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부 김씨(金氏)- 이승철
청소부 김씨(金氏)- 이승철
  • 박성우 (시인·우석대교수)
  • 승인 2012.07.28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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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더미 내려와 충정로 아스팔트를 적시는 새벽녘
청소부 김씨를 만났다.
황색 조끼에 허름한 바지, 그가 살아온 생애를 말해주는
검은 손 좁은 이마에 수줄기 잔주름
자꾸자꾸 포도 위 휴지조각을 쓸어담는
익숙한 몸놀림 속엔
싸리비 하나에 맡긴 그대 한평생 삶이 보이고

청소부 10여 년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
내 인생 후반기를 잔뼈 굵은 쓰레기더미와 맞붙기 위하여
언덕배기 집을 나설 때
아내는 차조심 차조심하라고 인사를 하고
그 누구도 밟지 않은 새벽길 밟으면 힘이 솟구친다
쓸어도 쓸어도 다시 쌓이는
가래와 머지와 재채기 속에 내 하루는 시작되고
내가 차지하는 종근당빌딩 일대의
오만가지 잡동사니 중에는
그 언제던가 광화문·종로통을 돌다 쓰러진
그대 친구들 못다한 함성
세상살이에 지친 발자욱들이 남기고 간 비명소리마저
살아서 꿈틀거린다

내가 쓸어붙여 말끔히 마련한 새벽길 모퉁이
밤이면 구토와 욕지거리와 피울음이 섞여
내가 차지할 거리마다 가득 쌓여도
아무도 잠 깨지 않은 새벽에 홀로 일어나
황색 조끼 입으면 왜 그런지 힘이 솟는다, 솟아
내가 다지는 아스팔트에 그 동안 겪어온
고통이라든가 슬픔 따위를 쳐바른다

새벽마다 시작된 내 끝없는 노동으로
깨끗한 아스팔트 길이 다시 열리고
당신들 짝지어 더럽힐지라도
나는 또 다시 쓸어담는다, 아스팔트 밑 흙더미
그 싱싱한 맨살이 보일 때까지.

작품출처 : 이승철(1958~  ),  『세월아, 삶아』

■ 너무 더워서 잠까지 설치기 일쑤인 여름입니다. 정말 더워도 너무 덥습니다. 이글거리는 아스팔트는 녹아내릴 것만 같고 에어컨을 튼 버스 안도 여전히 후덥지근합니다. 음료수나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으러 슈퍼만 다녀와도 땀방울이 맺힙니다.

거리엔 이 찜통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며 위태롭게 일하는 손길이 있습니다. 제발 생각 없이 휴지 좀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거리를 더럽히는 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더럽히는 일이라는 것을 명심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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