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S Map으로 본 서울의 17대 대선 투표율과 기권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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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규봉 객원논설위원·주식회사 GIS United 대표
  • 승인 2012.07.29 1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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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명의 안철수와 노무현, 김근태… 정치하라 떠미는 손들

쉰의 힐링캠프
안철수 교수가 출연한 예능프로그램의 시청률이 17,8%를 기록했다. 동시간대 최고이자 같은 프로그램 역대 최고 기록이라고 한다. 늦은 밤 11시부터 자정까지 시간대에서 나온 수치다. 7월 19일 서점에 선보인 <안철수의 생각>은 5일만에 10만부 이상 팔렸다. 근래에 보기 어려운 판매량이다. 7월 23일 기준 성·연령별 구매는 30대 남성(24%), 30대 여성(18.1%), 40대 남성(16.1%), 20대 남성(11.5%), 40대 여성(10.8%) 순이었다.

어느 온라인서점 도서팀장에 따르면 <안철수의 생각>은 일반도서보다 수도권과 오피스 밀집지역에서 구매현상이 좀 더 두드러진다고 한다. 지역별 구매자 분석을 보면 서울지역 구매율이 34.2%로 일반도서 평균 29.5%보다 상당히 높았고 특히 강남구, 서초구, 영등포, 마포구 순이라 한다. 그는 일반도서의 구매자가 강남, 서초, 송파에서 1, 2, 3위를 차지한 것과 달리 이번 책은 송파를 제치고 영등포구와 마포구가 올라와 직장인들의 구매가 강세를 보인 것으로 분석했다.

지방 광역시에 직장생활을 하는 30대 후배가 24일 퇴근 후 문자를 보내왔다. ‘힐링캠프 본방사수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네요.’ 승진낙방에 쓰린 속을 달래려 친구들과 소주라도 한잔 하고 싶었으나 캔맥주 사 들고 아내와 TV 앞에 앉아서 힐링캠프를 보겠다고 했다. 다음날 오전, ‘과연 그 모습이 전국을 휘어잡을 바람으로 작용할지요? 하여튼 어제 저희 도시에서 지지모임 출범식이 있었답니다. 암튼 전 투표를 할 생각입니다.’

안철수 교수는 올해 쉰이다. 문자를 보낸 후배는 지방대 출신으로 서울에서 학원 다니며 높은 경쟁률을 뚫고 공공기관에 입사했다. 두 어린 아이들의 아빠이자 지방 대도시에 사는 30대 직장인이다. 무엇이 후배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일까? 서울에 소재한 어느 대학교 경영학 교수로 일하고 있는 절친한 친구는 스스로를 서슴없이 ‘안빠’라고 소개했다.

쉰의 출사표
안철수 교수가 유일하게 존경심을 표현한 정치인은 고 김근태 한반도재단 이사장이 유일하다. 작년 서울시장 선거가 끝나고 10월께 김근태 이사장을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요청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근태 이사장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어 만남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지난 해 12월 김 이사장의 장례식에 안철수 교수가 직접 조문하고, 부인 인재근 여사의 총선출마에 공개적으로 지지선언도 했다. 나아가 김근태 이사장 보좌진 출신을 대변인으로 임명한 것도 모두 관련이 있어 보인다

사람마다 쉰이라는 나이는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을 거다. 김근태 이사장이 30년 재야민주화 운동을 정리하고 15대 총선에 출마한 나이가 쉰이었다. 그해 현실정치에 나서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희망의 근거>라는 사회비평집을 출간했다. 김 이사장은 ‘희망’으로 제목을 삼은 저서 서문 첫줄에 ‘눈물’에 대해 썼다. ‘눈물이 자꾸 흘러내린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선 특히 그렇다. 역사에서 한 발자국을 확실히 내딛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당시 정치기자들이 뽑은 가장 신뢰받는 정치인 1순위에 김 이사장은 빠지지 않고 거론되었다. 동시에 너무 진지하다는 평에 따라 ‘김진지’나 늘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고 ‘고뇌하는 햄릿’이라는 두 개의 별명을 애칭처럼 얻었다. 김 이사장은 일상생활 속에 늘 조용하고 남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경청형의 리더였다. 그러나 동시에 장비 같은 참모들에게는 종종 ‘유비’처럼 답답한 리더로 평가 받기도 했다. 이런 몇 가지 대목에서 안철수 교수와 김근태 이사장의 성품은 제법 겹치는 면이 있다.

