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성탄 무박2일 ‘낮은 곳 찾기’
박원순, 성탄 무박2일 ‘낮은 곳 찾기’
  • [뉴시스]
  • 승인 2011.12.25 10: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 달동네부터 노숙인 쉼터까지, 소외계층 위로
▲박원순 서울시장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충신동 주택가에서 '사랑의 몰래산타 선물 전달'을 위해 산타 복장을 하고 한 어린이에게 선물 전달을 하고 있다. (사진=서울시 제공)

크리스마스는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낮은 곳을 향하는 현장행정과 복지철학을 유감없이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박 시장은 크리스마스 이브를 하루 앞둔 23일부터 무박2일 일정으로 노원구 중계본동에서 미혼모 쉼터인 서대문구 두리홀까지 쉴 틈 없는 발길을 이어갔다.

이같은 강행군은 23일 오전 서울시 희망온돌프로젝트추진본부에서 나눠준 ‘무박2일 현장활동 및 점검’이라 이름지어진 소책자에 빼곡이 적혀있었다.

박 시장이 이런 일정을 실제로 소화할지 의문이 들었으나 그는 단 한 곳의 방문지도 빼놓지 않고 발길을 이어갔다.

첫날 일정은 오전 10시께 노원구 중계본동 30-3번지, ‘백사마을’에서 시작됐다. 이곳은 서울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손꼽힌다. 오토바이 한대가 간신히 지나갈만한 넓이의 골목을 중심으로 600여 세대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박 시장은 허광태 서울시의회 의장과 한 조를 이뤄 자원봉사자 등 200여 명과 함께 영하 8도의 날씨 속에 독거노인 가정에 연탄배달에 나섰다.

이어 찾은 곳은 성북구 장위2동 다솔지역아동센터. 저소득층 부모를 둔 초중고교생 37명의 방학을 책임지고 있는 이곳에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독지가들이 보낸 선물꾸러미가 한켠에 쌓여 있었다.

시장의 갑작스런 방문에 신이난 듯 밝게 웃는 아이들을 뒤로 한 채 고춘식 다솔대표 등과 간담회를 가진 박 시장은 “(아이들에게)행복하냐고 묻기 힘들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행정을 하시는 분들이 영혼이라는 말을 썼으면 좋겠다”며 “영혼을 말하는 행정가, 정치가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오후 들어 틈새 소외계층을 발굴해 이를 지원하는 동대문구 푸른시민연대의 사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푸른시민연대가 소외계층을 발굴하는 ‘나눔반장’으로 임명한 40대 중반의 이모(여)씨는 남편 없이 부동산 중개업을 하며 두 아이를 키우는 처지지만 자신의 직업을 십분활용해 복지혜택이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이웃을 찾아 각계의 도움을 받도록 하고 있었다.

그는 언니와 함께 운영하는 부동산 사무실에 ‘이웃을 도와드립니다’라는 안내문을 부착해 소외계층이 집을 구할 때 복비를 깎아주거나 아예 안 받고 있었다. 이씨는 차상위계층인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시장이 신경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박 시장은 푸른시민연대의 안내로 근처에 살고 있는 지모(80) 할머니를 찾았다. 남편을 잃고 점집을 하며 근근이 생활을 꾸려가던 지 할머니는 10여년 전 뇌졸중을 앓은 뒤 자궁적출 수술까지 받아 기저귀를 차고 지내고 있었다.

50세가 넘도록 결혼을 못한 첫째 아들이 할머니의 세끼를 챙기고, 둘째 아들이 저녁때마다 와 기저귀를 갈아준다고 자원봉사에 나선 남자 대학생이 전했다. 형편이 어렵기는 매한가지인 두 아들이 일정수입이 생기자 최근 기초수급자 자격을 잃었다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느냐고도 물었다.

온기라곤 찾을 수 없는 2평 남짓한 방에서 여생을 보내는 할머니의 유일한 낙은 담배 피우는 것. 높은 분 앞이라고 담뱃갑만 만지작거리던 할머니는 박 시장이 떠나자 담배 한대를 피워 물었다.

박 시장은 어스름이 깔릴 무렵, 대학생 자원봉사자 8명과 종로구 창신동 산동네에 살고 있는 민모(9)군과, 민모양(8)의 집을 찾았다. 아버지는 척추장애를 앓고, 어머니는 우울증 증세로 고통 받고 있었다.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채 등장한 박 시장과 자원봉사자들은 어려운 환경 탓에 또래 아이들과 좀처럼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는 남매에게 캐롤송 등 온갖 ‘개인기’를 부리며 웃음을 선사하려 애썼다.

낯선 이들의 깜짝방문에 얼굴을 펴지 못하던 아이들은 박 시장이 들려준 선물박스를 받아들고 그제서야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때마침 눈발이 하나둘씩 날렸다.

종로구 시청광장 인근에 설치된 재능교육 해직자 농성천막을 찾아 복직을 요구하며 1462일째 농성을 벌이고 이들을 위로한 박 시장은 영등포구 영등포동의 N고시원의 2.5평 남짓한 휴게실에서 거주민 등과 마주앉아 도시빈민의 삶 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휴게실이라고 해봤자 2.5평 남짓한 공간. 낡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거주민들과 만난 박 시장은 ‘고시가 아닌 생계를 위해’ 고시원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어려움을 경청했다.

대개가 기초수급권자인 이들은 정부로부터 받는 43만원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일용직이라도 일자리를 구하려고 해도 수입이 발생하면 기존에 받은 수급혜택을 끊어야하는 상황이 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반값 고시원·쪽방 추진운동본부 박철수 상임본부장은 설명했다.

