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S Map으로 본 서울의 공원과 도시인의 ‘休’
GIS Map으로 본 서울의 공원과 도시인의 ‘休’
  • 송규봉
  • 승인 2012.05.06 1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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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공원과 한강을 정원 삼아 산책하세요”

여의도, 김선배에게
 

난리입니다. 요새는 출근길에 신문읽기 대신 차창읽기, 하게 됩니다. 겨우내 침묵하던 산등성이는 묵직한 잿빛이었습니다. 새학기를 맞아 신입생들이 캠퍼스를 꽃피우듯 지금 산천은 온통 초록으로 눈부십니다.
전철 차창 너머로 산허리는 축제 중입니다. 신문을 읽을 수 없습니다. 도심으로 들어오기 전까지 차창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출근길, 초록에 홀리고 맙니다.

지난 겨울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만난 아홉 명의 신인작가와 천경자, 그리고 새로운 소장 작품 전시회에서 만난 그 어떤 그림도 요즘 산허리의 감동을 뛰어 넘지 못합니다. 제 눈에는 말입니다.

출근길 차창너머 산허리는 신입생으로 북적거리는 캠퍼스마냥 싱그럽습니다. 겨울방학 동안 무거웠던 외투를 벗어 던지고 생기 넘치게 여기저기서 친구들과 무리 지어 웃음꽃을 피우는 모습 같습니다.

전철이 점점 도심으로 들어올수록 초록의 비율은 뚝뚝 떨어집니다. 빌딩과 간판이 눈 앞에 펼쳐지고 전철은 지하로 들어갑니다. 도시는 일과 사람에 집중할 것으로 주문합니다. “너희들이 왜 출근했는지 잊지마.” 그렇게 주의를 줍니다.

초록 속에 보이는 것들

봄의 주인공은 단연 꽃입니다. 새로 돋아나는 초록 나무들은 밋밋한 조연인가요? 한 편의 영화처럼 꽃은 봄의 스크린을 채우는 중심에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돋보이는 조연에 대해 관심이 갑니다.
꽃은 독립적인 개별성을 피워냅니다. 꽃은 저마다 자신만의 자태, 빛깔, 향기로 독자성을 뽐냅니다. 나무는 통일적 연대성을 상징합니다. 나무도 저마다 자태, 빛깔, 크기로 독자성을 추구하지만 큰 틀 안에 부드러운 통일을 이룹니다.

꽃의 주어는 ‘나’, 꽃의 문장은 ‘나는 나다.’고 선언합니다. 하지만 나무의 문장은 ‘우리 하나가 될까?’ 청유형입니다. 꽃은 홀로 빛나지만 나무는 무리의 어깨동무 속에서 더 아름답습니다.
활짝 핀 꽃은 황홀한 자태로 눈을 사로잡습니다. 일 년 내내 피는 꽃은 플라스틱 조화 밖에 없습니다. 꽃이 지고 나면 나무의 존재감은 본격적으로 드러납니다. 사실 나무들의 출연시간이 더 길기에 진정한 주연은 나무가 아닐까요?

꽃, 나무, 사람

나무는 폭넓은 화폭에 하나하나의 묶음과 연계로 숲을 채웁니다. 꽃이 주로 정물화에 잘 어울리고 숲은 산수화로 자주 그려지는 까닭이라 생각해봅니다.

사람도 그러한가요? 여럿이 모일수록 존재감이 드러나는 꽃 같은 사람을 여럿 알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처럼 꽃으로 주목 받고 싶었던 욕심은 오래갑니다. 일 년 내내 만개한 꽃이 될 수 없음은 물론 한 시절이나마 환하게 피었다가 열매로 맺어지는 것도 어렵습니다. 푸른 나무의 계보에 눈을 돌린 것은 마치 콜라나 커피 대신 녹차를 마시는 것처럼 어렵습니다. 공원이나 숲길을 걸으며 점점 더 나무에 눈을 주고 말을 걸어보곤 합니다.

화장실에서 꿈꾸는 아프리카

새로 시작한 일들은 어떠신가요? 요즘 발등에 떨어진 프로젝트가 예닐곱 가지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일복을 몰고 다닌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이렇게 불쑥 문자를 보내고 편지를 보내게 된 것은 점심시간 저희 사무실 신입사원이 다른 회사에 다니는 고향친구의 SNS 문자를 저에게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떨어진 오더에 팀 전체가 야근을 한다. 차장님은 밥 먹으면서 어제 늦게 집에 갔더니 아들이 엄마 아빠랑 같이 못 논다고 침대에서 울고 있었다고 했고, 과장님 한 분은 오늘이 큰 딸 생일인데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지옥 같은 경쟁으로 대학에 가고, 거기에서 경쟁해서 입사를 하는데, 무얼 위해 그 수많은 청춘들이 힘들어 했는지 억울할 정도로 멋과 낭만이 없다.
비데가 있는 회사 화장실이 적적하다. 대학가면 끝일 것 같던, 입사하면 끝일 것 같던, 지난  날의 우리의 기대는 그저 아주 우스운 착각이란 생각이 든다. 아프리카로 가야겠다.… 진짜 내 맘대로 살아야겠다. 자유로운 사람으로 ㅋ”