지천명의 정치
나이 쉰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보좌진의 반대를 물리치고 부산시장에 출마해 낙선했다. 이듬해 노 전 대통령은 종로구, 김 이사장은 도봉구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당시 김 이사장은 당선했고, 노 전 대통령은 낙선했다. 노무현 캠프의 보좌진이 종로에 술집을 열었다. 우연히 그 집에서 후배와 소주잔을 나누고 있었다. 불쑥 의자를 하나 끌고 와서 ‘쫌, 앉아도 되겠습니까? 저는 노무현이라고 합니다.” 쉰을 막 넘은 유명 정치인이 이십대 말의 직장인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자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격식을 따지지 않는 스타일이었다면 김근태 이사장은 혼자 조용히 자신만의 사색하기를 선호했다. 김 이사장은 종종 신문 하나 들고 국회 구내식당으로 혼자 밥을 먹으러 가곤 했다. 여느 정치인들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면모였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누구랑 얼마나 자주 어디서 밥을 먹는지에 따라 정치인의 행보가 드러나는 법이다. MBTI 분류법을 따르자면 김 이사장은 전형적인 내향형이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외향형이다.

건강하게 장수하지 못하고 노 전 대통령은 자살로, 김 이사장은 병마로 예순 초반에  삶을 마감했다. 대통령 후보 경선과정에서 잠깐 경쟁했지만 국정을 함께 책임지는 대통령과 장관으로 협력했고 서로 존중했다. 공통점을 찾아본다면 사사로움이 없었던 점, 남북통일과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헌신했던 점, 오래 함께 한 주변 사람들로부터 지속적인 존경과 신뢰를 받았던 점 등을 들 수 있겠다. 각자 지천명 나이에 운명처럼 정치권에 획을 긋는 결단을 보여줬다.

정치, 하지마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글 중 ‘유서’를 제외하고 가장 가슴 아픈 글이 있다. ‘정치하지 마라’는 제목의 글이다. 퇴임 후 검찰조사가 시작되고 서거 두 달 전에 직접 작성한 글이다. ‘이웃과 공동체 그리고 역사를 위하여 가치 있는 뭔가를 이루고자 정치에 뛰어든 사람이라면, 한참을 지나고 나서 그가 이룬 결과가 생각보다 보잘것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열심히 싸우고, 허물고, 쌓아 올리면서 긴 세월을 달려왔지만 그 흔적은 희미하고 또렷하게 남아 있는 것은 실패의 기록뿐, 추구하던 목표는 그냥 저 멀리 있을 뿐’이라고 탄식했다.

‘정치를 하게 되면 정치에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고 했다. ‘정치를 위하여 무엇을 바쳐야 하는지를 헤아리는 것보다 가진 것 중에서 정치에 바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를 헤아려 보면,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 중에서도 사생활, 특히 가족들의 사생활을 보호할 수 없는 것은 참으로 치명적인 고통이라 했다.

더 큰 난관은 ‘거짓말의 수렁, 정치자금의 수렁, 사생활 검증의 수렁, 이전투구의 수렁 이런 수렁들을 지나가야 한다’고 했다. ‘특별히 좋은 조건을 가진 정치인이 아니고는 이 길을 회피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수렁에 빠져서 정치생명을 마감한다고 회고했다. ‘살아남아도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이 많다’며 ‘사람들의 비난, 법적인 위험, 양심의 부담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는 싸우기 마련이고 정쟁에 휘말리면 자연 싸움이 거칠어지고 상대방에 대한 공격도 가혹해 지기 마련’이라 했다. 정치를 하는 동안, 옛날 친구들과는 점점 멀어지고 시간도 없고 생각과 정서도 달라져 점점 마음을 나누기가 어려웠노라 적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는 특별히 좋은 조건에 있지 않은 보통의 정치인들은 거의 이런 고민을 할 것이라고 했다. 만약 안철수 교수가 정치에 나선다면 ‘특별히 좋은 조건’이라서 ‘보통의 정치인’이 겪어야 할 고충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

