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S Map으로 보는 드러나지 않았던 삶의 구석
GIS Map으로 보는 드러나지 않았던 삶의 구석
  • 송규봉
  • 승인 2012.07.14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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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길·새 지도 만드는 사람의 행복에 비춰진 지도자의 자격

숲길이 저절로 자란다? 경기도의 작고 야트막한 산에서 의문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놀랍게도 숲 속의 길이 매일, 조금씩 길어지고 있다는 소문이다.

며칠 간격으로 찾은 산의 숲길이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조금씩 길어지고 있다. 보통, 숲길은 그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길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그것이 아니라면 지자체에서 산책로 조성을 위해 공사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느 TV 프로그램 제작진이 전후사정을 파악해보기로 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날마다 자라나는 숲길의 진상을 살펴보기로 한 것이다. 가장 먼저 산을 관리하는 기관을 찾아 숲길에 대해 문의했다. 담당 공무원은 내막을 잘 모른다. 또한 산을 찾은 주민들과 등산객도 숲길에 대해 묻자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없다.

■특종, 놀라운 세상
매일 등산로를 찾는 주민들은 공사하는 것을 본적이 없단다. 분명한 것은 10여 년 전부터, 누군가가 매일같이 숲길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제작진은 두 시간 남짓 등산로를 구석구석 살피다가 작업 중인 길이 멈춰진 곳을 발견하고 그곳에 스티커를 붙여 표시를 해둔다. 다음날 다시 찾아가니 길이 멎은 곳으로부터 새로3미터 전진해 있다. 그 사이 누군가 길을 더 만들어 놓은 것이다.

산악자전거에 GPS와 거리측정기를 달고 등산로를 모두 돌아보니 연장길이는 10킬로미터에 달한다. 낮은 뒷동산에 미로처럼 숲길이 촘촘히 만들어졌다. “좋죠. 좋은 게 뭐냐고 하면 노인들이 올라갈 수 있게 높은 곳과 낮은 곳의 변화가 없는 평지길이라 좋더라구요.” 한 할머니의 평가다. “둘레길로 너무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는 가까운 산으로 안가고 멀어도 꼭 이쪽으로 와요.” 사십대 주부들의 이야기다.

숲길 전문가 한광용 박사는 ‘숲길 정책의 발전방향’이라는 논문을 발표했고, 현재 사단법인 ‘나를 만나는 숲’의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작진은 한 박사를 현장에 직접 초대해 의견을 들었다. “좋아요. 길이 너무 좋아요. 굉장한 전문가 실력이신 것 같아요. 주변에 있는 나무들도 자르지 않고 아주 정말 산이 가지고 있는 생태적인 것을 살린 형태로 길이 만들어져 있는 거예요. 아마 우리나라에 이런 의미를 가진 길은 이곳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지의 누군가에 의해 작고 볼품없던 뒷동산이 활기를 띄고 등산객들은 산책의 행복감에 젖는다. 산책하는 사람, 마라톤 동호회원들, 산악자전거팀, 심지어 승마동호회원까지 찾아와 숲길은 하루 종일 이용자들로 바쁘다. 새 길이 열리니 그 길 위로 소박한 행복이 오고 간다.

■길을 만드는 사람
경기도 시흥시 학미·망재산의 매일 매일 자라는 등산로. “누가 만드는지 몰라요. 매일 오는 나도 보지를 못했으니까.” “근데 어느 누가 하는지는 모르겠어요.” 시흥시 관련 부서에는 길을 조성한 적은 없다고 한다. 다만 “어느 중년의 남자 분께서 길을 조성하고 청소를 하고 이런 식으로 활동한다”는 소문을 들었노라고 알려준다.

제작진이 온종일 미지의 인물을 기다렸지만 허사였다. 다음날, 스티커를 붙여둔 장소를 찾아보니 웅크리고 앉아 작업하는 한 남자를 발견한다. 손에 호미를 들고 계속 작업을 하고 있는 남자에게 방송국에서 일부러 찾아왔으니 인터뷰를 해달라고 하자 “찍지 말아주세요”라고 강하게 손사래를 친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 촬영을 거부한다.

그러다 제작진의 거듭되는 설득으로 겨우 인터뷰를 시작한다. “이 길을 선생님께서 만드신 건가요?” “예, 제가 다 만든 거죠.” “혼자 직접 손으로 다 만드신 건가요?” 10년 동안 매일 조금씩 10킬로미터의 등산로를 만들어온 이 분은 오십대 중반의 김운기 씨다. 과연 이 사람은 어떤 사연으로 오랜 시간 숲길을 만들어 왔을까?

