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바가지를 박박 긁는 박
남편에게 바가지를 박박 긁는 박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0.09.03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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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의 ‘풀꽃나무 타령’ 31]

▲박.   ⓒ송홍선

박은 덩굴손으로 뻗는 한해살이풀이다. 꽃은 7~9월에 핀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저녁에 흰빛으로 핀다. 흔히 바가지박이라 불렀다.

비슷한 종류로는 열매가 작고 길며 중앙부가 잘록한 표주박 또는 호리병박이 있다.
옛날에는 곡식이나 물 등을 푸고 담을 때 흔히 박으로 만든 바가지를 이용했다.

바가지 이용내력은 ‘삼국유사’ 신라편에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박과 같은 알에서 태어났다는 기록으로 보아 신라 이전으로 추측된다.

고려 중중 때의 노래에는 ‘박넝쿨 가지 끊어 물국자 하나, 느티나무 가지 끊어 물국자 하나’라는 내용이 있고, 조선시대의 ‘임원경제지’에도 박이 열리지 않는 해에는 목바가지로 대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박으로 만든 바가지는 무속이나 민속에도 자주 등장한다.
옛 사람들은 질병이 돌아 무당이 굿을 할 때에 바가지를 마루에 엎어 놓고 두 손으로 문질러 소리를 내거나 장대 끝에 바가지를 매어 두면 병이 사라지는 것으로 믿었다.

또한 사람이 죽으면 죽은 자의 밥을 문전에 베풀어 놓고, 전염병이 돌면 잡귀가 먹고 멀리 가게 하기 위해 밥과 음식 그리고 짚신을 큰 길 삼거리에 놓아두었는데, 이때에 바가지를 함께 놓거나 음식을 바가지에 담아서 놓아뒀다.

바가지 풍습은 이외에도 많다.

신부가 탄 가마가 처음으로 신랑집에 들 때, 문전에 미리 피워놓은 모닥불을 타고 넘게 하거나 신부가 가마에서 내려 모닥불을 넘어가도록 하는데, 이때 시어머니는 바가지나 호박을 들고 나와 문전에서 땅으로 던져 깨뜨렸다.

충남 해안지방의 신부집에서는 사주단자를 받았을 때, 바가지에 그 사주단자를 넣어 성주 앞에 고한 후 풀어보는 풍습이 있고, 남해안지방에는 2월 초에 대나무를 땅에 꽂고 위쪽을 몇 갈래로 쪼갠 다음 그 위에 정화수를 담은 바가지를 올려놓는 풍속이 있었다.

게다가 여름철에는 더위를 먹거나 배탈을 방지하기 위해 박의 꼭지 부분을 도려내어 구멍을 뚫은 후 차고 다니는 일이 있다.

‘동국세시기’에는 ‘정월에 아이들이 작은 호리병박 3개에 파랑, 빨강, 노랑으로 색칠을 해서 차고 다니다가 열 나흗날 밤에 몰래 길에 버리면 한 해 동안 재액없이 무사히 지낼 수 있다’라고 했다.
민간요법으로는 치질이나 어린 아이의 태독(胎毒)에 바가지를 태워 그 가루를 환부에 발랐다.

걸인들은 동냥할 때에 바가지에 밥과 반찬을 담았다. 우물에서 물을 뜰 때에는 두레박을 사용했고, 물을 푸는 기구는 타래박이었다. 곡식의 종자를 저장할 때에는 박의 꼭지 부분을 도려내고 속을 파내어 만든 뒤웅박에 넣어 쥐가 먹지 못하게 하였다. 농가에서 새를 쫓을 때에는 바가지를 두들겨 요란한 소리를 냈다. 바가지는 밥상 위에 올려놓지 않았고 깨어져도 불에 태우지 않는 금기가 있었다.

한편 흥부는 ‘흥부전’에서 다리를 다친 제비를 구해준 갚음으로 박씨를 얻어 심고 거기에서 금은보화가 나와 부자가 됐고, 놀부는 다리를 부러뜨리고 얻은 박씨를 심어 똥과 귀신을 만나 망했다. 조선시대의 소설 ‘전우치전’에서는 전우치가 효자 한자경에게 축복 또는 저주의 뜻으로 박을 주었다.

박과 관련된 우리 생활의 속담에는 아내가 남편에게 불평이나 불만을 늘어놓는 것을 ‘바가지 긁는다’라 하고, 부당 하게 많은 대금을 받는 것을 ‘바가지 씌운다’라고 한다.

그리고 ‘쪽박찼다’라는 말은 거지가 되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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