박 본부장은 “(하다못해)사회적 기업에서 일해서 받는 것을 수급요건에서 제외하는 것을 정부에 제안했는데, 고용부와 복지부가 서로 (법적으로)영역이 나뉘어져 있어 선뜻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국회의장 바짓가랑이를 붙잡고서라도 해결하겠다”고 답했다.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노숙인 응급대피소 등을 둘러보던 박 시장은 노숙인들로부터 예기치 못한 민원을 받기도 했다.

노숙을 시작한 지 나흘 됐다는 한 중년 남성은 막무가내로 박 시장의 앞길을 막아서며 “노숙한 지 4일 됐다. 다시 일어서려고 해도 내가 금융에 걸려서 돈을 통장에 넣어도 바로 압류된다. 하루에 막일 해서 8만원이든 벌면 돈관리를 누가 해줘야 하는데 안 해준다. 안 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민방위훈련 참관 도중 한 중년 여성으로부터 예기치 않은 폭행을 당했던 터라 긴장을 할 법했지만 박 시장은 서슴없이 이 남성의 손을 맞잡고 “무엇이든 방법을 찾아보자”고 말했다.

자정을 훌쩍 넘어 남산에 있는 서울재난안전대책상황실을 찾은 박 시장은 관계자들을 격려한 뒤 재난안전본부장실 옆에 마련된 숙직실에서 2시간 여 동안 눈을 붙였다.

24일 되어서도 일정은 빡빡했다. 오전 3시50분께 서대문소방서에서 24시간 근무에 돌입해 있는 소방대원들을 격려한 박 시장은 “소방대원 9명이 3교대를 하고 7명이 2교대로 출동대기를 한다”는 얘기를 듣자 “이처럼 장시간 근무를 할 경우,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해 몸에 최대한 무리가 안가는 근무형태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최외곽중 하나인 강서구 개화동 지하철 9호선 종합관제센터를 들러 관계자들과 지하철 안전상태를 점검한 박 시장은 날이 밝자 신림동 쪽방촌을 찾아 소외계층과의 만남을 이어갔다.

2평 남짓한 단칸방에서 할머니와 함께 단둘이 살고 있는 황모(16)양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한 박 시장은 “온실속에서 자란 화초는 지금처럼 추운데 밖에 나가면 금방 죽지만 야생화는 그렇지 않다”며 격려했다.

박 시장은 반지하방에서 홀로 살고 있는 최모(80) 할머니도 만났다. 최 할머니는 대장암 수술에 동맥경화로 인해 고통 받고 있었다. 냉방에서는 겨울임에도 곰팡이 냄새가 났다. 한달 기름값 7만~8만원이 없어 전기장판 하나로 겨울을 나고 있다는 할머니의 침대 맡에는 이런 저런 이름의 약병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최근 연락도 닿지 않던 아들이 수입이 생겨 기초수급자 대상에서 탈락했다는 최 할머니는 “이 나이가 되어가지고 나라 도움 받고 살았는데, 이제 얼마나 살겠다고…”라며 박 시장의 관심을 부담스러워했다.

박 시장은 이에 “변호사 시절 황혼 이혼 판결문에 ‘이때까지 사셨는데…’라고 내용이 그랬다”며 “그래서 제가 변론서에 이렇게 썼다. ‘얼마 안 남았으니 얼마나 중요한 날들인가’라고 썼다. 그렇게 이겼다”고 할머니의 용기를 북돋아줬다.

신림복지관을 찾은 박 시장은 최 할머니처럼 어려운 이웃을 발굴해 봉사활동을 펼치는 ‘하얀 푸르미 봉사단’, ‘신림1004’, ‘사랑나눔회’ 회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사람은 봉사하고 나눌수록 행복하다”며 “여러분이 우리 시대의 영웅이다.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서울시가 다일공동체 등과 함께 동대문구 신답초교 옆 이면도로에서 개최한 거리성탄예배 참가해 1500여명의 노숙인들과 예배를 드리며 “예수님은 가장 낮은 비천한 마굿간에서 태어나셨다”며 “예수님 말씀처럼 가장 고통받는 사람이 우주의 중심”이라며 “이처럼 가난하고 힘든 분들을 부축하고 위로하는 것이 시장의 직무”라고 말했다.

박 시장의 무박2일 봉사활동은 미혼모 쉼터인 서대문구 두리홀에서 방점을 찍었다. 미혼모들의 출산과 양육, 산후조리를 돕는 이곳에서 박 시장은 자립을 꿈꾸는 10대 후반부터 20대 후반에 이르는 미혼모 8명이 직접 만든 고구마 케이크로 한 아이의 100일 잔치를 함께 치렀다.

가족들의 눈총과 아이아빠의 외면으로 거리로 내몰린 미혼모들은 특별한 거처가 없어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없는 자신들의 처지를 털어놓았다.

박 시장은 이날 오후 4시께 모든 일정을 마친 뒤 “2시간밖에 못 자 육체적으로는 피곤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충만하다”며 “세상이 이나마 유지되는 것은 이틀 동안 만난 많은 봉사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분들에게 시장자리를 내놔야겠다. 드리려고 왔지만 드리기는커녕 많은 것을 받고 간다”고 말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저녁 무렵 자택으로 돌아간 박 시장은 트위터에 ‘어디에 살든 우리는 하나’라고 남겼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