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없는 곳에 내가 있다
내가 없는 곳에 내가 있다
  • 이승희
  • 승인 2011.10.22 13: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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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 본 나의 모습과 내가 생각하는 나

가끔 집에서 업무와 관련된 전화를 받을 때가 있다. 전화 끊고 나면 우리 딸과 남편은 평소보다 나긋나긋했던 내 말투를 흉내 낸다. 그리고 영화제목을 패러디해 ‘이승희의 이중생활’이라 놀려대며 한결같은 모습을 보이라고 요구한다.

기회가 별로 많진 않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언론의 인터뷰, 외부 강의나 기고 요청에 거의 응하지 않았다. 전문가가 찍어 깔끔하게 작업한 내 사진은 우리 딸 지적처럼 실제와 달랐다.

더욱이 내 또래라면 누구나 겪고 갖추었을만한 남녀차별 극복 노력, 육아와 사회생활 병행의 어려움 해결, 전문성 수준 등이 기사로 표현되면 사실보다 멋져 보였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이를 통해 사람들이 실제와 다른 ‘나’에 대한 이미지를 갖는 것, 즉 내 자신이 모르는 내가 커지는 것이 무척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1950년대 조셉 루프트(Joseph Luft)와 해리 잉햄(Hary Ingham)은 조직 속에서 서로간의 오해 없는 소통과 진정한 관계 맺기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도구적 틀을 개발했다. 두 사람의 머리글자를 따 일명 ‘조하리의 창’이라 한다.

가로축으로는 내가 ‘아는 나’와 ‘모르는 나’, 세로축으로는 남들이 ‘아는 나’와 ‘모르는 나’를 놓고 교차시키면 4개의 창 모양을 이룬다. 나도 알고 너도 아는 ‘개방된 나’, 나만 알고 너는 모르는 ‘숨겨진 나’, 너는 아는데 나는 모르는 ‘깨닫지 못한 나’,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미지의 나’의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이 네 창의 크기는 스스로와 타인에게 알려진 나에 대한 정보의 양과 관계가 있으며 고정불변이 아니다. 나를 솔직하게 내보이지 않고 남이 뭐라 얘기하든 귀담아듣지 않으면 숨겨진 나와 깨닫지 못한 나의 영역이 큰 크기로 존재해 서로 오해하고 갈등하기 쉽다.

남들이 나를 제대로 알게 하고 나에 대해 실제의 나와 같은 이미지를 갖기를 원한다면, 다양한 방법을 통한 공개와 피드백이 활발해야 한다. 진정성 있게 나를 보여주고,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스스로에게 열심히 피드백해야 하는 것이다.

아울러 상대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으로 관심을 갖고 활발히 교류하며 소통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참지 못하고 할 말 다하는 성격으로 업계 입문 초기엔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다. 참을성을 필요로 하는 일인지라 계속 노력하다 보니 동료들은 이젠 내가 넉넉하고 상냥하다 한다.

그러나 우리 가족들 눈엔 안팎에서의 내 모습이 여전히 차이가 많이 나는 모양이다. 집에서 얼마만큼 더 부드러워야 ‘다중이’ 오명을 벗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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