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추웠던 서울의 어느 날, 서울시민들 ‘호~’
가장 추웠던 서울의 어느 날, 서울시민들 ‘호~’
  • 이인우 기자
  • 승인 2011.12.31 0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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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의 쉼터 동대문시장과 봉제공장이 즐비한 창신동 골목
▲ 동대문 창신동 재래시장은 매운 족발로 유명하다. 족발집 점원이 족발을 포장하고 있다.
▲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진 거리에 매달린 노가리가 종종걸음 치는 시민들의 눈길을 끈다.
▲ 우리나라 패션산업의 가장 큰 축으로 자리잡았던 창신동 골목에 구인광고만 펄럭이고 있다.
▲ 필리핀에서 온 관광객들이 노점에서 귀마개를 고르고 있다.

■과거 영화 뒤로 한 대한민국 패션 1번지

지금도 동대문시장에 깃든 패션업체는 소매상을 포함, 무려 8만여 개에 달한다.

하루에 이 시장을 오가는 사람은 60여 만 명. 서울시민도 있고 지방 상인도 있다. 중국인, 일본인, 중앙아시아인, 유럽과 미주의 관광객까지 동대문시장을 찾는다. 하루 평균매출은 400억 원대에 달한다.

하지만 동대문시장은 날이 갈수록 매출이 줄어들고 있다. 입주 업체도 점차 빠져나간다. 아직 새벽이면 외국인 바이어부터 지방 의류소매상인들이 줄지어 찾지만 예년보다 규모가 크게 줄었다. 유통업계에서는 동대문시장의 국내 소비자들이 온라인 쇼핑몰 쪽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란 분석을 내놓는다. 그래서일까. 동대문시장은 서민들에게는 더 친근하고 낯익어 보인다.

이 시장은 우리나라 서민, 서울의 주머니 가벼운 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동대문 서쪽 창신동에서 옛 동대문종합운동장, 동묘앞, 그리고 고층 쇼핑몰로 변신한 청계천변까지…. 부자들은 중구 소공동이나 강남의 대형 백화점을 찾지 서민들이 복닥복닥 모여드는 동대문까지 오지 않는다.

젊은이들도 따뜻한 방안이나 사무실에서 편하게 옷을 고르고 주문하는 온라인 쇼핑몰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일까. 동대문시장은 차차 밤에도 불을 켜지 않는 상가가 늘고 있다.

하지만 족발집이며, 어묵가게며, 만두가게는 여전히 시장을 찾은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날이 추워질수록 더 짙은 수증기를 피워올리며 어묵과 튀김, 떡볶이를 파는 노점상은 지난 10·26 서울시장보궐선거에서 박원순 시장을 ‘찍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서민들 살림이 크게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뭉실뭉실 솜사탕 같은 김 쏟는 노점풍경

그는 “서민들 살림살이는 누가 시장이 되든, 대통령이 되도 비슷하다. 우리 사정을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냐”고 한탄 비슷하게 털어놓았다.

노점을 찾은 젊은 시민은 그보다 희망 섞인 말을 꺼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그는 “그래도 자꾸 우리 서민들이 목소리를 키우면 정치인들도 귀를 기울일 것”이라며 “너무 어둡게만 생각하면 힘만 빠지지 않겠냐”고 말했다.

비싸지 않은 음식을 파는 상인과 그 음식을 사먹는 손님은 그런 얘기를 나누며 ‘시민’이 되고 있었다.

동대문시장 인근 거리음식은 싸기로 유명하다. 웬만한 곳에서 최소 3000원을 넘는 만두 한판에 1500원, 아직 2000원 짜리 짜장면도 흔하다.

한낮이면 이곳을 찾는 일용직 근로자나 노인들이 이런 식당을 찾는다. 노인들은 이제 가치가 뚝 떨어진 ‘지전(紙錢)’ 두 장으로 든든한 요기를 마친다.

▲ 동대문시장 인근 창신동 골목의 한 단추공장에서 사장이 단추 제조 작업을 하고 있다.


어둠이 깔린 저녁에는 오히려 손님들이 줄어든다. 밤에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문을 여는 소매 옷가게를 찾아온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노점 쪽에 몰린다. 이런 노점은 여름보다 겨울이 제철이다.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흰 김을 본 시민들은 어김없이 노점에 들러 어린아이 팔뚝만한 핫도그 등으로 허기를 달랜다.

▲ 광화문 광장에 세워진 나눔온도계가 온도를 가리키고 있다.

■‘미싱사·시다 구함’ 대답 없는 구인광고

이런 시장 골목을 벗어나 창신동 쪽으로 걸음을 옮겨 본다. 창신동은 과거 우리나라 봉제산업의 숨은 주역들이 몰려있는 가내공업의 메카였다. 좁은 골목 양쪽에 빼곡한 남루한 건물마다 미싱 몇 대를 놓은 봉제공장이 즐비했다.

동대문시장의 디자이너가 주문한 물량을 세계에서 제일 빨리 재단하고 마름질하고 미싱질까지 마친 뒤 완성품으로 내놓던 기술집약적 가내 수공업체들이다.

지금은 나이 든 숙련 노동자들이 기술을 전수할 젊은이를 찾지 못하고 있다. 기술집약적 노동은 대가 끊기고 기술이 필요 없는 막노동은 외국인 노동자가 자리를 채우고 있다. 급격히 불어난 외국인 노동자들은 역시 동대문시장을 중심으로 들어선 중국 동북지역 음식점이나 중앙아시아 음식점을 찾는다.

늦은 시간 동대문시장을 빠져나와 나가본 시청앞 광장에는 올 연말 나눔온도계가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서민들의, 서민에 의한, 서민의 나눔’을 기록한 수치가 올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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