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S Map으로 본 서울의 학교와 선생님 분포
GIS Map으로 본 서울의 학교와 선생님 분포
  • 송규봉
  • 승인 2012.05.12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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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선생님처럼 가르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봄학기 4학년 강의실
선생님. 강의실로 들어서기 전, 다시 선생님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더 잘해줘야지 정성을 더 들여야지 혼자 다짐했습니다. 대학 강의실에는 분필과 칠판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대신 수성 매직펜을 사용하는 화이트보드와 영상을 확대하여 스크린에 비추어 주는 프로젝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미리 컴퓨터로 만든 슬라이드를 한 장씩 넘기며 수업을 합니다.

건축공학과 학생들에게 ‘건축기획’이라는 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건축물의 디자인과 설계를 하기 앞서 건축물이 들어설 땅 주변의 자연·인문환경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가르치고 있습니다. 3시간 수업 동안 영사기로 100장 정도의 슬라이드를 스크린에 펼칩니다. 지휘봉 대신 레이저 포인터의 붉은 광선으로 학생들의 시선을 모으려 애씁니다.

6년째 4학년 학생들에게 똑 같은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취업을 앞둔 대학교 4학년들의 수업은 점점 힘겹습니다. 취업난은 강의실에 찬바람처럼 불고 있습니다. 이 친구들과 마음을 맞추려면 한 학기도 부족합니다. 5월을 넘기며 35명 중 삼분의 일 정도, 겨우 마음의 눈을 맞춘 것 같습니다. 그것도 자신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몇 명은 첫 시간과 달리 눈매에 마음을 담아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맨 끝자리에 앉아 팔짱을 끼고 정면을 노려보던 친구는 계속 마음에 남습니다. 수업을 하다 보면 그런 친구들을 가끔 만나게 되는 데 아마도 강의실에 들어오기 전부터 무엇인지 잔뜩 화가 난 것 같습니다. 쉬는 시간도 아닌데 두 번이나 강의실 밖에 다녀옵니다. 왜 그런지 따로 묻고 싶지만 오늘은 그냥 마음에만 담아 두기로 했습니다.

어떤 친구는 배우려고 자리에 앉아 있고, 어떤 친구는 학점관리 때문에 앉아 있습니다. 3시간 내내 몸만 강의실에 있을 뿐 마음은 온통 어디론가 떠다니는 친구, 취직을 해야 하나 유학을 가야 하나 머릿속에 복잡한 친구도 있습니다. 저는 ‘질문 있으면 하세요?’ 묻는 대신 가끔 작은 쪽지를 돌려 출석부를 대신합니다. 날짜와 이름을 적게 하고 궁금한 점을 물어보라고 합니다. ‘쪽지질문’입니다.

질문지로 만나는 대학생들
“항상 마음 속 생각과 머릿속 생각이 충돌하는 기분이 듭니다. 어떤 상태인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고자 하는 게 뭔지 아는 것 보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가 더 중요한 것 같은데, 어떻게 알 수 있는 지 궁금합니다. 생각을 더 해야 하나요? 어떻게?”

“저의 인생에 있어서 최종 목표는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인데, 제가 하고자 하는 일에 있어서 성공한 대가들을 보면 일을 너무나 사랑하고, 일에 미쳐있는 ‘일중독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일과 일상생활 둘 다에 있어서 행복한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혼자서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믿을 것은 나뿐이라고 믿어 왔었지만, 어렸을 때 아무 조건 없이 만났던 친구나 동네 아저씨, 아주머니와의 관계가 그립습니다. 나도 이제는 이해관계를 따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시 예전으로 갈 수 있을까요?”

4학년 수업은 언제나 쉽지 않습니다. 달리기 출발선에서 ‘준비~탕!’하는 신호를 기다리는 그 순간의 초조함과 복잡함이 교차합니다. 잠시 제가 이 친구들 나이였던 이십대 중반에 무엇을 했나 무엇이 막막했나 돌아보게 됩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강의실에 앉아 학생이 되어보려 애쓰게 됩니다. 지금 이 친구들이 원하는 것은 ‘선생’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직장인 저녁 강의실
같은 요일, 저녁에 대학원 수업을 합니다. 직장을 마치고 공부하러 오는 사회인들이 듣는 수업입니다. 첫 시간 수업이 끝날 때까지 강의실 뒷문은 늦게 도착한 학생들로 열렸다 닫혔다 합니다. 그분들에게는 직장에서 학교로 달려오는 것만도 힘겨운 최선입니다. 웃음으로 어서 오시라고 인사를 건넵니다.

그러나 4학년 건축공학과 학생들에겐 과제물 제출이 10분이라도 늦으면 싫은 소리를 합니다. 세상에 나가 건축주와 미팅하는데 10분 늦으면 어떻게 될 것 같은지 묻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건축 디자인일지라도, 아무리 며칠 밤을 지새워 명작을 만들어도 10분 지각하면 건축주는 어떻게 생각할 것 같은지 물어봅니다. 그렇게 애쓴 작품을 10분 때문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면 얼마나 속상할지 말해줍니다.

