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S Map으로 본 대륙별 사망원인과 한국인의 죽음
GIS Map으로 본 대륙별 사망원인과 한국인의 죽음
  • 송규봉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12.02.26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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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부르는 한국사회… 구원의 손길 기다리는 이웃들

‘인간만이 인간을 구할 수 있다.’(김 훈) 한국의 자살에 의한 사망률은 전체 사망 원인의 4.5%를 차지한다. 한국인들을 자살로 이끄는 절망에 대한 작은 관심 하나하나가 소방관들의 구조 활동과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지난 2009년 전남 화순군 화순전남대병원 완화의료병동에서 말기암 환자인 백 모 씨 부부의 ‘눈물의 결혼식’이 치러졌다. 최근 품위 있고 존엄한 죽음,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논의와 연구가 늘고 있다. 인간의 인기척이 깃든 곳에서 비참한 죽음은 줄어들 것이다.

복지에 관한 논쟁, 새로운 정치에 관한 논의가 한참인 이 시간에도 자살행렬과 사건사망은 이어지고 있다. 불길 없이 우리 사회가 불타고 있고 누군가는 절실하게 구원의 손길을 기다린다. 기다리다 지쳐 포기하고 포기한 자리에 절망이 남는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두툼한 복지관련 보고서나 공천기준이 아니다. 소방대원의 사이렌과 불길 속을 뚫고 와 내밀어주는 손길이다.

죽음의 프로파일링

경찰청에서 제공한 어느 광역시의 변사사건 3년 치 데이터를 받았다. 500명이 넘는 죽음의 기록이다. GIS(지리정보시스템) 분석가가 하는 일을 일단 죽음의 위치를 지도 위에 입력해서 지리적 특징을 살피는 것이다. 직감처럼 저소득층이 밀집한 곳에서 변사사건도 높게 나타났다. 죽음에도 빈부의 격차는 엄연하다.

생이 마감된 마지막 장소는 제각각이었다. 안방, 병원 계단, 건물 난간, 영안실, 아파트 화단, 공장 뒤, 산중턱, 옥상, 찜질방, 야산, 응급차, 철길 옆, 모텔, 가족묘 부근, 자전거 보관소, 공사현장, 저수지, 요양원, 공터, 중환자실, 화장실, 문중산, 베란다, 배수펌프장, 공장 조립라인, 직업훈련원, 숙직실, 사우나, 강 하류, 논밭, 공원, 잔디구장, 산꼭대기 등등. 사망확인서에 적힌 내용들이다. 변사사건이나 일반적인 죽음이나 장소의 차이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죽음에도 격과 질이 있다. 삶의 품격과 질이 있듯이. 죽음에도 품격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사회적 관계에 뿌리를 둘 것이다. 김미혜, 권금주, 임연옥 세 연구자가 2004년 한국의 노년층이 생각하는 ‘복있는 죽음’의 형태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1)부모를 앞선 자녀가 없는 죽음 2)자녀가 임종을 지켜주는 죽음 3)자식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죽음 4)부모 노릇 다하고 맞는 죽음 5)고통 없는 죽음 6)천수를 다한 죽음 7)준비된 죽음이다.

자세히 일곱 가지 문항을 다시 살펴본다. 1)번부터 4)번까지가 자식에 관한 부모들의 태도를 반영한다. 복 있는 죽음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네 가지는 결국 자식과의 관계에서 좌우된다. 비로소 다섯 번째에 가서야 자신의 문제 ? 고통 없고 천수를 다하며 준비된 죽음을 언급하고 있다. 죽음마저 외롭거나 부담스러울 것을 걱정하고 있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에는 프로파일러(Profiler)라는 전문팀이 있다. 그들은 주로 흉악범의 범죄수법, 동기, 행동의 원인 등을 캐내고 탐구한다.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수법도 잔인해지고 있다. 프로파일러는 주로 그들의 행동을 분석한다. 범죄자를 찾는 ‘오펜더 프로파일링’, 사건 발생 지점을 연결해 수사를 집중해야 할 지역을 찾는 ‘지리적 프로파일링’, 동일범에 의한 사건을 찾아내는 ‘링키지 프로파일링’ 등이 활용된다.

프로파일러가 훌륭한 분석을 수행하려면 심리학 지식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동기부여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피해자의 손이라도 한번 잡아봐야 한다. 유가족들에게 ‘꼭 잡아줄게’했던 약속, 그런 것이 우리를 버티게 해주는 힘이다. 범인을 잡고 나면 머리가 하얘지면서 그 약속만 생각날 때도 있다.”

