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밥'으로 만나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착한 밥'으로 만나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 김용만 5·18민중항쟁제32주년기념 서울 연출감독
  • 승인 2012.05.18 10: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NGO 활동가 칼럼
▲ 김용만 5·18민중항쟁제32주년기념 서울행사 연출감독

세상에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없는 법이다. 과거가 현재를 낳고, 미래는 현재 속에 이미 깃들어 있다. 1980년 5월의 광주는 거시적으로 보면 동학혁명-항일의병운동-3·1운동-독립군 및 임시정부-4·19혁명-반유신으로 이어지는 민족민주운동의 전통 가운데 군부독재의 분수령에서 분화한 것이었다. 이후 80년대의 민주화운동은 5·18 진상규명으로 동력을 이어가다 광주의 진실을 밝히라는 시위로부터 비롯된 이한열의 죽음으로 87년 6월 항쟁의 거대한 물꼬를 열었다.

올해는 80년 5·18로부터 32주년, 87년 6월항쟁으로부터 25주년, 91년 5월항쟁으로부터 21주년, 명예를 회복한 97년 5·18특별법 및 국가기념일 제정으로부터 15주년을 맞이하고 있는 해이다. 그러나 옳지 않은 권력에게 대항하고 민주·인권의 가치를 목숨 걸고 드높이 외친 그 운동은 특별법에서 보듯 권력의 계승자들에 의해 80년 광주로 한정지어지려 하고 있다. 오늘날 5·18과 8·15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어린 세대들을 보면 어느 정도는 성공하고 있는 듯하다.

87년 대통령 직선제로 형식적인 민주화는 이루었다지만 국회 날치기와 최근 통합진보당 사태에서 보듯 내용상의 민주화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5·18의 역사적 의미가 80년 광주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넘어 전국화 되고 진보진영을 넘어 전 세대 전 계층에 확산되어야 하며, 구호가 아니라 문화로 승화되어 시민들의 저변에 스며들어야 하는 이유다.

이런 이유로 올해 5·18 서울 기념행사는 ‘착한 밥이 세상을 살린다’는 명제로부터 출발한다. ‘착한 밥’은 5·18 당시 시민군의 주식이었던 주먹밥으로 치환된다. 돌이켜 보면 옛적 과거 보러 떠나는 선비의 봇짐과 들일 나가는 농부의 소쿠리에는 늘 주먹밥이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대첩을 일구어낸 행주와 진주에도 주먹밥이 있었고 북만주에서 외로운 투쟁을 이어나가던 독립군의 배낭에도 어김 없이 주먹밥이 있었다. 80년 광주의 주먹밥은 내 것 네 것 없고 네 아들, 내 아들 없이 이땅의 어머니들이 민주를 위해 목숨 걸고 분연히 일어선 젊은이들에게 아낌없이 내어준 사랑이고 희망이고 공동체성의 표현이었다.

5월 18일 서울광장에서는 5·18 기념식 후에 바로 이어지는 점심 시간에 식후 행사로 ‘주먹밥 역사소풍’을 진행했다. 현장에 오는 누구에게나 옛날 소풍의 즐거웠던 기억을 일깨우는 주먹밥을 나누어줬다. 또 토크와 콘서트의 만남이 벌어져 ‘5월 화가’ 홍성담,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그리고 여균동 감독 등의 이야기 손님과 손병휘, 전경옥, 요술당나귀 등 노래손님이 노정렬 개그맨이 이끄는 라디오21 생방송으로 전파를 탔다.

5·18 민주화유공자들만의 행사가 아니라 모든 시민들과 함께 나누는 주먹밥 소풍, 18일 12번 열린 서울에서의 5·18 민주화운동 기념행사 가운데 특별해진 이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