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 거장 이창동, 전설의 여배우 윤정희, 특별한 조연들의 조우
영화 '시' 거장 이창동, 전설의 여배우 윤정희, 특별한 조연들의 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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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4.28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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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 최준용 기자 / 출처=오스카ent] 

2007년 ‘밀양’이후 또 한번 칸국제영화제의 선택을 받은 이창동 감독과, 60년대 전성기를 누렸고 16년만에 스크린에 컴백한 한국 여배우의 전설 윤정희의 만남으로 개봉 전부터 큰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시’(이창동 감독, 파인하우스 필름㈜ 유니코리아 문예투자㈜ 공동제작)가 다음달 13일 영화팬을 찾는다.

제1대 여배우 트로이카시대를 형성했던 윤정희. 40년이 넘는 연기인생동안 33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역대 최다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그녀는 당시 한국 영화계를 휩쓸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던 그녀는 돌연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고, 이번 칸 영화제 공식 경쟁부문 진출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창동 감독의 5번째 작품 ‘시’를 통해 꺼지지 않는 불꽃같은 연기 열정을 보여줄 예정이다.

윤정희는 이 영화에서 소녀같은 순수함을 간직한 미자 역을 맡았다. 호기심 많고 엉뚱한 캐릭터의 미자는 우연히 시를 쓰게 되면서 그 동안 알지 못했던 세상의 이면(裏面)을 보게 된다. 한강을 끼고 있는 경기도의 어느 작은 도시, 중학교에 다니는 손자와 함께 살아가는 미자. 그녀는 꽃 장식 모자부터 화사한 의상까지 치장하는 것을 좋아하고 호기심도 많은 엉뚱한 캐릭터.

미자는 어느 날 동네 문화원에서 우연히 '시' 강좌를 수강하게 되며 난생 처음으로 시를 쓰게 됐다. 시상을 떠올리기 위해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을 주시하며 아름다움을 찾으려 하는 미자. 지금까지 봐왔던 모든 것들이 마치 처음 보는 것 같아 소녀처럼 설렌다. 그러나 그녀에게 예기치 못한 사건이 찾아오면서 세상이 자신의 생각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초록 물고기’로 영화계의 주목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이창동 감독. 두 번째 작품 ‘박하사탕’에 이어 세 번째 작품인 ‘오아시스’로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고 네 번째 작품 ‘밀양’으로 전도연에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의 영광을 안겨주며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감독으로 우뚝 섰다.

일상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로 서민들의 아픔을 탁월하게 묘사하는 이창동 감독이 그려내는 인물의 고통은 관객에게 더 아프고 힘들게 전해진다. 하지만 그 아픔들을 다시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일상적이다. 누구나 자신이 겪는 일이 가장 힘든 시련이라 생각한다. 그 지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의 영화는 고통스럽지만 잔인하리만큼 현실적이다.

왜 ‘시’인가?에 대한 질문에 그는 "경제적 가치만을 중시하는 일상 속에서, 시를 쓴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더 나아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우리 삶에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지.. 궁극적으로 내 자신에게 ‘시는 무엇인가’는 곧 ‘영화는 무엇인가’라는 질문과도 같다"고 말한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숙성시켜온 오랜 질문.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를 대신해서 표현해보고 싶다는 이창동 감독. 그러기에 ‘시’는 그 어떤 작품보다 그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비웠기에 채울 수 있었던, 이창동 감독과 윤정희.

처음에 이창동 감독이 만들어낸 미자와 윤정희가 그리려고 한 미자는 다소 달랐다고. 그러나 촬영이 시작된 순간, 미자는 하나의 모습으로 완성됐다.

윤정희는 자신의 역할이 본명과 동일한 ‘미자’라는 것에 놀랐고, 이창동 감독은 ‘시’를 위해 미자가 아닌 다른 이름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윤정희의 남편인 백건우는 "미자가 어쩜 이리도 윤정희와 닮았냐"고 말했다고 한다.

‘미자’는 쉽게 규정지을 수 없는 캐릭터다. 60대의 나이지만 소녀 같은 순수함을 가진 미자. 그러나 그 내면에는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이가 숨어 있다. 이창동 감독은 그 동안 워낙 많은 작품 활동으로 본인만의 연기 스타일을 형성해온 윤정희이기에 그런 미자 연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지만 윤정희란 배우는 마음이 열려 있어, 자기 본연의 것을 버린다는 것에 대한 저항이 없었다고 말한다.

