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 노린 출판기념회 전성시대
내년 총선 노린 출판기념회 전성시대
  • 정형목 기자
  • 승인 2011.12.24 0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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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회 모금에 규제없어, 정치인 돈줄로 변질
▲허광태 서울시의회 의장이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자전에세이 ‘뿔난 서울, 고삐를 죄다’ 출판기념회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코뚜레를 선물하고 있다.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면서 요즘 들어 출판기념회가 러시를 이루고 있다.

내년 19대 총선에 출마 예정인 현역의원과 예비후보들이 출판기념회를 통해 인지도 높이기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예년의 경우 이맘때면 의정보고회가 많았지만 최근 들어선 다양한 이벤트가 가능하고 공식적으로 후원회비 형태의 책값을 받을 수 있는 출판기념회를 선호하는 추세다.

출판기념회장에 들어서면 입구부터 도로까지 줄이 길게 이어지면서 문전성시를 이룬다. 행사장 입구에선 책을 낸 정치인이 방문객들을 맞이하느라 정신이 없고 ‘돈 봉투’와 ‘책 봉투’를 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게다가 출판기념회를 축하해 주기 위해 중진급 인사와 동료 정치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직간접적으로 관계된 단체에서 찾아 성황을 이룬다. 대다수 정치인의 출판기념회의 이런 풍경은 대동소이하다.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거일 90일 이전(2012.1.10)까지는 출판기념회가 가능하다. 특히 정치신인이나 원외 인사에게는 출마 의지를 널리 알릴 수 있는 훌륭한 홍보수단이기 때문에 필수코스가 됐다. 일명 ‘오세훈법’으로 불리는 정치자금법의 망을 교묘하게 비켜가기 때문에 ‘비공식 후원’을 마음놓고 받을 수 있다.

금액한도, 모금액수, 개최횟수에 제한도 없고 선관위에 모금내역을 신고할 필요도 없다. “세(勢)과시와 총알(정치자금)장전”. 등 일거양득의 효과가 출판기념회 개최의 주된 이유이다.

정치인들의 출판 기념행사로 ‘북 콘서트’가 유행하고 있다. 내·외빈 소개와 축사와 저자 연설 등으로 진행되는 전형적인 출판기념회 방식에서 탈피하고 있다. 그간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는 정당 대표 등 유력인사 축사와 저자 연설·강연 등으로 진행됐다.

출판기념회에 온 참석자들은 저자에게 ‘눈도장’을 찍은 뒤 책을 들고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책 내용에 대한 관심은 뒷전이었다. 이런 형식에서 식전행사로 비보이 공연이 열리고 출판기념회 주인공이 북 콘서트 말미에 직접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 등 이색적이고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회고록 <문재인의 운명>북 콘서트와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가 열었던 <미래의 진보> 북 콘서트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박진 의원도 세종문화회관 콘서트 홀에서 <나는 꿈을 노래한다>출판기념회를 미니콘서트 형식으로 진행했다.

2011년 12월 중순까지 한 해 동안 현직 국회의원이 개최한 출판기념회 현황을 조사한 결과, 총 129회가 열렸으며 이 중 과반인 73회가 11월과 12월에 몰렸다.

선거일 90일 전부터 출판기념회가 금지되기 때문에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막판 ‘수금;이 과열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최 의원 수는 총 120명이며 이 중 9명은 2011년에만 두 차례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정당별로 한나라당이 58명, 민주당 46명, 자유선진당 6명, 미래희망연대 5명, 민노당 3명, 창조한국당과 무소속이 각 1명 순이다.

대부분 정치인들의 저술은 현실적으로 대필작가를 통해 원고가 작성되는 경우가 많다. 출판기념회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드는 전체적인 비용은 대략 4000만 원에서 5000만 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정치인 저술 전문 출판사가 많이 있어서 원고부터 제본까지 원스톱으로 해주는 서비스까지 추가부담하는 경우도 있다.

