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약같이 진한 커피’ 스타벅스의 힘
‘사약같이 진한 커피’ 스타벅스의 힘
  • 송규봉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11.11.18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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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 분석] 서울의 커피전문점 분포도

나는 ‘된장남’이다. 진정한 커피맛도 잘 모르면서 커피전문점에 자주 간다. 눈을 가리고 여러 커피를 시음하라면 무엇 하나 제대로 맞춰낼 자신이 없다.

노트북으로 대부분의 업무를 보는 나에게 커피전문점은 ‘커피’보다는 ‘무선 인터넷’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무선인터넷이 안 되는 커피전문점은 내 선택에서 제외되기 일쑤다.

언제부터 우리네 생활에 이렇게 엄청난 커피전문점이 들어오게 되었을까? 2003년만 해도 한국 커피시장의 95퍼센트 가량은 믹스커피가 압도하고 있었다. 1999년 미국 한 대학가 모퉁이에 있는 커피점에 들어갔을 때, 커피의 종류와 컵 사이즈에 당황했다. ‘그냥 커피 한 잔’이라는 주문이 통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주문한 커피는 갈색 톤이 아니라 강한 향의 짙은 흑색이었다. 연한 원두커피와 달달한 믹스커피에 길들여진 내 혀끝은 강렬한 커피 맛에 주눅 들었다. 물을 더 붓거나 우유가 들어간 커피음료를 시키곤 했다. 어느 유학생은 그 커피 맛을 ‘사약’같이 진하다고 표현했다.

초록색의 요정이 그려진 이 커피점이 그저 이 대학교에만 있는 지역 브랜드가 아니라 미국 전역에 번창하는 ‘스타벅스’라는 것을 한참 나중에 알게 되었다.

신문배달과 부사장 승진

몇 년 후 한국에 돌아왔다. 스타벅스는 80개점을 넘어서고 있었다. 지리정보시스템(GIS) 벤처기업에 입사한 나에게 ‘스타벅스 코리아’와의 미팅이 정해졌다. 사약 같은 커피 맛의 이 회사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라곤 전혀 없었다. 서점에 들러 책 한권을 샀다. 스타벅스 창업자 하워드 슐츠가 쓴 책이었다. 그가 적어 내려간 커피와 회사 이야기는 사약같이 강력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은은하게 이것저것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 많았다.

미국 인구를 3억으로 치면 유태인은 대략 2퍼센트 내외다. 미국 상원의원 100명 중 유태인의 비중은 10 퍼센트를 훌쩍 넘어선다. 그러나 실제 유태인이 미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보다 막대하다. 특히 금융권과 대기업의 임원진 그리고 과학기술분야에서의 파워는 막강하다. 미국에서 가장 유별나게 성공한 대표적인 인종이 유태인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드물다.

부와 사회적 지위의 막강함에도 불구하고 하워드 슐츠의 아버지는 평생 자기 집을 소유하지 못한 채 빈곤층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기저귀 빨래를 운반하는 일을 했던 하워드 아버지는 빙판길에 미끄러져 엉덩이뼈가 부러졌다. 그 일로 해고되었고 어떤 보험혜택도 누리지 못했다.

하워드는 아버지가 자신의 삶이나 직업에 아무런 긍지도 만족감도 얻을 수 없었다. 어린 하워드는 열두 살 때부터 신문배달을 시작했다. 식당 아르바이트, 모피상에서 피혁을 펴는 일, 편물 공장에서 스팀 다림질을 해야만 했다.
빈민가를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가는 길 밖에는 없었다. 하워드는 장학금을 받는 방법을 공부 대신 미식축구로 정했고 첫 번째 소원을 이룬다. 대학입학까지는 괜찮았지만 프로선수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졸업과 동시에 제록스사 영업사원으로 입사했다. 6개월 동안 복사기를 한 대도 팔지 못했다. 빈민가 출신 영업사원은 절실했다. 머지않아 판매실적이 뛰어오르고 그는 유럽계 주방기기 전문기업의 부사장으로 스카우트된다. 스물여덟의 나이에 넉넉한 연봉, 자동차, 임원주택이 주어졌다. 여기까지는 성공 스토리의 전형이다.