속으로는 강하고 어떤 절절함을 품고 있지만, 내색하지 않는 모습. 이것이 이창동 감독이 말하는 윤정희와 미자의 닮은 점이다. 윤정희 또한 미자를 연기하기 위해 마음을 비우고 백지 상태가 되어 이창동 감독의 자연스러움을 받아들여야 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윤정희는 타고난 순수함으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가슴속으로 삼키는 ‘미자’로 다시 태어났다.

이창동 감독은 질문을 품었다. ‘시’가 죽어가는 시대에 ‘시’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본인에게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미자’는 한 달 동안 한편의 ‘시’를 완성해야 하는 과제를 받는다. 66세가 될 때까지 한 번도 시를 써본 적이 없는 그녀에게 ‘시’는 도전이다.

감독의 전작인 ‘초록물고기’의 막둥이, ‘박하사탕’의 영호, ‘오아시스’의 종두, ‘밀양’의 신애 이들은 모두 영화 속 사건의 중심이 된다. 모두 어긋난 세상, 무심한 시선의 피해자들이다. 그러나 ‘시’의 주인공은 다르다. 미자는 영화를 관통하는 사건의 주인공이 아니다. ‘시’에서 그녀는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니다. 어찌 보면 제 3자의 입장에서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벌어지는 행태들을 바라본다.

이 영화에서 오히려 가해자 혹은 피해자 그들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바라보는 입장인 ‘미자’의 가슴에는 참을 수 없는 응어리가 맺힌다. 66세가 될 때까지 한 번도 속내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던 ‘미자’는 ‘시’를 통해 세상에 대해 외친다.

진실을 담아내는 영화를 만들고자 한 이 감독의 냉철한 통찰력은 무감각해져 있거나 잊고 있었던 현실을 현실보다 잔인하게 묘사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깊은 고통을 느끼게 한다.

또한 그는 영화음악의 선곡에 신중하기로 유명하다. 같은 편집 본일 지라도 영화음악은 때로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좌우할 만큼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하나의 결단을 내렸다. 단 한 곡의 음악도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강물소리를 메인 테마로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사운드만으로 영화를 완성했다. ‘시’에서의 일상적인 소리들은 그 어떤 거장이 작곡한 영화음악보다 힘있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시’에는 윤정희 외에도 특별한 조연들이 출연했다. 김용택 시인, 배우 김희라, 안내상이 바로 그들.

‘섬진강 시인’이라 불리며 우리나라 대표 시인으로 자리매김 한 김용택 시인은 미자가 다니는 문화센터의 시 강사로 출연했다. 실제 시인이 시 선생님으로 출연하는 것. 이것만큼이나 가장 확실한 캐스팅이 어디 있을까. 생애 첫 연기에 도전하는 김용택 시인의 유쾌한 ‘시’ 강좌가 기대된다.

또한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 김희라가 열연한다. 김희라는 ‘마부’ 등으로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故 김승호의 아들. 1969년 영화 ‘독 짓는 늙은이’로 데뷔한 그는 연예인 2세 시대를 화려하게 열었던 장본인. 이후 김희라는 ‘깃발 없는 기수’ 등의 수많은 영화를 통해, 그만의 선굵은 연기를 보여줬다. 김희라는 특히 액션연기의 일가를 이루며 박노식의 뒤를 잇는 액션 명배우로 인기를 끌었다.

‘시’에서 김희라는 미자가 간병하는 ‘강노인’으로 등장한다. 그가 맡은 배역은 한마디로 무력해진 마초다. 권위의식, 지배욕, 남성주의를 가장 현실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배우. 이창동 감독이 김희라를 택한 이유이다.

이어 드라마 ‘조강지처 클럽’을 통해 더욱 유명해진 배우 안내상. 그는 오랜 무명 생활을 벗고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미 ‘오아시스’에서 설경구가 맡은 홍종두의 친형 역할로 이창동 감독과 호흡을 맞춘 안내상이 다시 한번 이창동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최근 KBS 2TV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로 수많은 아줌마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그가 ‘시’에서 또 어떤 맛깔스러운 연기를 보여주게 될지 주목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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