정치를 하라고 떠미는 손들
김근태 이사장은 정치를 시작하고도 진심으로 고민을 계속했다. 여성단체에 활동하는 어느 여의사가 건넨 이야기를 <희망의 근거> 말미에 적고 있다. “솔직히 실망했습니다. 그냥 재야에 남아서 사회의 등불이 되어주셨으면 했는데요.” 그런 말을 한두 번 들은 것이 아니지만 매번 그런 질문이나 언급을 당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철렁한다고 했다. ‘까마귀 가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는 애틋함이 실려 있어 고맙기도 하지만 ‘

신도 권력의지 때문에 정치하냐’는 비아냥으로 들리기도 했노라 심경을 털어놓고 있다.
안철수 교수더러 정치 꼭 해야 한다고 등을 떠밀기 어려운 이유다. 쉰 살에 정치적 결단을 내린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근태 이사장의 행로에서 반추해보면 더욱 그렇다. 그저 그의 선택에 맡길 뿐이다. 안철수 교수가 의학박사와 의대 교수직을 버리고 성공이 전혀 보장되지 않은 컴퓨터 백신 벤처회사를 창업한 이유를 밝힌 적이 있다. 14년 동안 쌓아온 길을 버릴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좋아하고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살아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가 정치를 좋아하고 잘 할 수 있을 것인가? 아직 그 스스로도 지켜보는 사람들도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멘토의 시대>에서 안교수를 긍정했던 강준만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안철수의 힘>이라는 책을 출간하여 공개적으로 지지를 선언했다.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이념과 진영 논리에서 자유로운 안교수가 '증오의 시대'를 끝낼 적임자”이고 둘째, “시장주의자이면서도 정의·공정·공생을 강조해온 그가 공정국가를 실현할 적임자”이며 셋째, 디지털 선구자인 안교수가 “SNS 소통 혁명시대에서 패러다임 전환을 추진할 적임자”라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철수의 영어 첫 글자를 딴 것으로 보이는 ‘CS코리아 재단’은 전국 8개 지역본부의 발족식을 시작했다. 2011년 9월에 출발한 안철수를 지지하는 모임의 출범 배경과 이유를 보면 오랜 기득권과 철밥통이 난무하는 한국의 정치를 보면서 희망대신 절망을 품은 사람들이 안교수의 사심 없는 행보와 실천 그리고 나라를 위한 결심과 결단들을 지켜보고 이 시대의 진정한 지도자로 그를 지지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정치인과 유권자의 수준
1941년생인 이명박 대통령이 쉰 나이던 1991년 국회의원 선거준비에 나섰다. 쉰이 되기 전 그는 이미 10개나 되는 대기업의 사장과 회장직을 두루 역임하며 그 분야에서는 더 이상 오를 데가 없는 ‘경력의 고원지대’에 도달했다. 그리고 이듬해 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까지 거침없는 승승장구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임기 말로 가면서 친형과 측근들의 부정부패로 급기야 사과문을 발표했다. 임기 중 여섯 번째 사과발표다. 안철수 교수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23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는 이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18%로 임기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밝히고 있다.

똑같은 사람도 가까운 선배일 때와 정치인일 때 완연히 다르다. 절친한 선후배라면 같이 포장마차에서 나와 함께 고성방가라도 할 수 있지만, 국민세금으로 일을 하게 되면 바로 신문에 나고 인터넷에 동영상이 돌게 된다. 정치인이 되어 어느 진영에 속하는 순간 타진영의 적이 된다. 진영싸움에 참담해지고 한 사람의 인격은 종종 땅바닥 위에 끌려 다니기 쉽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하지 마라’의 충고와 동어반복이 된다.

