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S Map으로 본 미술관과 박물관 안내도
GIS Map으로 본 미술관과 박물관 안내도
  • 송규봉 본지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12.06.29 13: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라, 마음으로 보라! 지금 있는 곳이 신세계가 되리니…”
▲ 국립중앙박물관 관람객들이 전시된 고려 헌종 (1010) 원년에 만들어졌다는 청동 범종(국보 280호) 천흥사 종에 대한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고 있다.[사진=뉴시스]

여름이 시작되던 어느 날, 출판사에 다니는 친구가 책 한 권을 들고 찾아왔다.
그 책의 발행일은 ‘1999년 6월 25일’로 찍혀 있었다. 미술에 대해서 완전히 ‘깜깜이’던 나에게 친구가 건넨 책은 <반 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감동적인 편지모음이었다.

그리고 몇 년 후 미술관에서 고흐전이 열렸다. 이전에는 그림 앞에 의자를 놓아두는 것이 노약자를 배려하기 위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A4 용지 크기의 고흐 자화상 앞 의자에 앉아 아주 오래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미술관 옆 박물관의 여름
친구의 선물이 아니었던들, ‘아~ 고흐’ 중학교 교과서에서 암기한 기억으로 휙~하니 둘러보다 말았을 것이다.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과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잠시 그의 눈으로 그가 바라본 세상을 그 사람의 심정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깊이 바라보는 것이 첫 번째 관문인가 보다.

여름이 왔다. 아이들은 방학을 기다리고 일하는 사람들은 휴가를 기다린다. 여행을 계획하고 밀린 소망 리스트를 꺼내 들고 무엇을 할까 어디로 갈까 잠시 마음이 즐거워지는 시절이다. 세계 최장 노동시간에 지친 어른들과 세계 최강 기말고사에 진이 빠진 학생들이 숨통을 트고 싶은 시즌이 다가온다.

비싼 돈을 들이지 않고도 정신적으로, 지적으로 더 넓어지고 깊어질 방법은 없을까. 제대로 다녀오려면 몇 백만 원이나 하는 여행 상품이나 제대로 갖추자면 수백만 원이 넘는다는 캠핑 장비가 너무나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많다. 입장료 한 장에 겸손한 시선이면 충분한 여름여행을 꿈꿔본다.

■회계사를 위한 데생수업
만화영화 토이스토리를 만든 픽사(Pixar)라는 회사에는 사내 대학이 있다. 어느 날 픽사대학의 데생수업에 회계 담당자가 수업을 듣고 있었다. 기자가 궁금해 물었다. “회계 담당자가 데생수업을 듣는 것이 꼭 필요한가요?” “데생수업은 그림 그리는 것만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그 수업을 통해 관찰력이 향상됩니다. 직원들이 뛰어난 관찰력을 갖추겠다는데 득이 될 게 없다고 말리는 회사가 있을까요?”

픽사는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무한한 잠재력을 가졌다고 믿는다. 그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돕기 위해 픽사대학은 110여 개 이상의 사내강좌를 열고 있다. 픽사는 직원들에게 근무시간 중 1주일에 4시간을 교육에 할애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전직원이 학습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독특한 교육환경을 조성한 것은 직원 개개인의 지속적인 성장을 돕기 때문에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실제로 픽사는 모든 직원들이 사내 자기계발 프로그램인 픽사대학을 통해 교육을 받아야 한다. 행정직, 기술직, 경영진을 물론 건물 관리인, 경비직원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픽사대학 강의실에는 직원들 틈 사이에 CEO도 끼어 있다. “창의력은 지위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지위가 높다고 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말이죠. 창의력은 그저 그것이 나오는 곳에서 나올 뿐입니다.” 픽사의 CEO 캣멀의 말이다.

■시청(視聽)과 견문(見聞)
심부재언, 시이불견, 청이불문, 식이부지기미(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基味).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광고기획자 박웅현이 자주 인용하는 구절이다. 시청은 흘려보고 흘려듣는 것이고 견문은 깊이 보고 깊이 듣는 거다. 그래서 TV는 시청하게 되고, 명작은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한 헬렌 켈러(Helen Keller)가 젊은 날에 쓴 에세이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의 한 대목이다. 어느 날 산책을 다녀온 친구에게 산책 어땠어? 물었다. 그 친구는 시큰둥하다. ‘어, 뭐 별거 없었어.’ 그저 그렇다는 말이다. 어린 시절 이후 내내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온 헬렌 켈러는 그 친구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저 그렇다니. 만약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자신은 무엇을 볼 것인가 적어 나간다.

“앞을 볼 수 없는 내가 무엇이건 볼 수 있는 당신들에게 줄 수 있는 힌트가 있다. 내일 장님이 된다고 상상하고 오늘 당신 눈을 사용해 보라. 똑 같은 방법을 다른 감각에도 적용해 볼 것을 권한다. 마치 내일부터 들을 수 없을 것처럼 목소리들의 음악을 듣고, 새의 노래를 듣고,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어보라.”
“마치 내일부터 냄새를 맡을 수 없을 것처럼 꽃의 향기를 맡아보고 작은 음식 한 조각씩 맛을 음미해보라. 한 순간 한 순간 감각 하나 하나를 불러 일으켜보라. 자연이 베풀어주고 있는 모든 것들과 만나는 감각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영광을 누려보라. 그러나 내가 장담컨대 보는 것이 가장 행복한 감각일 것이다.”

