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 이재훈 손에 죽고 싶었다.
유아인, 이재훈 손에 죽고 싶었다.
  • 티브이데일리 이소담 기자
  • 승인 2012.06.04 0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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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유아인은 솔직하다. 그리고 거침없다. 하지만 무례하지 않다. 예의바르다. 그를 보면 영리하단 생각이 든다. 현실적인 말들을 풀어내는 과정에서도 삶에 찌들었다기보다 오히려 매력 있다는 말이 튀어나오게 만드는 유아인.

드라마 ‘패션왕’ 강영걸을 통해 대중이 감추고 싶었던 욕망, 그리고 밑바닥 하나까지 모두 보여준 유아인. ‘결혼 못하는 남자’ 박현규, ‘성균관 스캔들’ 걸오에 이어 ‘패션왕’ 강영걸까지. 그가 연기한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6월의 시작을 남산자락에 자리한 한적한 곳에서 유아인과 함께 했다. 계속된 인터뷰에 지칠 법도 하건만, 그는 진지하고도 유쾌하게 자신의 생각을 내비쳤다.

# 유아인이 말하는 ‘결혼 못하는 남자’ 박현규, ‘성균관 스캔들’ 걸오, ‘패션왕’ 강영걸

“‘결혼 못하는 남자’ 박현규는 이전에 했던 역에 비해 밝고 유쾌하고 평범한 아이였다. 일그러지고 어둡고, 음지에 있던 역할만 했던 유아인이 이제야 양지로 나온 셈이다. 현규는 보편적인 정서와 겉모습을 갖고 있다. 젊고 감각적이지만 현실에선 돈도 없고 성공을 위해 달려 나가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때문에 건강한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귀여운 느낌을 살리려 노력했다.”

‘결혼 못하는 남자’를 통해 양지로 올라왔다 말하는 유아인. ‘성균관 스캔들’ 걸오는 유아인에게 또 다른 반환점이 됐다.

 

“걸오는 만화 속 판타지 그 자체다. 여성 시청자들의 환상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인물이다. 걸오는 원작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에서 워낙 인기 있었던 인물이었다. 인지도나 스타성 면에서 답보 상태를 거듭하던 나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내 안에 빠져 나를 만드는 데만 치중했던 유아인이 바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배역이었다.”

틀에 박힌 캐릭터를 거부한 유아인. 그는 자칫 백마 탄 왕자님 캐릭터로만 기억될 수 있었던 걸오에게 유아인만의 색을 입혔다.
 

“걸오는 남성적이라기 보다는 거칠고 투박한 자연인 그대로의 모습을 담으려 했다. 기존 마초 캐릭터들은 흔히 키 크고 터프가이로 대변됐는데, 걸오는 내 스스로가 많은 변화를 주려 했다. 그냥 짐승남이 아닌 유아인이 생각하는 짐승남을 표현했다. 남자답고 거칠고, 그러면서도 길들여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 말이다. 그래서 더 좋아해주셨던 것 같다.”

순애보적인 캐릭터였던 걸오. 그런 매력적인 캐릭터를 연기했던 유아인. 하지만 그가 다음으로 선택한 역은 욕망과 자격지심으로 얼룩진 ‘패션왕’ 강영걸이었다.

“영걸은 내가 맡은 역할 중 가장 현실적이다. 걸오 이후 연기한 인물이 영걸이란 점도 재밌지 않나. ‘패션왕’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큰 영향을 줬다. 걸오와는 반대되는 인물이니까. 걸오가 홍벽서로 나서고 사회를 위해 순수한 열망으로 달려갔다면, 영걸은 다소 불순한 인물이다. 대단한 인식과 개념 따윈 없이, 그저 돈과 성공만을 원하고 욕망한다. 불운했던 과거 덕에 더 일그러지고 망가진 캐릭터다. 당장 먹고 사는 게 바쁜 인물이다. 보통 드라마라면 불행한 현실 속에서도 밝은 청년 캐릭터로 나왔겠지만, 영걸은 달랐다. 그래서 좋았다.”
 

유아인은 그나마 자신을 영걸과 가장 닮았다고 했다. 가장 좋아하는 인물로는 현규를 꼽았다. 재벌 2세가 아닌 평범한, 키다리 아저씨가 아닌 일상 속 모습들이 좋단다.