부담스런 점원

뉴욕지사에서 근무하던 하워드의 책상에는 아주 특이한 자료가 하나 올라왔다. 시애틀의 작은 카페에서 고가의 드립커피기계를 대량으로 구매하는 것이다. 우연히 한두 번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대량주문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하워드는 이 특이한 카페를 언젠가는 꼭 직접 찾아가리라 생각하게 된다. 테이블이 하나도 없는 커피전문점을 상상할 수 있는가? 스타벅스 원래 창업자는 영문학과 대학원 친구 둘의 의기투합으로 시작했다. 소설 ‘백경’의 갑판장 ‘스타벅스’의 이름을 따왔다.

스타벅스의 초창기는 오로지 최고급 커피를 볶아서 봉지에만 담아 판매했다. 진정한 커피 애호가는 볶은 커피를 집에서 고즈넉히 즐기는 것이라는 설정이다. 그러니 테이블과 좌석이 무슨 필요가 있을 것인가?
뉴욕으로 돌아온 하워드의 머릿속에서 스타벅스는 떠나질 않았다. 결국 하워드는 부사장직을 내던지고 시애틀로 날아가 점원으로 취직한다. 빈민가 출신의 달콤한 첫 성공을 버리는 쉽지 않은 파격이었다.

하워드는 고분고분한 점원은 아니었다. 열정적인 점원이었다. 그는 우선 스타벅스에 테이블을 놓자고 주인들을 설득한다. 왜 커피를 집에 가져가서 마셔야만 하는지 물은 것이다. 주인들로선 부담스런 점원이었다. 부사장직을 버리고 입사를 지원하는 것부터, 1년 반을 졸라 기어이 입사한 것도, 자신들이 정한 카페의 콘셉트를 흔드는 것까지 부담스런 점원이었다.

하워드는 자의반 타의반 퇴사했다. 유럽의 거리를 돌아다니면 에스프레소 카페들을 순례하고 독립적인 커피 점을 열어 7개로 점포를 늘렸다. 그의 고집과 열정은 결국 스타벅스 창업자들을 감화시켜 애초 4개와 7개를 통합하여 새로운 스타벅스 대표이사로 취임한다. 부사장직도 던지고 대륙 한쪽 끝에서 다른 쪽으로 이주해간 결행은 그의 열정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스타벅스는 커피사업이 아니다

전 세계에 2만개 가까운 스타벅스 점포를 열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뛰어난 성장전략이나 탁월한 마케팅 수완이었을까? 하워드는 사람을 성장의 중심에 놓았다. 사람중심이란 말은 거창한 철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출발은 커피 한잔처럼 구체적이었다. 열두 살 때부터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던 하워드는 우선 스타벅스 비정규 일용직에 대해 4대 보험을 해결해주었다. 경영학의 기본원리를 거스른 것이다. 심지어 시간제 노동자들에게 스톡 옵셥까지 제공했다. 주변에서 미친 사람이란 소리를 들었다.

시간제 아르바이트의 공통점은 높은 이직률이다. 시간당 일당이 조금이라도 높으면 다른 자리로 옮기고 누구나 일하고 아무나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높은 이직률 속에 노동의 숙련도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니 일당은 낮아지고 아무도 자부심을 갖고 일하지 않는다.

스타벅스는 의외의 결과를 얻는다. 4대보험을 해결해주는 특이한 이 회사에 아르바이트생은 떠나지 않고 오랫동안 근속하게 된다. 다른 프랜차이즈를 경험해본 그들에게 스타벅스는 유일무이한 회사였다. 근속자가 늘어나고 이직률이 낮아지면 고객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고객들의 커피 취향을 기억할 수 있게 된다.

