달라.

1430년 3월 세종대왕은 전국 17만2806명의 백성과 신하를 대상으로 조세제도 개혁에 대해 찬반여부를 물었다. 찬성 9만8657명, 반대 7만4149명으로 찬성이 우세했다.

<세종실록>에는 민간에 찾아가 찬반의견을 묻는다는 뜻의 방문(訪問)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요즘 말로 여론조사다. 이를 다시 전현직 고위관료들이 참석한 어전회의에서 격렬한 토론을 거쳐 최종합의에 이르게 했다.

조선초 인구를 600만으로 추정하면 전국민의 2.8%에게 직접 의견을 물은 것이다.

지금의 서울시 인구로 환산하면 약 30만 명에 해당한다. 3천이면 어떻고 3만이면 어떤가 시민들의 뜻을 묻는 게 먼저다.

시장의 슬로건을 외치기 전에 먼저 물어봐야 한다. 청와대와 서울시청 사이에는 세종대왕의 동상이 있다. 세종은 다시 묻는다. 직접 묻고 경청하고 있느냐고….


▲ GIS 분석팀  ㈜ GIS United 한정선·황선영·김한국·송규봉

㈜ GIS United는 국내 최초 GIS 분석전문 컨설팅 회사로 민간분야에서는 유통, 물류, 금융, 서비스, 부동산 전문회사의 상권분석, 입지전략, 지역마케팅을 컨설팅을 수행했고  공공분야에서는 감사원, 보건복지부, 한국자산관리공사의 GIS 분석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언론방송 분야에서는 한겨레21의 전국 구제역 매몰지 분석, KBS와 공동으로 4대강 인접지 부동산 상승과 KTX 사고다발지역 위험도분석이 시사프로그램에 보도된 바 있다.

[2011. 10. 10]

 



송규봉 박사 mapinsit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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