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S Map으로 본 한국의 종 다양성과 ‘죽기 살기’의 획일사회
GIS Map으로 본 한국의 종 다양성과 ‘죽기 살기’의 획일사회
  • 송규봉 본지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12.06.23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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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62주년, 지금도 묻는다 ‘너는 어느 편이지?’
▲ 6.25 전쟁이 끝난 후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이 트럭에 실려 고아원으로 가는 모습(왼쪽 사진). 2012년 영등포구가 호국 보훈의 달인 6월을 맞아 안보 전시관을 운영하는 중 구민어린이집 어린이들이 6.25 관련 사진을 관람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전쟁의 뒷모습

3년 1개월에 걸친 한국 전쟁은 한반도 전체를 폐허로 만들었다. 한국전쟁은 우리민족의 역사에 가장 처참하고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참전한 외국의 병력까지 극심한 피해를 입었으며 이때 사용된 폭탄의 수는 불분명하지만 1차 세계대전에 맞먹는다고도 한다.

역사 이래 가장 많은 국가인 25개국 약 150만 명의 군인이 한국전쟁에 참여했다. 그 결과 한국군 62만 명, 유엔군 15만 명, 북한군 80만 명, 중공군 97만 명이 죽었다. 민간인 살상100만 명, 이재민 370만 명, 전쟁미망인 30만 명, 전쟁고아 10만 명, 이산가족 1000만 명 등 당시 남북한 인구 3000만 명의 절반이 넘는 1800만여 명이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천문학적인 숫자는 미국이 5년간 치른 남북전쟁과 비교된다. 남북전쟁에서는 당시 인구 3%에 해당하는 100만여 명의 사상자가 났다. 제2차 세계대전시 최대의 피해를 입었던 유럽도 인구의 10%인 3000만 명이 인명손실을 입었을 뿐이다. 또한 물적 피해도 엄청나 전국이 초토화되는 과정에서 인명피해 못지않은 괴멸적 타격을 입었다.

소련의 통계에 따르면 당시 북한 인구의 11.1%에 해당되는 113만 명의 인구가 전쟁을 통하여 사망하였고, 양측을 합하여 250만 명이 사망하였다. 80%의 산업시설과 공공시설과 교통시설이 파괴되었고, 정부 건물의 4분의 3이 파괴되거나 손상되었으며 가옥의 절반이 파괴되거나 손상되었다. 암흑기라고 기록되었다. 이상은 <6·25 전쟁사>와 위키피디아 백과사전(wikipedia.org)에서 발췌했다.

끝나지 않은 전쟁

“형님, 접니다. 오늘 6·25 전쟁 사진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 육사에 다녀와 하나회가 모였답니다. 이번 대선에서 좌파가 집권하면 3개월 내에 군이 일어나겠다고 그랬답니다. 이제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형님.” 지난주 종로에서 약속을 기다리다 우연하게 듣게 된 어느 반공단체 회원의 통화내용이다.

종묘공원은 3개 그룹으로 나뉜다고 한다. 공원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종묘공원은 나오는 노인들의 이념적 성향에 따라 세 구역으로 나뉜다. 정문을 기준으로 오른쪽은 우파 성향 노인이, 왼쪽에는 좌파 성향이, 그리고 가운데에는 중도파가 모인다. 한 관리사무소 직원은 “주 업무가 노인들 간 다툼을 말리는 일”이라고 했다.(동아일보, 2010년 7월 19일자)

국립묘지도 동작동, 4·19, 5·18 3개로 나뉜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이 세 국립묘지는 통합의 상징이 아니라 분열의 상징으로 존재합니다. 이들 묘지는 각각 보수(현충원), 중도(4·19 민주묘지), 진보(5·18 민주묘지)를 상징하며 ‘광기’와 ‘야만’이 낳은 현대사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재 여전히 등을 돌리고 서 있습니다.” ‘국민의례’를 하는 사람들은 ‘민중의례’를 안 하고, ‘민중의례’를 하는 사람들은 ‘국민의례’를 하지 않는다. 정치컨설턴트 박성민의 대담집 <정치의 몰락>에서 나오는 대목이다.