국회의원들이 책을 낼 때 드는 가장 큰 비용은 원고료인데 싼 가격에 대필작가를 고용한다 해도 최소 1500만 원은 들며 A급 작가에게는 최소 3000만 원 이상을 줘야 한다. 출판기념회를 했다고 모두 팔리는 것이 아니어서 의원회관 복도에 팔리지 않고 쌓여 있는 모습도 흔치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출판기념회를 끝낸 후 행사를 주관한 실무진들은 “나름대로 성공적인 행사였다”고 자평한다. 실제로 한 번 출판기념회를 하면 대부분 국회의원들은 자신이 지출한 비용의 3배 이상은 너끈히 책값으로 챙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 후원을 금지하는 정치자금법에 묶여있는 국회의원 입장에서 출판기념회는 그야말로 ‘대목’인 셈이다.

거물급 정치인들은 출판기념회를 통해 내년 총선용으로 수억 원씩 자금을 거둬들이는 일이 다반사지만 관계당국은 수수방관하고 있다. 정가에 비해 수십 배씩 비싸게 책을 판매해 출판기념회를 통해 조달한 자금은 사실상 정치자금이면서도 후원금 명목으로 걷은 공식정치자금과는 달리 자금조성은 물론 사용 내용 공개마저 이뤄지지 않는다.

출판기념회장에 들어서면 한쪽에는 책값을 내는 테이블이, 다른 한쪽에는 국회의원이 서 있다. 참석자들은 일단 봉투에 ‘책값용’현금을 담은 후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적어낸다. 방명록에도 자신의 이름과 소속을 한 번 더 적는다.

봉투를 접수하고 책을 한 권씩 주는 수금원 옆에는 ‘공직선거법상 책을 무료로 드릴 수 없음을 양해 바랍니다’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명목상 ‘책 판매대금’이지만 이를 책값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사실상 없었다. 대놓고 “‘축하금’, ‘후원금’은 어디 넣어야 하느냐”고 무든 사람도 많았다. 봉투 액수 역시 천차만별이다. 모두 액수와 상관없이 받아간 책은 단 한권일 뿐이다.

심지어 경제부처가 모여 있는 과천 관가에선 최근 해당 부처 상임위 소속 국회의원들의 출판기념회 날짜와 ‘기관장급 100만 원, 실장 30만 원, 국장 10만 원’등 직급별 희망 할당 금액을 적은 회람이 나돌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의원들의 출판기념회가 밀물처럼 쏟아지자 책값으로 얼마를 내야 할지 몰라 당황한 공무원들이 자신들과 산하단체 기관장들 참고용으로 비공식적으로 마련한 기준이다.

이처럼 출판기념회가 차기 총선을 노리는 정치인들의 정치자금 모금을 위한 수단이자 출정식 성격으로 진행되다 보니 잡음도 적지않게 나오고 있다.

출판기념회에 대한 정치자금 관련 규정이 없어 더욱 문제가 되는 부분은 특정 단체 등이 출판물 구매를 통해 사실상 로비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치자금법에선 법인, 단체 등의 명의로 정치인에게 정치자금을 기부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청목회 입법로비 사건’등이 이 같은 규정을 피해 단체 직원 등의 명의로 후원금을 쪼개서 의원드레게 제공하다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제작한 출판물을 구입할 수 있는 대상에는 제한이 없다.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축하금을 전달하는 것을 규제할 수 없기도 마찬가지다. 다만 선거기간 동안에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는 것은 정치자금법상 문제가 될 수 있다.

정치자금법에는 ‘공직선거의 선거운동 기간이 아닌 때에는 바자회·서화전·음악회 등의 방법으로 금품을 모집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선관위는 ‘정치관계법 위반 사례 예시집’에서 ‘선거일 90일 전에 서적의 출판을 기념하기 위하여 선거운동 또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는 내용으로 통상적인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는 행위는 무방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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