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동 연가
청진동 연가
  • 박성우 시인
  • 승인 2012.03.24 1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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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동 연가

 

 

 

 

 

청진동 해장국집에서 나는 알았다

밤도 늦어 1시 30분
삼삼오오 팔을 걸고 지나가는 연인들 보며
나는 생각했다
내게도 사랑이 있었던가
꽃잎처럼 아름다운 향기가 있었던가
해장국 후후 불어 넘기며
고개 돌려 나는 기억해냈다
밧줄을 타듯
끌려가고 끌려오고
한시절 붉게 물들이던
나의 아내들
별 하나 훌쩍 전깃줄을 뛰어넘는
청진동 해장국집의 밤
휴지로 코끝을 문질러가며
여인 하나 별 따라 사라지는
어두운 이승
나는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유리창 밖엔
한 사내가 전화기에 매달려 휘청이고
텔레비전에선 애국가가 흘러나오고
집에 가자 술국도 재촉하는 시간
청진동 해장국집에서 나는 알았다
나의 아내들 아직도 창 밖을 오가고
내 얼굴도 거기 함께 묻혀서 가고
밤은 깊어오는데
저 불빛이 두려운 것을


작품출처 :  박철(1960-),  『새의 전부(全部)』

■ 술꾼들치고 청진동 해장국집에 들러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저도 청진동 해장국집에 어지간히 다녔습니다.
이른 술판을 벌이기 위해서도 갔고 밤늦도록 술을 마시다가 속을 풀기위해서도 갔지요. 그러나 이젠 재개발 바람에 밀려 옛 정취를 잃어버렸지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해장국 맛은 여전하다는 것이겠지만 여간 씁쓸한 게 아닙니다.
“내게도 사랑이 있었던가 / 꽃잎처럼 아름다운 향기가 있었던가” 조만간 좀 쓸쓸한 척 폼 잡고 청진동 해장국집에 다녀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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