“현규, 걸오, 그리고 강영걸. 세 인물의 꼭지점엔 유아인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연기를 할 수 있었고, 배우 유아인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평범한 현규가 좋다면, 영걸은 가장 못난 놈이라 좋다. 못난 자식에게 눈길이 더 가는 것처럼 말이다.(웃음)”

# 유아인, 영걸을 변호하다.

“영걸에게 매력이 있나?(웃음) 그 부분이 참 어려웠다. 강영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이어야 하니까. 사실 성공적이진 못했다. 충분히 매력적이진 않았던 것 같다. 그나마 자연스럽고 활동적인 캐릭터에 팔딱 뛰는 면도 있지만 대중이 좋아할만한 매력은 아니었다. 대신 영걸에겐 순수함이 있다. 그가 하는 못된 짓들도 대단히 악의적이고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영걸에겐 정재혁이 모든 것의 기준이었다. 성공한 남자의 표본이었다. 재혁처럼 되고 싶어서 한 짓이랄까.”

영걸의 욕망은 성공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는 극 초반엔 안나를 원했고, 갈수록 가영에게 집착했다.

“영걸은 사랑을 모르는 애다. 멜로적인 감성으로 봤을 때 가영에 대한 영걸의 마음은 사랑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사랑의 감정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사랑이라 말 할 수 없는 감정인 것 같다. 시청자들은 영걸이 가영을 두고 밀고 당기기를 한다고 느꼈다는데, 난 그냥 영걸이 가영을 사랑하지 않았다 본다. 영걸은 그저 가영을 아끼고 지켜주고 싶었던 거다.”

이러한 영걸을 연기하기 위해 유아인은 소소한 것 하나까지 신경을 썼다. 하지만 억지로 무언가를 만들어내진 않았다. 호흡부터 코를 찡긋 하거나 살짝 떨리는 대사톤까지. 이 모든 것들은 영걸인 동시에 유아인이기도 했다.

“영걸의 경우 먹는 호흡으로 숨을 들이마시고 나서 대사를 시작하곤 했다. 턱을 들고 대사를 한다거나 툭툭 내뱉듯이 말을 했다. 표정도 이전 작품들보다는 훨씬 많이 썼다. ‘패션왕’ 강영걸은 절제하기보다 과장되게 보이도록 했다. 기본적으로는 내가 갖고 있는 것에서 시작한다. 어떤 것을 확장하고 차단할 것인지를 결정하고 캐릭터를 연구한다. 영걸을 통해서는 내 안의 영걸을 확대해서 보여줬다. 갖고 있지 않은 걸 억지로 설정하진 않는다. 움직임도 말투도 말이다. 유아인의 연기는 진짜에서 출발한다.”

# 패션, 그리고 유아인

드라마 ‘패션왕’은 제목부터 패션을 소재로 했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정작 패션에 있어선 많은 것들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유아인의 패션은 극 초반, 그리고 중후반으로 갈수록 보는 재미를 더했다.

“초반엔 약간 귀엽고 과하게 멋 부린 느낌을 주려 했다. 일부러 아이템들을 하나씩 더했다. 영걸의 초반 콘셉트는 ‘하나 더하기’였다.(웃음) 니트 위에 멜빵을 하고, 그 안에 컬러가 있는 티셔츠를 입었다. 여기에 반지도 그렇고 청바지에 화려한 양말로 여러 곳에 포인트를 줬다.”

동대문에서 일하던 강영걸은 극 후반부로 갈수록 돈을 손에 쥐게 되며 많은 변화를 겪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돈을 쓰는 방법도, 사랑하는 모습에서도 말이다. 그런 영걸의 모습을 유아인은 패션을 통해 상투적이지 않게 풀어냈다.
 

“영걸의 성공 이후 패션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영걸은 돈을 벌긴 했지만 근본부터 고급스러운 애는 아니었다. 사실 처음엔 셔츠에 슈트를 입으란 요구도 있었다. 그런데 싫더라. 전형적인 성공의 모습으로 대변되는 슈트차림이 싫어서 고민을 했다. 그러다 화려한 티셔츠를 입기 시작했다. 대신 진은 거의 안 입었다. 면팬츠에 정장팬츠를 입고 거기에 셔츠 대신 컬러가 강렬한 니트나 상의를 주로 매치했다.”

# 영걸의 죽음

‘패션왕’ 마지막회에서 영걸은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영걸의 죽음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영걸에게 총을 겨눈 사람이 누군지에 대해 많은 시청자들이 궁금증을 표했다. 유아인에게 영걸에게 총을 겨눈 사람이 누구냐 묻는 대신, 누구에게 죽임을 당하고 싶었는지 개인적인 의견을 물었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재혁이 죽였을 가능성이 크다. 영걸은 재혁을 향해 달려갔고, 재혁이 가진 것들에 대해 욕망했다. 영걸에게 재혁은 욕망의 표상이었다. 성공과 돈, 모든 것이 영걸에겐 재혁으로 대변됐다. 그렇게 봤을 때 영걸은 재혁에게 죽임을 당하는 게 낫지 않나 생각한다. 개인적으론 다른이들보다 이제훈에게 죽임을 당하고 싶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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