오늘날 이와 같은 분열의 한국문화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이렇게 말한다. “6·25를 겪은 한국 사람하고 이전 사람은 같은 한국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전쟁에서 생존하는 것 그거 하나가 목적이지. 서로 총칼을 겨눴습니다. 국군편이냐 인민군 편이냐 총칼을 들이대고 물어, 누가 착하고 나쁘고, 전쟁을 하는 데는 네 편 내 편 밖에는 없는 거예요.”

“어느 하나에 편서지 않으면 못사니까. 해결은 안 되도 줄 서는 것에 민감했지요. 눈치 봐가지고 줄 잘못 서면 그냥 죽고 줄 잘 서면 막 출세하고. 그것은 창조가 아니지요. 선택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역사는 있는 것 중에서 그냥 고른 거예요.”
2012년 겨울,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6·25 전쟁은 아직도 52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남북을 가르고, 동서를 가르고, 세대를 가르고 심지어 국립묘지와 서울 한복판 공원도 갈갈이 찢어놓고 있다. 지금도 우리사회는 각자에게 위협적으로 묻는다. 너는 어느 편이냐고.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사람들은 왜 의견과 사실을 구별하지도 않고 의견을 사실처럼 말해버리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해버리는가. 왜 그런가. 그건 아마도 그들이 당파성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작가 김훈이 <바다의 기별>에 적어놓은 글이다. 그의 다른 책,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에서 하나 더 인용한다. “어느 편인가를 밝히라는 말은 대체 무슨 말인가. 잠꼬대인가 술주정인가. 언어는 더 이상 인간의 말이 아니다. 아무런 의미도 담겨져 있지 않은 음향처럼 들린다. 지옥의 모습은 본래 이러하다.”

2008년 ‘광화문 문화포럼’ 초청강연에서 김훈(사진)은 말을 이어간다.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지 않는, 인간의 소통에 기여하지 못하는 언어가 횡행하고 있어 단절이 완성돼가고 있다. 이것은 지배적 언론이나 담론들이 당파성에 매몰돼 그것을 정의, 신념이라고 믿기 때문인데 나는 신념이 가득찬 자들보다는 의심에 가득찬 자들을 신뢰한다.”

조금 더 들어보자. “언어는 다른 사람에 의해 부정되고 수정될 수 있는 허약한 것이라는 점에서 힘을 갖는데 우리 시대 언어의 모습은 돌처럼 굳어지고 완강해 무기를 닮아가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당면한 현실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정서적, 이념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사실 위에 정의를 세울 수는 있어도 정의 위에 사실을 세울 도리는 없다.”

오성과 한음 - 당파의 피해자들

오성(鰲城)과 한음(漢陰)은 선조와 광해군 시대의 명재상으로 이름을 남겼다. 한음 이덕형이 오성보다 문과에도 빨리 급제했고, 벼슬도 빨리 올라갔다. 다 같이 영의정을 역임했지만 한음은 37세에 영의정이 되고, 오성 이항복은 그보다 늦었다.

한음 이덕형은 임진왜란 전후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며 당대 최고의 인재가 되었다. 국난극복에 매진하고 선조와 광해군 양대에 걸쳐 최고관직에 오르지만 당쟁의 소용돌이를 피해가지 못했다. 삭탈관직된 상태에서 낙향하여 임종을 맞았다. 전장의 이순신 장군을 불러올려 고문을 했던 것은 임금과 당파에 가담한 신하들의 합작품이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임진왜란 전후로 이덕형이 올린 상소의 대부분은 당파의 폐단을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과제로 지적한다. 당파의 한복판에서 이덕형이 진단한 당파의 문제점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사익과 공익의 기준으로 구분하였다. 그는 일관되게 당파에 가담하거나 당파를 이용하는 임금과 사대부의 사(私)됨을 통절하게 비판한다.

