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 헤세 ’의 부드러운 조각
‘에바 헤세 ’의 부드러운 조각
  • 정민희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12.03.1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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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희의 마음으로 미술읽기
▲<무제>. Papier-cach. 1969 The Estate of Eva Hesse

1960년대 뉴욕은 대중적이며 일시적이고 대량생산적인 팝아트(Pop art)가 크게 유행을 하고 있었다. 또한 딱딱하고 냉정하고 이성적이며 엄격하기까지 한 미니멀리즘의 작가는 대부분 남성이었다. 그중 20세기를 대표하는 실험성 있는 여류작가가 바로 ‘에바 헤세(1936~1970)’이다.

34세의 요절작가로서 ‘비운의 작가’라는 신화적인 타이틀의 에바 헤세는 독일 유태인 집안출신으로 1939년 뉴욕에 정착하지만 부모의 이혼과 친어머니의 자살, 본인의 이혼 등으로 인한 정신과 치료, 마지막 뇌종양까지 비범한 삶의 이력이 작품의 원천이 아니었나 싶다.

그는 예일대학에서 조셉 앨버스에게 회화를 배웠지만 유령과도 같은 모호한 형태의 신체이미지는 표현주의처럼 보였다. 그의 작품은 윌렘 드 쿠닝이나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초상화를 연상할 만큼, 딱딱하고 정돈되기보다는 무채색의 색조와 자유롭고 생명력 있는 드로잉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린 시절부터 불안함으로 잠을 이룰 수 없을 만큼 긴장감에 시달렸고 그녀의 친구는 편지나 일기였으며 오로지 ‘페인팅’을 통해 자아정체성을 찾으려 했고, 존재 자체를 완벽하게 상호 의존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연적인 발견을 위해 ‘과정’을 중요시하고 손수 제작하는 방식으로 작업에 개입하였으며, 이는 작품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에바 헤세의 작품에서는 작가의 감정과 흔적, 그리고 손길을 한 공간에서 호흡할 수 있다.

사망하기 직전 5년간 그녀는 회화에서 조각가로서 새롭고 신선한 시도를 담대하게 하기도 했다. 다소 산업용 재료였던 부드러운 내구성을 가진 라텍스와 유리섬유를 재료로 부드럽고 저항력이 없으며 일시적인 것을 추구하는 작품세계를 펼쳐나갔다.

이런 재료의 연약한 물성은 인간 신체의 나약함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며, 작품의 소재 또한 털, 머리카락, 가슴 등의 신체적 부드러운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순탄하지 않고 반복되는 삶의 상처에서 떠오른 추상 언어를 미술작품으로 승화하였고, 작품을 통해 자아정체성 정립을 추구했던 에바 헤세의 작품은 그의 자화상이며 뜨거운 삶의 열망이었다.

시대를 앞서간 폭넓은 범위의 실험적 재료로 부드러움을 보이면서 현대조각사에 남긴 에바 헤세의 담대한 작품의 흔적은 매우 중요한 예술사의 변곡점이 될 것이다.

■ Eva Hesse
    <Spectres and Studiowork>
    ~ 4월7일까지. 국제갤러리.
    02)735-8449

▲Oil on Masonite. 1960 The Estate of Eva He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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