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로 읽는 서울] 상계동 11월 은행나무…강세환
[詩로 읽는 서울] 상계동 11월 은행나무…강세환
  • 박성우 시인
  • 승인 2011.11.26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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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의 ‘PoemEssay’

초겨울 낮달도 불쌍한 녀석이란 생각이 들었다 24시간 기사식당서 그날 술잔을 털 때 은행나무도 손을 털고 있었다 혹시 플라톤한테 쫓겨난 시인들 하나 둘 모여 술잔 건네던 그곳에도 은행나무가 있었을까 거기서도 혹시 쫓겨나 자작(自酌)하던 시인이 있었을까 순복음 노원교회 앞 은행나무는 하혈한 제 아랫도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떤 노파는 은행나무 밑에서 치맛자락 움켜쥐고 은행 알을 줍고 있었다 꽃무늬가 박힌 주름치마였다 시든 꽃이었다 초겨울 내내 나는 은행나무 곁에서 담뱃불밖에 가진 게 없었다 이맘때쯤 시퍼런 핏줄 같은 고향 앞바다가 덜컥, 보고싶었다 다 털어버린 11월 은행나무도 불쌍한 녀석이란 생각이 들었다

작품출처 : 강세환(1956~) 시집 <상계동 11월 은행나무>

■ 상계동 11월 은행나무는 은행잎을 얼마나 털어냈을까요.

은행나무 밑에서 은행알을 줍던 노파는 감기에 걸리지나 않았을까요. 은행나무 곁에서 애잔한 눈빛으로 은행나무를 바라보던 강세환 시인은 훌쩍, 바다를 나녀왔을까요.

날이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남은 이파리가 마져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또 11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올해도 또 이렇게 춥다가 저물겠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문득, 정희성 시인의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자칫 느슨해지기 쉬운 11월. 그래요.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니 다시 신발 끈을 조이고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은행나무한테서 겨울을 준비하는 법도 좀 더 배워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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