같이 걷던 공원길

오래 전 ‘사무실 코앞이 여의도 공원이니 참 좋겠습니다. 맨날 산책하시겠네요?’ 문자를 보냈더니 ‘웬걸, 그림 속의 떡이야! 여유가 없어^^’ 답문자를 주셨습니다.
모처럼 둘이서 점심을 먹고 함께 공원을 걸었습니다. 쏟아지는 정오의 햇살 아래 공원을 넓게 한 바퀴 돌았었죠. 나무 그늘 아래서 두런두런 이런 저런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사무실에서 몇 통의 문자와 전화가 왔고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끊긴 채 서둘러 자리를 떴습니다. ‘미안해 다음에 저녁에 만나 소주나 한잔 하자~’ 그러곤 제법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오늘 저는 다른 미팅을 끝내고 여의도 공원에 혼자 앉아 있습니다. 눅눅한 빨래를 햇볕에 널듯이 환한 벤치에 앉아 잠시 꼬깃한 마음을 펼쳐봅니다.
광화문 회사로 출근하는 후배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바쁜 일상에 잠시 눈을 들어 어디든 산허리를 보자. 초록이 난리 났다. 우리 영혼도 쬐끔 푸르러졌다 가자^^”
“네. 삼청동까지 걷고 왔어요. 초록빛이 참 좋네요. 근데 넘 더웠어요. ㅋㅋ. 좋은 하루 되시고, 담에 봐요.” 후배가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최장 근로시간

한국 근로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2116시간(2011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부동의 1위랍니다. OECD 평균(1749시간)보다 20% 더 일을 하고 있습니다. OECD 국가 중 연간 2000시간 이상 일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근로시간은 단순히 사무실 내에 있는 시간만 계산한 것입니다. 퇴근 후 회식시간 또는 영업상의 만남도 적지 않습니다. 회식과 접대자리가 업무의 연장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한국인들의 근로시간 1위 기록은 한동안 깨지지 않을 듯합니다.

이런 관행이 하루아침에 바뀔 것이라 보지 않습니다. 어느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2003~2005년 한국, 일본, 미국, 독일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일에 대한 태도’를 조사해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서 한국인들은 거의 모든 질문에 일관되게 일에 대한 강박에 가까운 열정을 보였다고 합니다. 가령 ‘실직이 이혼보다 고통스러울까’라는 질문에 한국인 65%, 미국인 41%, 독일인 40%, 일본인 36%가 ‘그렇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보고서를 작성한 책임연구원은 ‘일이 없음에 대한 두려움이 공포 수준에 도달’해 있는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자격증 전문 사이트(에듀스파, 2009년)에서 직장인 403명을 대상으로 ‘감원공포’를 물었더니 77.2%가‘ 공포를 느낀다’고 답했습니다.

도시인의 숨통

감원공포로 인한 증상을 묻는 질문에는 ‘신경과민’(37.7%)이 가장 많아 감원 스트레스가 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밖에 자기비하(14.9%), 멍해짐(12.9%), 식욕 및 수면욕 부족(9.4%), 대인관계를 기피(5.0%), 기타(3.5%) 등의 순이었습니다. 감원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으로 ‘조직구성원들과 친밀감을 높인다’(33.7%)는 응답이 가장 많아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직원들과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어 ‘운동을 한다(25.8%)’는 대답이 2위였고요.

불황기 일자리를 지키는 최고의 전략을 묻는 질문에는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22.6%로 1위를 차지한 것이 당연하게 들립니다. 다음으로는 ‘멀티플레이어가 된다’는 응답이 19.4%를 차지했습니다. 일자리를 잃을까 걱정, 스스로 알아서 일을 찾아서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도시인의 고충 1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11년 10월 유진기업이 임직원 400여명을 대상으로 ‘직장내 스트레스’ 관련 설문조사를 한 결과,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마음 맞는 동료와 술 한잔으로 해결한다’는 응답(32%)이 제일 많았습니다. 이어 ‘잠을 푹 잔다’(21%), ‘흠뻑 땀에 젖을 정도로 운동을 한다’(13%)가 뒤를 이었습니다. 일과 일, 관계와 관계, 술자리와 술자리 사이에 직장인들이 자신을 추스릴 정서적인 ‘숨통’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 공원산책은 한가한 소일거리가 아니라 스트레스에 무작정 노출된 도시인들이 잠시 쉬어가는 쉼터가 될 수 있습니다.

공원의 재해석

과학기술연구소가 국민의 행복지수를 끌어올리기 위한 국민설문조사(2011년)를 했습니다. ‘믿을 수 있는 먹을거리’, ‘안전한 직장’이 1위에 올랐습니다. 붐비지 않고 쾌적한 대중교통, 교육환경이 잘 갖춰진 저렴한 집에 대한 요구도 높게 나왔습니다.