프로파일러들은 범죄자를 이해함으로써 또 다른 죽음을 막는 역할을 한다. 그처럼 우리 사회가 죽음을 이해해서 비참한 죽음은 줄이고 품위 있는 죽음을 예비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변사사건 데이터는 생후 3개월 어린아이부터 일가족이 한 날 한 시 한 장소에서 생을 마감한 기록까지 담고 있다. 3년간 한 구청 관할구역에서 발생한 500여 변사사건의 세세한 사연을 우리를 알지 못한다. 다만, 그 흔적들이 남긴 쓸쓸하고 착잡한 메시지를 생각하게 된다.

아름다운 죽음을 위한 안내서

품위 있고 존엄한 죽음,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논의와 연구가 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죽음’이란 단어는 언급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죽음에 대해 가족들과 미리 의논을 한다거나, 수의나 영정사진을 준비한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어렵다. 특히 노인들에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불효라는 인식이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죽음 준비에 대해 인식이 낮을수록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논문에 따르면 웰다잉을 위해 몇 가지를 권유한다. 그 중에 몇 가지만 살펴보자. 죽음과 관련된 책을 읽고 공부할 것,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고 연습하는 시간을 가질 것, 유언장을 작성해 볼 것, 죽음 및 내세와 관련된 종교적 교훈을 생각해 볼 것 등이다. 편안한 죽음을 이루는 요소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세 가지가 있었다. 어디서 임종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것, 임종 시 함께할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것, 주변 사람과 이별할 시간을 갖는 것이 그렇다.

말기암 환자들과 생활하는 간호사들의 근무수칙이 있다고 한다. 대부분 마음가짐에 관한 것이다. “환자는 누구나 곁에 있어주기를 바란다. 환자는 자력으로 결정하기를 원한다. 환자는 최후까지 인격의 성장을 원한다. 환자는 무용지물이 아니라 중요한 역할을 하기 원한다. 환자는 자신의 질병에 관한 진실을 알기 원한다. 환자는 품위 있게 죽기를 원한다. 환자는 세상과 화해하고 삶을 깨끗이 정리하고 싶어 한다. 환자는 유머와 웃음을 원한다. 환자는 내세에 관하여 지대한 관심이 있다.” 말기암 환자들만이 이런 소망을 갖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세계 최고의 사건 사망률

세계보건기구(WHO)는 해마다 전세계 사망원인 통계를 대륙별, 국가별, 소득수준별로 집계해서 발표하고 있다. 2008년 전세계에서는 5688만 명, 한국에서는 25만 명이 사망했다. WHO가 분류한 사망의 분류표는 크게 3가지로 구성된다. 첫째 전염병이나 영양실조, 둘째 암이나 심장마비 등 비전염성 질환, 셋째 사고부상에 의한 사망이다. 도표에 정리한 것처럼 각각 사망원인에 대한 세계 평균, 아프리카, 유럽, 북남미, 아시아, 중동 그리고 한국의 지표를 살펴보면 여러 가지 단상이 떠오른다.

전염병이나 영양실조로 사망하는 전세계 인구는 27.5%이다. 아프리카에서 65% 중동지역에서 36.3% 아시아 34.7%를 기록하다가 북남미 11.7% 유럽은 5.8%로 떨어진다. 한국은 유럽 수준인 6%를 기록했다. 전염병이나 기생충 감염, 호흡기 감염 등으로 사망하는 비율은 세계최저 수준이다. 악성종양(암), 심혈관, 호흡기, 소화기 질환 등 비전염성 질환에 의한 사망률은 아프리카에서 28.3%로 가장 낮고 중동(53.1%), 아시아(54.6%), 북남미(78.6%), 유럽(87%)로 나타났다. 한국은 82.4%로 세계 평균은 물론 북남미보다 높고 유럽보다는 약간 낮다.

사고부상에 의한 사망률을 들여다보자. 사고부상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비의도적 손상이다. 교통사고, 중독, 추락, 화재, 익사 등이 포함된다. 두 번째 의도적 손상이다. 자살, 자해, 폭행, 전쟁, 내전에 의한 죽음이 포함된다. 사고부상에 의한 사망률을 들여다보면, 한국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전세계적으로 사건사망률은 9%로 아프리카에서 6.8%, 유럽에서 7.2%, 북남미에서 9.6%, 중동에서 10.6%, 아시아에서 최고수준인 10.7%에 달한다.

모든 대륙에서 교통사고는 비의도적 손상 사망률의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한국은 최고 수준이다. 추락사도 높다. 그러나 사건사망률 중에 가장 눈에 띄는 항목은 자살률이다. 한국은 4.5%를 기록하며 유럽이나 한국에서 소화기 질환에 의한 전체 사망률을 바짝 뒤쫓고 있다. 내전과 전쟁이 빈번한 아프리카나 중동지역에서도 보기 어려운 현상이다. 한국에서 산다는 것은 정말 전쟁 같은 것인가. 총성도 없고 폭격도 없지만 목숨이 버려지는 싸움터다.