오히려 직장 다니며 자기 돈 내고 상사 눈치 보며 수업에 나오는 야간 대학원 수업은 훨씬 더 높은 몰입도를 보여줍니다. 그분들의 기대수준은 매우 높고 강의에 대한 반응과 호응도 상당히 높습니다. 열기가 있는 대신 ‘강의자’는 긴장하게 됩니다. 그분들은 이미 현장과 현업에서 10년 내외, 때론 그 이상 실무경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론보다는 해법, 외국 사례보다는 국내 사례, 단순 지식보다는 통찰력, 기술보다는 인문학적 접근을 기대합니다. 직장인 대학원 수업은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셰르파(Sherpa)의 역할을 담당하려 합니다. 그분들이 산 정상에 오르도록 반 발짝 뒤에서 길을 안내해야 합니다. 수업의 포인트는 가르치는 것에 있지 않고 그분들이 다시 그리고 잘 생각하도록 좋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CEO 조찬 강의실
특강은 언제나 어렵습니다. 이미 있는 교육 일정 속에 잠깐 들어가 무엇인가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경험 많은 교수님이 해준 이야기입니다. 강의하기 제일 힘든 대상이 고위공직자, 대학교수들, CEO 모임이라고 했습니다. ‘어디 한번 읊어봐, 내 한번 들어보지’ 한답니다. 반응도 없고 질문도 없고 화답도 없다고 했습니다. ‘정말 지치게 만드는 강의’인데 될 수 있으면 그런 강의는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도 어느 CEO 조찬모임에 갔습니다. 저자를 불러서 직접 듣는 그런 강의입니다. 유명 호텔에서 조찬을 먹으며 하는 강의입니다. 아침 식사와 공부를 한 상에 차리는 ‘효율성’을 추구합니다. 저는 중앙 테이블로 안내되었습니다. 시간보다 일찍 오신 성실한 CEO들께서 명함을 주셨습니다. ‘저기 OO 회장님은 정말 대단하십니다. 5년 동안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는 분이죠. 2주마다 1권씩 5년이면 무려 100권 가량 책을 읽은 셈이에요.”

단상에 올라 허리 깊숙이 인사를 하고 준비한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할 때, 5년 개근하신 OO 회장님을 살짝 쳐다보았습니다. 보지 말걸 그랬나 봅니다. 그분 고개가 민망하게 위아래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지속적인 교감 없이 한 번의 특강으로 무엇인가를 전달하는 일의 어려움을 절감하게 됩니다.

주말 프랜차이즈 강의실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10주간 한국프랜차이즈협회가 주관하는 강의실에 나갑니다. 강의의 목적은 명료합니다. 컴퓨터지도(GIS)로 상권을 분석하고 점포의 입지전략을 토론하는 강의입니다. 지역마다 서로 다른 특성을 살펴 점포의 경영성과를 더 높이려는 목적이라 했습니다. 저에게 5주 스무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점포 1800개, 1500개, 1300개에 도달한 유명 프랜차이즈 브랜드와 이제 의욕적으로 성장기를 준비하는 브랜드, 신규 브랜드를 준비하는 회사 등등 경영자들이 와서 듣는 자리입니다. 수업은 수시로 질문이 오가고 의견개진이 활발합니다. 질문은 구체적이고 질문 속에는 경륜과 지혜가 담겨있어 받아 적으면 교과서가 될 것 같습니다.

이분들이 잠시 수강생의 자리에 앉아 있지만 팀별 토론결과를 발표하는 것을 듣다 보면 별개의 강의를 듣는 것 같습니다. 가르침과 배움의 경계 없이 주고받고 서로 배우고 서로 가르치는 강의입니다. 쉬는 시간의 담소도 메시지가 있습니다. 뒤풀이 술잔 위로 현장의 생생한 이슈들이 오고 갑니다. 종종 메모지를 꺼내 받아 적기도 합니다.

열정이라는 과목
기회가 될 때마다 CEO들이나 리더들에게 질문을 던져봅니다. 어떤 인재를 찾고 있는지 말입니다. 중책을 맡길 인재를 고를 때 어떤 덕목을 가장 중요하게 보는지 자세히 물어봅니다. 그래야 대학교 강의실에서 알려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CEO들에게 또 다른 리더들이 해준 이야기를 나눠보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경험으로 어설프게 겨우 알게 된 몇 가지 이야기들과 책으로 읽어서 겨우 파악한 사례들을 중간 중간 소개합니다. 지식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들의 주옥같은 메시지를 강의실 공간으로 끌어내기 위해서입니다.