우리사회의 정치 아닌 분야의 50대에게도 더 많은 관심과 기대를 가졌으면 한다. 안철수 현상의 이면에는 힘든 세상을 확! 한 번에 바꿔주고 답답한 가슴을 속 시원하게 만들어줄 해결사의 등장을 바라는 갈망이 담겨있다. 자칫 새로운 정치리더에게 메시아적 속성, 만능 해결사적 속성, 도덕적으로는 성직자적 속성을 부분부문 담아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 ‘이상적인 가상의 지도자’를 만들어 열렬히 지지하다가 기대와 다를 때 원망하고 좌절하는 악순환을 걱정하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꼈던 주변참모에게 절절히 ‘정치하지 마라’고 호소한 이면에는 그런 정치가 유지되는 정치문화, 더 나아가 그런 정치에 길들여지고 익숙한 ‘유권자’와 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개탄을 담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민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잘못 판단하기도 하고 흑색선전에 현혹되기도 하고 집단 심리에 이끌려 이성적이지 않은 행동도 한다’고 진단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은 국민 이외에 믿을 대상이 없다’고 했다.

당시 아시아태평양재단 이사장을 맡아 정계복귀를 타진하며 출간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에는 “국민이 언제나 현명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민심은 마지막에는 가장 현명합니다. 국민은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마지막 승리자는 국민입니다.” 그렇기에 유일하게 승리할 수 있는 비결로 국민에게서 배우고 국민과 같이 가야 한다고 적고 있다.

유권자의 버전으로 패러디를 해보려 한다. 정치인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고 잘못 판단하기도 하고, 흑색선전을 주도하기도 하고, 정치인은 집단 심리를 악용하기도 한다. 정치인이 항상 현명한 것도 아니니 주인인 유권자들이 국민의 머슴들인 정치인을 잘 기르고 가르치고 꾸짖기도 하고 바꾸기도 해야 한다는 뜻으로 번역할 수 있다.

진퇴에 관한 아주 오래된 논쟁
노나라 군주가 공자와 노자의 만남을 주선했다. 노자가 공자를 배웅하면서 남긴 말은 의미심장하다. “총명하고 깊이 관찰하는 사람은 죽음에 다가서는데 이는 남을 잘 비판하기 때문이요, 많은 지식을 지니고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그 몸이 위태로운데 이는 남의 잘못을 잘 끄집어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자녀 된 자는 자기를 내세우지 말며, 사람의 신하가 된 자 역시 자기를 내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사마천의 <사기> ‘공자세가(孔子世家)’ 편에 실린 이야기다. 이것이 실화이건 아니건 노년의 노자가 젊은 공자에게 타이른 대화로 유명하다. 실제 공자는 훗날 오십 대에 접어들어 관직을 버리고 14년 동안 이 나라 저 나라를 다니며 ‘이상정치’를 꿈꾸는 가운데 죽음의 고비를 맞기도 했다. 세상을 등진 은자(隱者)의 눈에 공자는 ‘이루지도 못할 것을 이루어보려고 열심히 애쓰는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공자는 은자들의 비웃음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공자는 제자로부터 사람들의 조롱을 전해 듣고는 크게 낙담하면서도, “새, 짐승과 무리지어 살 수 없으니 내가 이 사람들과 더불어 살지 않으면 누구와 더불어 살겠는가?”라고 반박했다. 참혹한 현실과 고통 받는 사람들에서 마음을 떼지 못하는 심경과 탄식이었다.

노자 현명한지 공자가 옳은지는 여전히 알 기 어렵다. 다만 수 천 년을 거슬러 올라 세상이 어지럽고 나라가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지고 전쟁으로 날이 새고 전쟁으로 해가 저물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낯설지만은 않은 이유는 이 시대를 바라보는 우리의 심경이 유사하며, 이 상황을 바라보는 고민의 축도 비슷한 까닭이다. 그대가 나서서 정치하라고 차마 등 떠밀지 못하는 마음은 오늘에도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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