사대부와 관리가 공적(公的) 명분을 내세워 사리(私利)를 도모하고 정치가 정당한 비판의 장이 아니라 개인과 당파의 이익을 위해 편을 갈라 싸우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익이 있는 곳에 서로 싸우는 데 용감하고, 몸과 지위만 보존하고, 직무를 회피하여 휴가를 청하는 행태를 보이는 관리들의 무능과 태만을 비판했다.

당쟁을 극복하는 시작과 끝은 결국 백성의 삶에 직결되는 굶주림, 질병, 곤궁, 세금, 국방, 인사 등 정책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로 구분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에도 당파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강화되었다. 조선의 백성은 여전히 기아와 질병에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었다.

정부는 아전뿐만 아니라 지방관의 봉급을 지급하지 못하고 구조적인 비리를 끊지 못하였다. 관리들의 휴가와 이직, 부패 등으로 무능한 행정이 계속되고 군사력은 정비되지 않은 채 30년 뒤 병자호란을 다시 맞이하게 된다. 조선시대, 전쟁 때문에 임금이 죽은 적이 있는가? 모두 백성들이 죽어나갔다.

분열의 피해자는 국민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로 수십 년간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 중에 있다. 애국, 이념, 역사, 정의, 국가, 민족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싸우고 있지만 정작 희생자들은 국민이고 서민이다. 서로에 대한 증오와 불신이 지나쳐 정작 가장 중요한 ‘사람’과 ‘사랑’을 잃기도 하고 잊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너무 무례하고 폭력적이다.

박성민 컨설턴트는 언어폭력의 심각성도 지적한다. “우리가 생각이 다른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모자라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죠. … 민주주의의 역사는 폭력에 저항한 역사입니다. 민주주의는 폭력을 수단으로 갖지 않아요. 폭력은 민주주의의 적입니다. 폭력으로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습니다. … 폭력은 야만입니다.”

당파는 충성심으로 유지된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단순무식한 충성심이 중요하다. 당파는 실력이 아닌 충성도를 가지고 인재를 등용한다. 그렇게 배치된 인재는 전체 조직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담한 작은 파벌의 이익을 최 우선으로 챙기게 된다. 주도권을 쥔 당파가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 추구하는 동안 전체 구성원은 최대의 피해자가 된다. 그렇게 당파는 또 다른 야만을 낳는다.

차이가 에너지다

세상 사람을 두 가지로 나눈다면 어떤 기준이 있을까? 오만한 사람과 관대한 사람은 어떤가? 차이를 인정하고 차이에서 에너지를 구하는 것이 관대함이다. 물의 높낮이 차이를 이용해 수력발전소를 세우는 지혜이다. 오직 나만이 옳다는 오만은 차이를 들어 상대방을 차별한다. 피부색으로 성별로 고향으로 나이로 출신학교로 성적으로 지지정당의 이름으로 ‘너는 안 돼’라고 말한다.

아홉 명이 뛰는 야구는 각자 정해진 위치와 순서대로 수비도 하고 공격도 한다. 뛰어난 팀일수록 투수와 포수와 4번 타자를 한 선수가 겸하는 곳은 없다. 기타는 여섯 줄의 차이를 전제로 화음을 빚어낸다. 교향악단은 100명이 넘는 단원들이 저마다 다른 악기와 음색으로 감동을 연주한다. 자연도 생물종다양성의 지혜로 공존공생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관대함은 조화와 연대를 낳고 오만은 분열과 증오를 잉태한다. 관대함은 신뢰로, 오만은 불신으로 연결된다. 관대함은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활용하여 서로의 가치를 높이는 지혜이다. 상대방을 인정할 줄 모르는 우리사회의 극단적 이기주의와 미숙한 토론문화는 관대함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나부터 그리 해야겠다.