길을 만드는 사람, 그의 사연은 이렇다. “일부러 숨기며 작업을 해온 것은 아닌데 그냥 기존 등산로가 아니라 둘레길 식으로 하다 보니 등산객들이 잘 몰랐던 모양입니다.” 호미, 손도끼, 낫, 괭이 그가 들고 다니는 연장과 도구는 너무 작고 초라해 등산배낭에 쏙 들어가니 주변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김운기 씨가 숲길을 만들어 오는 데 따로 공부를 한 적은 없다고 한다. 다만 소박하지만 특별한 사연이 있다. “이 산에 우연히 왔는데 산길에 어르신 한 분이 넘어져서 굉장히 다친 적이 있었거든요.” 가파른 등산로에 한 노인이 미끄러져 굴러 떨어진 것이다. 노인을 부축하고 병원을 다녀오며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다고 했다.

그날부터 가파르지 않고 위험하지 않으며 누구나 편히 다닐 수 있는 작은 샛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자신이 스스로 나서 새로운 숲길을 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크게 자랑할 것도 아닌데 어르신들이 다니시면서 정말 편하게 다닌다고 그렇게 말씀하실 때에는 부모님께 칭찬 듣는 것과 같이 기분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그의 아내 나진숙씨는 “여러 사람들이 아이 아빠가 만든 산을 다니면서 건강을 찾고 그러니까 저도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체념했어요. 지금은 신랑이 자랑스럽죠.” 등산객들은 그의 숨은 노고에 기꺼이 감사를 표시했다. “많은 분들이 이렇게 칭찬을 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부끄럽기도 하고 앞으로도 조금 더 산을 아끼고 열심히 보호하는데 앞장서겠습니다.” 그는 호미를 들고 다시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다.

■나눔의 희열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라는 영어단어는 남을 돕는 사람의 정신적 기쁨이 최고조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봉사자들의 행복감이나 나눔의 희열감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호미 하나로 새로운 숲길을 여는 김운기(helper) 씨처럼 누군가를 도와 보람이 느껴질 때 ‘기분이 굉장히 좋아지는(high)’ 것이 특징이다.

나눔의 희열감을 느끼면 신체는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되고 정서적인 행복감이 진전되며 이는 은은하게 오랫동안 지속되는 경향을 보인다.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 스스로가 소중한 존재로 인식되며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나눔 실천자의 건강도 개선된다는 연구가 있다.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의 수명이 실제 더 늘어난다? 나눔이 익숙한 사람은 두통이나 질병의 고통에 시달릴 확률이 낮아진다. 미국 버클리대학교의 공의과학센터(Greater Good Science Center) 크리스틴 카터(Christine Carter) 박사의 주장이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나눔을 꾸준히 실천하는 사람은 심장질환에 대해 아스피린의 약효보다 약 두 배의 억제능력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55세 또는 그 이상의 연령대에 있는 사람 중 두 개 이상의 자원봉사조직에 참여하는 경우, 사망가능성이 44%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는 자발적으로 일주일에 네 번 이상 운동을 하거나 종교 활동을 하는 사람, 담배를 끊는 사람보다 더 강력한 건강증진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남을 돕고 난 후 참가자들의 절반 이상이 스스로 더 강령해지고 에너지가 넘친다는 느낌이 든다고 답변했다. 이런 감정은 흥분상태와 구분되는데 침착성이 높아지고 스트레스 지수는 낮아졌다고 한다. 친절함은 그것을 베푸는 사람 스스로의 행복감을 높여 불안감과 우울함을 낮춰준다.

■아주 이상한 공무원
광주광역시 광산구청 정책개발팀에는 의욕적인 공무원들이 일하고 있다. 그 중 이병찬 주무관은 특이하다. 광산구의 행정현황을 진단하는 GIS(지리정보시스템) 연구용역은 이미 끝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이 주무관은 계속 행정자료를 발굴하여 5개월째 추가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행정업무를 추진하는 담당 공무원은 상부의 확실한 명령, 항상 해오던 연속업무, 업무성과가 명백한 경우, 행정규정에 분명히 명시된 업무가 아니면 보통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다. GIS 연구용역은 앞서 언급한 공무원들이 꺼리는 모든 요소를 가진 업무에 속했다.

최종보고가 끝나고 차량으로 이동하던 날, 이 주무관의 자동차는 경찰서에 잠깐 머물렀다. 아마 대여섯 번째 방문일 것이다. 광산구지역의 강력범죄 데이터를 지도 위에 올려 어느 곳의 치안이 심각하고 어떻게 범죄율을 낮출 것인가를 고민했다. 만약 경찰서로부터 범죄데이터를 협조 받을 수 있다면 훨씬 더 의미 있는 분석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 주무관은 정식절차를 밟아 협조공문을 보냈다. 경찰서도 업무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니 공문만 보낸다고 자동으로 데이터가 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야 하고 취지를 설명하고 또 기다려야 한다. 협조가 어려우면 다시 담당자에게 기분 나쁘지 않게 상황을 확인하고 안 되면 상부의 지원을 얻어야 한다. 경찰서 의사결정권자는 내부 범죄 데이터를 외부 구청에 보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결국 범죄데이터는 전임이 떠나고 신임서장이 현직 구청장의 적극적인 지원요청에 화답하면서 연구진의 수중에 전달되었다. 관내 범죄율을 현격하게 낮춰보자는 공동의 관심사가 공유되고 최고 의사결정권자들의 적극적인 관심으로 성사되었다.