■사과 하나로 놀라게 하리라
세상에 유명한 사과가 3가지 있다. 첫째가 이브의 사과, 둘째가 뉴턴의 사과, 셋째가 폴 세잔의 사과다.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한다면 스티븐잡스의 사과가 들어갈 수 있을까. 파블로 피카소가 ‘세잔은 나의 유일한 스승이다. 나는 그의 그림을 자주 보았고, 여러 해 동안 연구했다. 세잔은 우리 모두에게 아버지 같은 사람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TOP 10’이라는 기사가 떴다. 경매에서 낙찰된 역대 최고가 1위는 프랑스의 거장 폴 세잔(Paul Cézanne)이 그린 1893년 작품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이 선정되었다. 경매 당시 무려 2억5000만 달러(한화 약 2900억 원)에 달했다.

세잔은 파리의 살롱 전시회에 여러 번 낙선한다. 결국 미술의 세계수도인 파리를 등지고 고향 엑스 프로방스로 낙향한다. 이때 그가 던진 말이 있다. ‘나는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할 거요!’ 평론가 타데 나탕송이 ‘사과의 화가’라고 부를 정도로 폴 세잔은 사과를 즐겨 그렸다. 미술사학자 벤투리는 세잔의 정물화에는 화가의 삶과 기쁨, 고뇌마저 들어 있다고 평가했다.

깊은 사색주의의 거장이었던 폴 세잔은 언젠가 사물의 향기도 볼 수 있노라고 말한 바 있다. 인간은 사색하는 상태에서만 자기 자신의 밖으로 나와서 사물들의 세계 속에 침잠할 수 있다. 메를로-퐁티는 풍경에 대한 세잔의 사색적 관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우선 그는 다양한 지층을 명확하게 이해하려고 시도했고, 그다음에는 더 이상 꼼짝하지 않은 채 세잔 부인의 말처럼 ‘눈이 머리에서 튀어나올 때까지’ 그저 바라만 보았다. … 그는 말했다. 풍경은 내 속에서 스스로 생각한다. 나는 풍경의 의식이다.”

세잔은 ‘돼지 같은 작자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들과 한심한 비평가들이 득실거리는 파리를 혐오했다. 그는 고향에 정착하여 사과와 산으로 자신만의 세상을 구성해나갔다. 자연에서 받은 풍부한 느낌과 표현 방법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가 결합된 걸작들이 탄생했다. 그는 세속의 명성을 뒤로 하고 ‘은둔’의 삶을 살며 자신만의 작업에만 몰두했다. 실제 사과 하나로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다.

■박물관, 보는 것을 배우는 곳
죽기 1년 전, 말년의 세잔은 젊은 화가에게 편지를 쓴다. “박물관은 우리에게 읽기를 가르치는 교과서입니다. 그러나 이름난 선배 화가들의 훌륭한 양식을 고수하는 데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탐구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들에게서 벗어나 우리의 정신을 해방시켜야 합니다.”

소설가 김훈은 박물관에서 그의 대표작 두 편을 건져 올렸다. <칼의 노래>는 현충사 전시실에 놓인 이순신 장군의 칼에서 나왔고, <현의 노래>는 악기박물관에서 잉태되었다. 김훈이 좋아하는 놀이 목록에는 ‘박물관 구경가기’가 있다. 젊어서 <난중일기>라는 이순신의 글을 읽기도 했지만, 늙어서 현충사에 가서 이순신의 칼을 들여다보지 않았더라면 <칼의 노래>를 쓸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30년 가까이 광고계에서 ‘상상력의 멘토’로 불리고 있는 박웅현 디렉터는 관찰해야 통찰을 얻는다고 알려준다. 그는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는 카피로 유명해져 ‘세상의 모든 지식’과 ‘생각이 에너지다’로 이름을 날렸다. 창의성의 본질은 희귀한 발상이 아닌 일상의 통찰에서 온다고 강조한다.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에는 관찰의 힘에 관하여 김훈의 글쓰기를 하나의 모범사례로 들고 있다.

여름, 자두와 수박을 먹는 우리들을 잠시 생각하게 하는 구절을 옮겨본다. 그간 살아오며 우리는 몇 개의 자두와 몇 개의 수박 조각을 먹었던가? 우리는 자두와 수박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똑 같은 과일이 작가의 눈에는 이렇게 보이나 보다.