일터에서 가장 필요한 점으로 ‘안전제일의 일터’가 23.9%로 1위를 차지했고, ‘깨끗하고 습도가 적절한 실내공기’가 22.1%로 2위, ‘밝고 햇빛이 잘 드는 부드러운 일터’가 17.3%로 3위를 차지했답니다.

그런데 모든 일터에 깨끗한 실내공기와 자연광이 풍성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모든 일터가 그렇게 바뀌길 원하지만 저마다 제한된 여건에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렇기에 오전업무와 오후업무로 넘어가는 점심시간과 저녁으로 넘어가는 시간, 가까운 공원에서 보내는 잠깐의 여유는 ‘한가로운 사치’가 아니라 ‘영혼을 보살피는 숨통’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보행로를 늘려라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주최한 한일 공공디자인 색채세미나에 참석한 일본 디자인회사 ㈜GK의 대표는 몇 가지 조언을 남겼습니다. 도심에서 차량과 고층건물을 몰아내야 사람 중심의 도시가 된다는 것입니다.

서울이 어떻게 변모하면 좋겠냐는 질문에 그는 “서울이 뉴욕과 다른 건 결국 역사와 문화다. 사람이다. 도시는 그 도시민이 먹고 자고 살아가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중략> 노점상, 좁은 골목길, 오래된 재래시장 같은 걸 잘 보존해야 한다. 또 도심에서 차량과 초고층빌딩보다 사람 중심의 공간을 중시해야 한다.

일본 교토를 가보면 2차선을 1차선으로 줄이고, 버스 노선을 도시 밖으로 내몰고 고층건물을 짓지 못하게 한다.”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도 마찬가지인데 모두 사람들이 마음껏 걷고 대화하고 길거리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결과 세계적 도시가 된 것이라 합니다. 결국 도시의 여백을 늘려 사람을 포옹할 때 도시의 매력이 만들어진다 하겠습니다.

창의성을 위한 허송세월

요즘 직장인의 스트레스는 하나 더 늘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맞게 ‘창의력’까지 요구 받기 때문입니다. 직장인들이 가장 취약하게 생각하는 영역 중의 하나입니다. 왜냐면 영어처럼 점수로 환산되지도 않고 학원도 따로 없으니까요.

그래서 창작이 본업인 작가들의 노하우를 귀동냥하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소설가 김훈의 창의성 고양방식은 ‘노는 데’ 있다고 합니다.  ‘밥벌이의 지겨움’을 김훈 작가는 어떻게 방법으로 해결한다는 것일까요? 문학사상에서 출간된 <소설가로 산다는 것 - 작가가 쓰는 창작론>을 뒤져보았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글쓰기나 책 읽기가 아니라 노는 일이다. 그리고 나의 놀이는 대부분 글쓰기와 아무런 관련이 없거나 희미한 흔적만을 글에 남기고 있다.”

그가 좋아하는 놀이는 박물관 구경 가기, 동물원 식물원 구경 가기, 호수에 오리 보러 가기, 강가에 나가서 어슬렁거리기, 겨울 하늘에 연날리기, 고적 구경 가기, 자전거 타기, 중고등학교 운동장에 아이들 보러가기 같은 것들이라 합니다.

작가 김훈은 자신이 노는 것은 ‘아무런 목적이 없는 허송세월’에 가깝다고 말합니다. 그러다 아주 가끔씩, 문체의 느낌이나 글쓰기의 충동을 느낄 때 그의 놀이는 허송세월하는 고행, 즉 창작활동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허송세월 하듯 세상에서 한발 떨어졌기에 출간 6년 만에 100만권을 돌파한 <칼의 노래>를 쓸 수 있었다고 설명해 줍니다. 젊어서<난중일기>라는 이순신의 글을 읽기도 했지만, 50대에 접어들어 현충사에 가서 이순신의 칼을 들여다보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칼의 노래>를 결코 쓸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공원, 영혼의 휴게소

명궁은 활을 사용하지 않을 때 활시위를 풀어놓고, 훌륭한 연주자도 연주 때가 아니면 현악기의 줄을 풀어놓는 이유가 비슷할 것이라 짐작해봅니다. 

19세기는 제국의 시대, 20세기는 국가의 시대, 21세기는 도시의 시대라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시와 도시를 비교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자문해봅니다. 공원의 수준이 곧 그 도시의 수준이라고 고집을 부리고 싶습니다. 공원은 도시인에게 여가를 즐길 공간입니다. 공원이 있는 것만으로도 생태적으로 이득입니다. 아울러 공원은 도시의 무분별한 개발과 확장을 통제하는 ‘성찰’의 역할까지 하게 됩니다.

김 선배, 공원을 통해 얻게 되는 가장 큰 혜택은 마음의 평온이 아닐까요? 코앞의 공원, ‘그림의 떡’이 아니라 숨통과 창의공간으로 잘 써먹으세요. 거대한 공원과 한강을 정원 삼아 산책하세요.
일 년 중 눈부신 초봄은 하루 중 여명이나 노을처럼 금방 지나가 버릴 것 같습니다. 봄·가을은 더 짧아져 여름·겨울로 직행할 거라, 축제 같은 봄빛도 벌써 끝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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