불교의 핵심어가 ‘자비’요 기독교가 ‘사랑’이라면 유교는 ‘인’이다. 인은 우리말로 ‘어질다’라고 번역하지만, 인을 ‘사람을 사랑함’으로 때로는 ‘사람다움’이나 ‘지혜로운 인간관계’로 해석할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은 <논어고금주>에서 “인이란 두 사람의 관계다. 두 사람 간의 관계를 잘 수행할 때 획득되는 실천적 개념이다’고 해석했다. 공자는 자신을 먼저 낱낱이 살펴 상대방을 헤아리는 것을 ‘인’이라고 했다.

요순시대를 대표하는 순임금은 원래 농사꾼이었다. 농사꾼으로 시작해 도공, 어부를 거쳐 천자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낮추고(겸손), 상대의 말을 들어주며(경청), 무슨 일이든 남과 함께하기(공존)를 최고의 선으로 여겼다고 한다.

우종민의 <커뮤니케이션 기법 ABC>를 보면 소통이란 두 사람이 아니라 사실 네 사람이 대화하는 것이라고 적고 있다. “한 사람 속에는 두 개의 자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은 겉의 자아들(행동하는 자아) 간의 대화가 아니라 속의 자아들(관찰하는 자아) 간의 소통에 있다.” 실은 사람됨의 이해와 그 이해를 통한 관계의 형성, 그리고 신뢰의 구축이 커뮤니케이션 기법의 ABC라고 알려준다.

가치종다양성

6월의 산천이 아름다운 것은 초록 때문이 아니다. 저 초록을 이루는 풀과 나무의 제각각 다름 때문이다. 다르지만 하나로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갯벌이 아름다운 것은 해질녘 노을 때문이 아니다. 갯벌 속에 담겨진 생명들 때문이다. 환경부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 갯벌 아홉 곳에서 모두 850종 이상의 생물이 서식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식물 146종, 동물 687종이다. 홍게, 낙지, 키조개, 꼬막이 자라 우리의 식탁이 풍성하고 다채로워진다.

우리나라에는 4300가지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동물의 경우는 야생조류 316종, 포유류 20종, 양서파충류 38종, 담수어류 150종, 나비류 254종이 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더 다양한 생물이 우리나라 전역을 덮고 있었으나 조선말의 도벌, 일제의 수탈, 한국전쟁을 겪으며 국토가 파괴되었다. 거기에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서식지의 파괴와 환경오염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이 늘고 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자연환경 보전법’이다.

사람의 사상, 이념, 종교, 세계관도 다양성의 이름으로 보호받아야 한다. 생물종다양성과 함께 가치종다양성도 주창되어야 한다. 우리가 분열하는 것은 서로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품격 있게 살지 못하는 척박함 때문이다. 나무들은 과거를 따지지 않고 오늘의 햇살 아래 푸르다. 나무는 서로 고향도 친족도 편도 따지지 않는다.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또 각자의 자리에서 자태를 드러내며 다채로움을 이룬다.

종의 다양성이 생명의 조건이듯 가치의 다양성이 사회의 조건이다. 나무도 귀하게 여겨 함부로 베지 않는다. 하물며 사람은 말해 뭐하겠는가? 그러나 과거사와 이념논쟁은 사람을 칼로 베고 자르고 증오심으로 불태운다. 이념도 가치도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다. 사람 아래 이념이 있지, 이념 아래 사람을 둘 수는 없지 않은가.

백두대간 월악산국립공원에 생물학자들이 들어가 식물다양성을 조사했다. 신갈나무, 소나무, 굴참나무를 중심으로 조록싸리, 잣나무, 노린재나무, 쇠물푸레, 진달래가 있었다. 같은 팀이 월출산국립공원에 들어가 리기다소나무, 때죽나무, 생강나무, 굴피나무, 노린재나무, 쪽동백나무 등을 기록했다. 백두대간에 딱 한 종류의 나무만 있다면 어떨지 상상해보자. 그건 똑 같은 얼굴, 음성, 생각을 가진 5000만의 사회를 상상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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