자살에 관한 한국 보고서

우리나라에서 왜 자살이 최근에 급증하고 있는지에 대한 원인은 체계적으로 규명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사망한 자를 대상으로 원인을 조사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으나, 자살을 생각해 보았거나 자살을 시도해 본 사례들을 통해 생애주기별로 원인을 유추해볼 수 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실태조사에서 19~29세 연령층의 24.27%는 취업문제로 인해, 그리고 27.21%는 경제문제로 인해 자살을 고려해 본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다. 45세~64세 연령층의 53.40%가 경제문제로 인해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노동시장에의 잔류를 원하고 있음에도 임금노동자가 생애 주된 일자리로부터 퇴직 당하는 평균연령이 53.8세이고, 55세 이상 은퇴자 중에서 약 77%가 공적연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되었다.

70세 이상 노인의 36.71%가 건강문제로 인해, 21.39%가 경제문제로 인해 자살을 생각해 보았다고 답변했다. 65세 이상 노인의 자살사망률이 전체 연령층에서 가장 높게 나타나고, 그 증가 속도도 매우 빠르다는 점은 한국 노인의 빈곤수준(OECD 1위)과 건강수준을 포함한 삶의 질이 매우 낮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준다.

결국 최근의 생애주기별 자살생각의 주된 원인은 상당부분은 사회적 위기로부터 기인한다고 요약해 볼 수 있다. 고학력화 현상과 청년실업률의 증가, 노후준비가 부족한 중장년층의 비자발적 조기퇴직, 노인의 건강상실과 빈곤 등을 꼽을 수 있다. 한편, 생애주기별 사회적 위기는 다음과 같은 사회현상과도 긴밀히 연계되어 있는데 높은 이혼율과 가족해체의 증가, 취약한 사회안전망과 소득불평등의 심화, 사교육비 등 높은 자녀양육비로 인한 노후소득준비의 부족, 도시화와 핵가족화 및 개인주의의 심화로 인한 가족의 지지역할 약화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자살도 경제적 파급효과를 낳는다. 국회입법조사처의 보고서에는 자살의 경제적 비용을 추계한 선행연구를 소개하며 2004년 기준으로 적게는 1조1649억 원부터 많게는 3조 855억 원이 소요된 것으로 추정치를 소개하고 있다. 자살자 자체가 사회적 손실이며 사후 가족들과 주변인들에게 남기는 정신적 후유증에 대한 사회적 비용이 고려된 분석이다.

2009년 한 해 동안, 자살 또는 자살시도로 인해 소요된 경제적 비용은 적게는 2조 4149억 원에서 많게는 약 5조원이 소요된 것으로 추정된다. 자살의 경제적 비용을 다른 복지사업예산과 비교해 보면, 그 규모의 크기와 심각성을 더 쉽게 인식할 수 있다. 예컨대, 2011년도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약 160만 5천명 대상) 예산은 약 2조4460억 원, 보육·가족 및 여성 예산은 약 2조 5109억 원, 노인복지(기초노령연금 등 생활안정사업과 노인 장기요양보험 등 의료보장 사업)예산은 약 3조 6472억 원인 것과 비교할 수 있다.

스트레스는 비싸다.

우리사회는 사람들을 더 많이 힘들게 하고 외롭고 화나게 만들고 있다. 무엇이 당신을 화나게 만드는가? 호주의 한 여성 연구원은 158명의 직장인에게 직장 내에서 화를 돋우는 일을 기술해줄 것을 부탁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후 연구원은 분노의 원인을 5가지로 분류했다.

1)부당하게 대우받는 경우(44%) - 잘못된 지적을 받거나 인정을 받지 못한 경우, 혹은 보상을 받지 못한 경우, 다른 사람에 비해 과중하게 업무가 부과된 경우, 내 잘못이 아닌 일로 제제를 받은 경우다. 2)부도덕한 행동을 본 경우(23%) - 거짓말, 부주의, 절도, 편애, 업무 태만, 학대, 희롱 등을 목격한 경우다. 3)업무 중 무능함에 부딪힌 경우(15%) -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거나 너무 더디게 진행되고 잘못 돌아가는 것을 본 경우, 절차를 제대로 안 지키는 경우, 특히 그로 인해 자신의 업무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다. 4)존중 받지 못하는 경우(11%) - 건방지고 오만한 대우를 받는 경우, 자신을 빈정거리나 경멸로 대하는 경우(대개는 상사로부터 이 같은 대우를 받음). 5)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한 경우(7%) - 동료들 앞에서 혹은 고객 앞에서 공격적이거나 깎아내리는 식의 지적을 받은 경우다.

