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메디치 ‘간송’의 문화유산
한국의 메디치 ‘간송’의 문화유산
  • 정민희 논설위원
  • 승인 2011.10.15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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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희의 마음으로 미술읽기] ⑥
▲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

중세 유럽 르네상스의 중심인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는 가장 화려한 가문이었던 ‘위대한 메디치’가 있다.

대를 이어 은행업으로 모은 막대한 재산으로 위대한 우피치미술관 등을 조성, 화려한 피렌체라는 불멸의 유산을 남겼다.

로렌조 메디치는 국부라는 호칭으로까지 불리었던 대를 이는 갑부 할아버지 코지모와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그는 유럽 각국 왕실과 교회가 고객인 은행업을 기반으로 이룬 부를 문화로 꽃피웠으며 피렌체는 당대의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모일 수밖에 없는 중심지였다.

로렌조는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피렌체를 대표하는 인물로 여겨졌다. 막대한 재산을 정치·외교적으로도 활용했고, 예술적 ‘혜안’까지 두루 갖췄다는 점은 500년 후 ‘한국의 메디치’ 간송 전형필과 일맥 상통한다.
간송 전형필은 와세다대(1906~1962) 법학부 재학시절 아버지의 죽음으로 24세 나이에 4만 마지기의 땅을 물려받는다. 1년에 논에서 거두는 쌀이 2만 가마니였으니 매년 기와집 100채 이상이 고스란히 쌓였다고 여기면 된다.

일제 강점기 그는 막대한 재산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끝없는 고민을 하게 된다. 결국 일제로 유출되는 문화재수집에 대한 열정을 품게 되고 은사인 고희동 화가와 3·1만세운동 민족대표 중 한분인 위창 오세창 선생의 도움을 받게 된다.

1933년 지금의 성북동에 터를 잡았고, 1966년에 미술관으로 문을 연 한국 최초의 사립미술관 ‘간송미술관’이 탄생한다.

‘간송미술관’은 1971년 이후 어떤 보석보다도 값진 국보급 우리유산을 매년 봄·가을 단 2회만, 그것도 보름간만 일반에게 공개한다.

고미술과 우리 것을 사랑하는 애호가라면, 성북동 전시를 한번이라도 보았더라면 간송의 가을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번쩍거리는 조명하나 없고 친절한 안내원에 주차시설 하나 없는 곳이지만 고미술의 명가 입장을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긴 대기 행렬 뒤에 서길 꺼리지 않게 된다.

올해 가을 정기전은 <풍속인물화 대전>으로 52명의 조선시대 대표 보물급 100여 점이 전시된다.

안견에서부터 진경산수(眞景山水)의 겸재 정선, 풍속화의 절정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이당 김은호까지 이어지는 조선인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얼마나 세밀한지 또 얼마나 해학적이며 그림마다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지는지 즐길 수 있다. 또 각각의 인물 시선과 작은 움직임을 통해 소박한 생활상을 면밀히 감상할 수 있다.

조선시대는 역사상 회화가 가장 활발했던 시대였다. 이번 공개되는 격조 높은 고서화로 살아있는 역사와 어지러운 현시대와의 소통이 매혹적인 미술로 연결되어지고 정돈되어졌으면 한다.

■ 10월 16일~10월 30일. 성북동 간송미술관 (02)762-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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