인재에 관한 여러 가지 덕목이 언급되지만 성실함은 기본이고, 열정, 창의성, 소통능력에 관해서는 대부분 답변이 겹치는 것이 놀랍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열정적인 사람을 어떻게 알아보느냐’고 묻습니다. 그 사람이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사람을 성장시키고 그것으로 조직의 든든한 기반을 다져줄 사람인지 어떻게 알아보냐고 묻습니다. 저도 그것이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저는 선생님 이야기를 들려주곤 합니다.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 어떤 대학교에서도 ‘열정’이라는 이름의 과목이 개설된 곳은 없을 것이라고요. 아마 ‘리더십’을 가르치는 대학도 드물 것이라고 말해봅니다. 혹시 그런 학교를 들어봤는지 꼭 물어봅니다. ‘열정과 리더십은 배울 수는 있지만 가르칠 수는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렇게 다시 묻곤 합니다.

선생님께 배운 것들
중학교 국어시간. 그날 선생님께서는 오른 손에 망치 왼손에는 철사줄을 들고 교실에 들어오셨습니다. 칠판과 분필로 가르치던 시절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넓은 칠판 오른쪽 끝에 못 하나를 쿵쿵 박고 왼쪽 끝에 또 하나의 못을 박았습니다.

저는 도대체 국어선생님께서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철사줄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팽팽하게 당겨져 묶일 때에도 몰랐고 주머니에서 빨래집개를 꺼낼 때도 그랬습니다. 출석부 밑에 접혀있던 커다란 전지 세 장이 펼쳐져 빨래줄에 걸릴 때도 그 이유를 다 알지는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칠판을 삼등분하고 교과내용을 빼곡하게 적어갔습니다. 교실은 칠판 위를 달리는 분필소리가 말굽소리처럼 또각또각. 학생들은 일제히 공책을 펴고 칠판에 담긴 내용을 옮겨 적습니다. 연신 눈길은 칠판과 공책 사이를 오가며 선생님의 속도를 따라잡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곤 뒷짐을 지고 선생님들은 교실을 돌아다니며 “다 적었냐?” “다 적었어?” “빨리 적어라” “넌 왜 이리 글씨가 늦냐” 묻곤 했습니다.

이제 수업은 중반을 넘어 20분쯤 남았을 때, 선생님의 강의가 시작되고 학생들은 파란색 볼펜이나 빨간색 볼펜을 들고 칠판에서 옮겨온 내용과 선생님 강의의 여분을 잽싸게 메모해야 했습니다. 빈 공책은 빠른 속도로 채워져 하루치의 공부가 어떻게 내 공책에 담기는지 시시각각 목격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중학교에 부임하신 ‘병아리’ 초짜 국어선생님이 지금 망치로 우리의 오랜 습관을 쾅쾅 깨뜨리시는 겁니다. ‘어느 세월에 칠판에 쓰고 어느 세월에 공책에 옮기고 있을 거냐! 수업내용을 모두 큰 종이에 적어 왔으니 설명할 때 알아서 교과서에 메모해라. 참고서 따로 살 것 없다.’

가슴으로 전해지는 DNA
30년이 지나 지금도 그날 망치, 철사줄, 빨래집개, 전지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30년 전 선생님이 보여주신 장치들은 지금 대학 강의실에서 사용하고 있는 ‘파워포인트’의 예고편이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책을 읽게 하고 틀린 대목에서 누구나 끼어들어 다음 틀릴 때까지 교과서를 읽게 했던 것도 생생합니다.

수업 내내 강단 아래로 내려와 책상 사이를 수없이 옮겨 다니시던 선생님의 ‘도보 강의’를 저도 지금 흉내 내고 있습니다. 서른 중반에 다시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광주로 여행이나 출장을 갈 때마다 제 숙소는 언제나 선생님집이 되었습니다. 제 동행들은 의무적으로 선생님을 만나야 했습니다. 선생님 집 다녀온 동료들은 ‘참 부럽다’고 했습니다.

‘중학교 선생님으로부터 30년짜리 애프터서비스(A/S) 받는 느낌이 어떤지 알아?’ 이렇게 농담을 해보기도 합니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제가 배운 과목이 ‘국어’가 아니라 ‘열정’이었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하여, 제가 가르치는 것이 ‘컴퓨터지도(GIS)’가 아니라 다만 ‘열정’을 보여주는 것이구나 겨우겨우 알게 되었습니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국어선생님을 기억하며 저도 선생님처럼 가르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이 수업에 들어온 사람들에게도 ‘망치’와 ‘철사줄’과 ‘빨래집게’와 ‘전지’가 기억나게 해달라고 심호흡을 하게 됩니다.

가르치려 덤비지 말고, 빈 서고에 책을 채우듯 서두르지 말고, 다만 몸으로 보여주라 하셨습니다. 한발 물러나 그 사람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 찬찬히 들여다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보일 때까지 자연을 관찰하는 과학자처럼 오래 살피라 하셨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그것이 보이면 그것을 끄집어 내 당사자에게 보여주라고만 하셨습니다. 스스로 배우도록 도우라 하셨습니다.

겨우 흉내만 내다 맙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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