대기선이 길게 늘어서도 고객을 기억한 점원은 단골고객과 눈짓만으로도 어떤 커피를 주문하는지 알고 주문하기 전에 미리 커피를 준비할 수 있었다. 그러니 고객은 빠른 서비스와 인간적인 친숙함을 느낄 수 있고 점원들은 따뜻한 대우 속에 더 밝은 얼굴로 일했다.

서비스가 좋아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퇴근 후 자기 회사에 대한 자부심어린 칭찬을 주변에 전파하게 된 것이다. 이런 흐름이 커져 스타벅스는 광고 없이 고도성장을 이루게 된다. 그러니 커피를 매개로 시작한 사업이지만 결국 사람에 대한 태도와 자세가 오늘날 스타벅스의 근간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스타벅스를 주목하는 이유

회사는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살찌울 수 있는가? 하워드 슐츠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고객과 종업원들을 존경과 품위로 대하는 것에 대해 특별한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그가 추구하는 비즈니스의 원칙이 되었다. 아직도 장사하는 장사꾼이 사회적으로 존중받기 힘든 문화가 남아있는 우리사회에 커피 한잔에 ‘영혼’을 담는다는 그의 슬로건은 자칫 냉소의 대상이 되기 쉽다.

하워드는 장사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상인들은 신발이나 부엌칼 같은 평범한 물건에도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상인은 일상적이고 평범한 물건에 특유의 정서와 의미를 불어넣어 가치를 재탄생해야 한다. 상품에 영혼을 담아야 한다.”

그에게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매개체였다.
요즘 커피전문점은 우리 삶에 어떤 존재가 되고 있는가? 집이 가족과 관계를 맺는 가장 중요한 제1의 장소이고, 직장이 제2의 장소라면, 커피전문점은 제3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집과 사무실 중간에 존재하는 사회적이면서도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 즉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공간이면서도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는 공간이다.

스타벅스의 회사사명은 자못 거창하다. ‘인간의 영혼을 고취하고 이에 자양분을 공급한다. 이를 위해 고객 한 사람 한 사람, 음료 한 잔 한 잔, 이웃 하나 하나에 정성을 다한다’고 표방한다.

스타벅스 직원들이 참여한 비전수립의 결과를 보자. 스타벅스 매장은 ‘고객들이 소속감을 느끼면 천국과 같은 곳, 일상의 걱정을 잊을 수 있는 휴식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만남의 장이 된다. 핵심은 커피를 삶의 속도로 즐기는 데 있다.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빠르게 음미하고 향유한다. 우리 매장은 언제나 인간애가 넘쳐흐른다.’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고 존경받는 브랜드로 고객의 영혼을 고양하는 영속적인 위대한 기업을 꿈꾸는 스타벅스의 꿈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논쟁의 여지 없이 커피의 최고 권위자가 되고자 하는 이 기업의 꿈이 진정 실현되기를 바란다.

독자들의 오해를 각오하고 스타벅스 찬양글을 쓰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기업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기업이 소비자 한 명의 신뢰와 존경을 얻기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스타벅스에 대한 ‘된장남’의 고무찬양은 커피가 아니라 기업철학에 있는 것이라는 주장을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 GIS 분석팀  ㈜ GIS United 한정선·황선영·김한국·송규봉

㈜ GIS United는 국내 최초 GIS 분석전문 컨설팅 회사로 민간분야에서는 유통, 물류, 금융, 서비스, 부동산 전문회사의 상권분석, 입지전략, 지역마케팅을 컨설팅을 수행했고  공공분야에서는 감사원, 보건복지부, 한국자산관리공사의 GIS 분석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언론방송 분야에서는 한겨레21의 전국 구제역 매몰지 분석, KBS와 공동으로 4대강 인접지 부동산 상승과 KTX 사고다발지역 위험도분석이 시사프로그램에 보도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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