“자두의 생김새는 천하의 모든 과일들 중에서 으뜸으로 애로틱하다. … 자두는 식물임에도 불구하고 동물적 에로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수박의 향기는 근본적으로 풀의 향기다. 풀의 향기가 수분에 풀려서 넓게 퍼진다. 자두의 향기는 전혀 다르다. 자두의 향기는 육향에 가깝다. … 자두를 만져보면, 그 감촉은 덜 자란 동물의 살과 같다.”“자두는 껍질을 깎을 필요도 없이 통째로 먹는다. 입을 크게 벌려서, 이걸 깨물어 먹으려면 늘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이 안쓰러움이 여름의 즐거움이다. … 수박은 천지개벽하듯 갈라진다. 수박이 두 쪽으로 벌어지는 순간, ‘앗!’ 소리를 지를 여유도 없이 초록은 빨강으로 바뀐다. … 돈과 밥이 나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것은 필시 흥부의 박이다.”

■사랑해야 보이는 것들
1795년 정조 때의 문장가인 유한준(兪漢雋·1732-1811)은 당대의 수집가였던 김광국의 화첩 <석농화원(石農畵苑)> 발문에서 서화를 대하는 안목을 ‘아는 단계(知)’, ‘사랑하는 단계(愛)’, ‘볼 줄 아는 단계(看)’, ‘모으는 단계(畜)’ 등 네 단계로 나누어 설명했다. 

여기서 가장 높은 경지는 ‘아는 단계’이다. 안다는 것은 맥락과 표현 너머에 있는 이치와 경지를 만나는 단계를 뜻한다. 이를 유홍준 교수는 그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유한준의 글을 빌려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고 적고 있다.

스탠포드대학교 디자인스쿨은 ‘디자인으로 사고하기’를 교육의 지표로 내걸고 있다. 달리 표현하자면 ‘디자인 사고(Design Thinking)’를 강조한다. 디자인 사고를 다섯 단계로 구분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 관문이 감정이입이다. 디자이너는 반드시 기능의 통합뿐만 아니라 미적 역할까지 고려해야 하며, 사람들의 생각 과정과 감정을 이해해야만 좋은 디자인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식의 최고 형태는 사람을 아는 것(지인·知人)이라고 <논어>는 적고 있다. 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관심과 애정 없이도 잘 알 수 있을까? 사랑하지도 않는 것을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사람을 사랑(愛人)해야 한다는 등식이 이루어진다.

■고흐의 마지막 편지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첫 편지다. “산책을 자주 하고 자연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여,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사람이다.”(1874년 1월)

고흐의 초반기 작품은 온통 회색과 검은색이 지배한다. 그의 내면과 생활환경을 대변한다. 그러다 햇빛이 눈부신 남프랑스 지방으로 옮긴 후 그의 걸작들 속에 색채들은 화려해져 눈부시다. ‘될 수 있으면 정기적으로, 집중하면서, 핵심에 근접해서, 완벽한 평온과 안정 속에서 작업을 계속’해 나가고 싶어 한다.

‘이런저런 유파에 속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진정으로 표현하는 그림을 남기고 싶다. 그것이 나의 목표다. 이런 생각에 집중하면 해야 할 일이 분명해져서, 더 이상 혼란스러운 게 없다.’ 1888년 한 여름에 보낸 편지다.

그가 자살하기 직전에 보낸 마지막 편지. “화가들은 자신의 그림을 통해서만 말할 수 있는 것 같다. … 내 그림. 그것에 내 생명을 걸었고, 머리도 그것 때문에 흐리멍텅해졌다.” 고흐가 1890년 7월에 남긴 마지막 편지의 구절이다.

■감탄하라
휴가철에 어울릴만한 시가 있다. 오래 전 광화문 교보빌딩 현수막에 내걸려 시민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문장이다.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 시인 고은의 ‘낯선 곳’이다. 낯선 곳이 꼭 해외이거나 먼 곳의 여행지일 필요는 없다.

낯설게 보려할 때 서 있는 자리가 바로 낯선 곳이다.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그 꽃.’ 고은의 ‘그 꽃’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똑 같은 것을 다시 보고 깊이 보고 느껴도 보고 추억도 얹어보고 눈감고도 보면 어떨까. 고갱은 ‘나는 보기 위해 눈을 감는다’고 하지 않았나.

세잔은 상투성은 예술에서 있어 문둥병과도 같은 거라고 경계했다. 눈앞에 보이는 껍데기를 잊고 진짜 눈에 보이는 것의 형체를 붙잡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새로운 것을 보고 만나기 위해서는 미술관도 박물관도 필요치 않을 것이다. 새로 보려면 내 마음이 새로워져야 하고 마음이 새로워지면 주변은 더 이상 지난날의 풍경이 아닐 터이니.

방학과 휴가 동안,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많은 것들을 다시 보고 감탄하면 좋겠다. 감사(感謝), 감탄(感歎), 감동(感動), 감명(感銘)은 모두 ‘느끼는 마음(感)’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감사는 고마움을 품는다. 감탄은 마음 깊이 느껴 감동으로 마음이 움직인다. 그리고 감명은 감동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다.

매일 같은 길을 걷고, 매일 같은 것을 먹고, 매일 같은 생각을 하는 삶은 죽은 삶이라 했다. 반복되는 똑 같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다시 보고, 멀리 보고, 돌아보고, 굽어보면 마음에 새로운 감탄사가 가득할지 모른다. 그렇게 살고 싶다. 그래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라도 가볼까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