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덕 구세군대한본영 서기관장
박종덕 구세군대한본영 서기관장
  • 이인우 기자
  • 승인 2011.12.16 1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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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군 맑은 종소리가 전하는 따스한 사랑의 메시지'
▲ 박종덕 구세군대한본영 서기관장은 자선냄비 모금을 지지하는 모든 서울시민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사진=이원배 기자)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크리스마스 전날까지 거리를 가득 채우던 캐럴 송은 해를 거듭할수록 듣기 어려워지고 있다. 과거 ‘징글벨’과 함께 시작되던 연말 분위기가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거리 곳곳에 맑게 울려 퍼지는 구세군 자선냄비 종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사람들은 이 종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 한켠이 따스해지는 나눔과 도움을 생각한다. 내가 도움받기보다 작은 돈이라도 나누어 베풀고자 하는 마음, 나보다 어려운 누군가의 겨울나기를 애틋해 하는 마음…

이런 마음이 모아져 율렬한 추위도 얼마간 가시고 꽁꽁 닫혔던 마음 한 켠이 슬며시 열린다. 구세군의 종소리는 이렇게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나 차별 없이 사랑을 전하는 커다란 메시지가 된다.

올해 어김없이 서울 거리 곳곳에서 울리는 구세군 자선냄비 종소리를 지휘하는 이를 만났다.구세군대한본영의 박종덕 서기관장(정령)은 스물두 살 젊은 나이에 처음 자선냄비 종을 울렸다. 그로부터 37년이 흘렀다. 종소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박 서기관장은 “돌이켜보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얼마나 따뜻한 마음을 가지셨는지 알 수 있게 된다”며 “특히 경제난 등으로 서민들의 살림이 어려워질수록 나눔의 결과가 더 많았다”고 회상했다.지난 1997년 말 외환위기로 IMF 구제금융에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조른 몇 년 동안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은 오히려 늘었다.

박 서기관장은 이를 자신이 어려울수록 이웃의 아픔을 더 어루만져주는 국민들의 성품 때문으로 해석했다. 서민경제가 더 어려워지고 있는 올해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박 서기관장은 “지난 1일 타종식을 가진 서울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은 14일 현재 지난해보다 평균 27~28% 더 늘었다”며 “이러한 추세는 70년대부터 정부차원의 경제 긴축 정책으로 국민들의 어려움이 커질 때마다 어김없이 되풀이돼 왔다”고 말했다.

40년 가까이 자선냄비 모금을 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적지 않다.

그는 “해마다 시간에 맞춰 함께 나와 자선냄비에 소중하게 챙겨온 봉투를 넣던 일가족부터 1년간 모은 돼지저금통을 들고 와 통째로 넣고 달아나듯 돌아갔던 아이들이 기억에 남는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9일 명동 자선냄비에 1억1000만 원짜리 자기앞수표를 넣고 간 노신사와 같은 특이한 사례는 없었다며 박 서기관장은 소탈하게 웃었다. 그런 큰일은 없었지만 시민들이 작은 정성을 모아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자선냄비 정신은 더 밝게 살아난다. 올해 서울시내에는 모두 111개의 자선냄비가 설치돼 있다.

구세군대한본영은 올해 45억 원의 모금목표를 세웠다. 지난해 42억 원보다 조금 늘어난 목표다. 구세군은 매년 이렇게 조금씩 목표를 늘려왔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늘 초과달성했다. 공동모금회 회계비리 사건이 터진 지난해는 가장 힘든 시기였다.

시민들은 모든 모금단체를 싸잡아 비난했고 구세군도 많은 오해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이런 어려움도 국민들의 ‘선의지’에 눈녹듯 사라졌다.

오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를 끝으로 자선냄비는 거리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1년 후인 내년 12월 다시 거리로 나오게 된다. 구세군은 이번 자선냄비 행사를 위해 3만5000명의 자원봉사를 모았다.

자원봉사자들은 2인 1조로 두 시간마다 맞교대하며 종을 울린다. 이들 자원봉사자들은 그렇게 또다른 기부에 나선다. 구세군은 영국 감리교 목사였던 윌리엄 부스가 1865년 런던의 슬럼가에서 창립한 기독교 교파다.

박 서기관장은 “윌리엄 부스는 한 마을의 부흥회를 시작하면 한 달 이상 매달려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들었던 목사였다”며 “이런 선교방식을 교단이 제지하자 다른 신앙의 길을 모색하다 빈민가인 런던 동부 지역의 실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윌리엄 부스는 이후 교회에서조차 배척하던 런던의 빈민들을 돕는 일에 나서면서 조력자들의 도움을 받아 기독선교회(The christan Mission)을 설립했고 1878년 구세군(The Salvation)으로 이름을 바꿨다.

구세군은 상징적인 군대식으로 조직을 갖추고 있다. 군대와 같이 계급을 정하고 사관학교도 두고 있다.

박 서기관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사관학교가 바로 구세군 사관학교”라며 웃었다. 그는 51기 사관생도로 입교, 77년 정식으로 임관해 충남 예산군의 예당저수지 인근 손지리 마을 구세군교회에서 5년 동안 일했다.

구세군사관학교는 기수에 따라 저마다 다른 명칭을 부여받는다. 박 서기관장 기수는 ‘그리스도의 동역자’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이런 기수명은 세계 124개국 구세군 본영의 사관학교에 똑같이 적용된다. 124개국에 사관학교 동기생들이 있는 셈이다.

박 서기관장의 계급은 정령이다. 우리나라 구세군 계급은 구한말 조선군 계급 체계와 같이 대장격인 부장을 비롯해 정령, 부정령, 참령, 정위, 부위 등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에 1908년 구세군이 처음 들어왔기 때문에 당시의 체제를 본 딴 것이다.

이들 구세군대한본영은 연말 자선냄비뿐만 아니라 1년 내내 646개의 교회와 시설을 통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나선다. 박 서기관장은 “지금까지 구세군의 자선냄비 모금에 적극적으로 호응해주신 서울시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성원해주시길 부탁드리고 구세군 활동을 지지해주신 모든 분들께 큰 고마움을 전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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