이들은 자신의 분노를 표출했을까? 상대가 부하직원일 경우 77%의 사람이 자신의 분노를 표현했으나, 동료일 경우 58%의 사람만이 분노를 표출했다. 그리고 화나게 만든 장본인이 상사일 경우, 단 45%의 사람만이 화를 낸 것으로 조사되었다. 분노는 표현되었을 때 긍정적으로 상황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부하 직원에게 화를 낸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다. 자신의 관점을 표현한 후에 문제 해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상사 앞에서는 사용되는 전략의 30%는 복수이다. 이 연구에서는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서비스 직원들이 고객의 음식에 소금을 과다하게 뿌림으로써 주방장에게 복수를 했다고 증언한다. 이는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상사와의 관계에서 화를 자아내는 일들의 거의 절반가량은 모욕감과 더불어 지각되고, 이는 분노뿐 아니라 증오심까지 유발한다.

일본에서 직무 스트레스의 사회적 비용을 연구했다. 의료비로 따지면 연간 2조 엔, 노동력 손실 약 600억 엔, 미국은 연간 3000억 불 손실로 노동자 1인당 7500불의 보건복지 비용을 유발한다. 심리학자 이종목 교수의 ‘직무 스트레스의 이해와 관리전략’을 보면, 영국의 보건부가 1999년도에 들어 직무관련 스트레스가 매년 3억 파운드 이상의 추가비용을 발생시키며, 사회 전체로는 약 6~7조원(한화)의 부담을 지우고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문제는 직장에서 느끼는 스트레스의 형태가 직장 밖 사회에서도 매우 유사하게 벌어진다는 것이다. 1)부당하게 대우받는 것 ? 살다 보면 자주 접하게 된다. 2)부도덕한 행동을 보는 것 ? 매일 신문방송을 통해 접하고 있다. 3)무능함에 부딪히는 경우 ? 부와 권력을 과시하는 사회일수록 그것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거대한 양극화의 장벽이 느껴진다. 4)존중 받지 못하는 경우 ?우리 사회에서 부와 권력을 가지지 못하면 쉽게 무시당하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이런 스트레스는 전국적이고 전국민적이다. 그리고 매우 비싼 복지비용을 발생시킬 것이다.

인간에게 다가오는 인기척

“인간에게 다른 인간이 다가가지 않으면 고립된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 … 다가오고 있는 인기척, 그것이 인간의 희망인 것이다. … 사회가 고도로 조직화되고 세분화될수록 인간은 고립되게 마련이다. 다들 제각기 아파트와 오피스텔과 자동차와 밀실 안에 들어앉아 있다. 그 수많은 세포들의 틈새에 재난은 복병처럼 숨어 있다. 밀실에 고립된 인간들은 재난을 돌파하는 능력이 전혀 없다. 소방대원들은 그 밀실을 깨고 들어가 인간을 구한다.”

“질주하는 소방차의 대열을 바라보면서 나는 늘 인간과 세상에 대해서 안도감을 느낀다. 재난에 처한 인간을 향하여, 그 재난의 한복판으로 달려드는 건장한 젊은이들이 저렇게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인간다움이 아직도 남아 있고 … 인간만이 인간을 구할 수 있고, 인간만이 인간에게 다가갈 수 있으며, 인간만이 인간을 위로할 수 있다는 그 단순명료한 진실을 나는 질주하는 소방차를 바라보면서 확인한다.” (이상 <바다의 기별>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 중에서)

작가 김훈이 기자시절의 경험을 쓴 글이다. 자살자들이 포함된 변사사건 데이터를 들여다보며 그의 소방대원에 관한 글을 떠올렸다. 인간의 인기척이 깃든 곳에서 비참한 죽음은 줄어들 것이다. 복지에 관한 논쟁, 새로운 정치에 관한 논의가 한참인 이 시간에도 자살행렬과 사건사망은 이어지고 있다. 불길 없이 우리 사회가 불타고 있고 누군가는 절실하게 구원의 손길을 기다린다. 기다리다 지쳐 포기하고 포기한 자리에 절망이 남는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두툼한 복지관련 보고서나 공천기준이 아니다. 소방대원의 사이렌과 불길 속을 뚫고 와 내밀어주는 손길이다.

사람은 누군가 곁에 있어주기를 바란다. 사람은 자력으로 결정하기를 원한다. 사람은 최후까지 인격의 성장을 원한다. 사람은 무용지물이 아니라 중요한 역할을 하기 원한다. 사람은 진실을 알기 원한다. 사람은 품위 있게 죽기를 원한다. 사람은 세상과 화해하고 삶을 깨끗이 정리하고 싶어 한다. 사람은 유머와 웃음을 원한다.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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