■가까운 곳의 손길
당장의 효과도 알 수 없는 연구용 데이터 한 묶음을 얻기까지 이 주무관은 수없이 많은 전화걸기, 공문발송, 미팅추진, 설득과 호소, 지원요청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행정지도는 약 300장에 달한다. 약 100여 가지의 행정 데이터를 단 한 사람이 수집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실무가 뒷받침될 때에만 가능하다.
범죄가 빈번한 지역은 소득수준, 가정형태 등 인문사회적 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범죄 데이터에서 가장 가슴 아픈 자료는 변사체 데이터이다. 사망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죽음들이다. 대부분 자살이나 방치된 죽음인 경우가 허다하다. 한 날 한 시 한 집에서 어린 자녀 두 명과 젊은 엄마가 유서도 없이 주검으로 발견되곤 한다.

가난과 결손가정이 몰린 곳에서 자살과 범죄는 검버섯처럼 번창한다. 이론적으로 경험적으로 그것을 모르는 행정공무원이나 경찰간부는 없다. 그러나 정확히 어디에서 어떤 흐름으로 그런 현상이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다면 그곳에 가로등을 설치할 것인지 순찰차를 돌릴 것인지 공부방을 더 확대할 것인지, 작은 쌈지공원이나 상담센터를 개설할 것인지 구체적 처방을 검토할 수 있다.

곤경에 처한 절박한 시민의 입장에서 대통령이 거처하는 청와대는 천리 밖이다. 그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지금 당장 자신의 손을 잡아줄 구체적인 손길이다. 이때 국민들 입장에서는 삶의 현장에 눈길, 발길, 손길을 닿고 있는 첫 번째 공직자가 가족처럼 든든하고 친구처럼 미더울 것이다.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이 주무관은 일주일에 서너 번은 GIS 추가연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어떤 자료를 또 찾아서 보내주면 좋겠는지 물어왔다. 이 주무관의 손길을 거쳐 노인, 어린이,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 장거리 통근 학생들의 동선이 차례차례 드러났다. 데이터가 지도 위에 형태를 갖추니 해결책을 찾아내는 안내도가 되고 부서·조직간 소통을 이끌어 내는 공감지도가 되고 있다.

■ 장소의 정치학
대통령 예비후보들의 출마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학창시절 시국사건으로 감옥을 체험한 후보는 서대문구치소, 경상도 출신의 한 호부는 전라도 해남 땅끝마을, 정보통신부 장관을 역임한 후보는 국립과천과학관, ‘빚이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후보는 재래시장 한복판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저녁이 있는 삶’을 주창한 후보는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세대교체를 내세운 후보는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선포한 후보는 대형쇼핑몰 앞에서 출마의 뜻을 밝혔다.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보기 어려웠던 장소의 정치화다. 출마를 선언하는 첫 번째 장소의 선택에서부터 콘셉트와 상징성을 담아 후보자와 장소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대국민 메시지의 초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이 나라의 대통령은 세계지도와 남북지도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러나 그 지도만 들여다보라는 뜻은 아니다. 때론 새의 눈으로 거시적이고 광역적인 안목을 가져야 하지만 동시에 꿀벌이나 개미처럼 국민의 삶에 밀착한 관찰과 공감의 시각도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새 길을 여는 것은 발길만이 아니라 진심을 담은 손길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시흥시 김운기 씨는 몸소 보여준다. 이웃을 자신의 어버이처럼 여기는 진실한 마음이 맨손으로 십 년의 노고를 아끼지 않는 실천력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여준다.

‘내가 왜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를 역설하는 것만큼, 국민의 위치에서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후보들이 더 많아지길 기대하게 된다. 국민들은 자신의 손을 뻗어 닿을 수 있는 지근거리의 정치를 갈망한다는 것을 광주광역시 광산구청의 이병찬 주무관은 실행으로 보여준다.

두 분은 큰 부자나 고위직에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가장 사람들과 가까이에 있다. 진정한 장소의 정치를 보여주는 따뜻한 상징들이다.

정치가 뭐냐고 묻는다면 그분들이 서 있는 곳, 그분들이 움직이는 동선, 그분들이 만드는 장소를 함께 보자고 청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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