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찬의 '시시비비'
안병찬의 '시시비비'
  • 안병찬 언론인권센터 명예이사장
  • 승인 2012.08.10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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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새와 온갖 잡새가 날아든 런던올림픽 개막식
▲안병찬 언론인권센터 명예이사장

영국 영화감독 대니 보일이 연출한 런던올림픽 개막식은 영국 왕실공군이 제2차 세계대전 때 사용한 4.5톤짜리 초대형 폭탄 ‘블록버스터’를 터뜨린 것 같이 소리가 요란스러웠다.

한국 MBC의 올림픽 중계반 사회자 배수정이 그 블록버스터 행사를 보면서 “영국인으로서 자랑스럽다”고 두 번이나 언급했으니 본토 출생 영국인들이야 자국의 자존심을 내세웠다고 말하는 개막식공연이 오죽 대견했겠는가.

나는 28일 아침에 일어나서 새벽에 런던 래밸리 올림픽스타디움에서 벌어진 개막식 녹화방송을 보면서, 이 영국 블록버스터는 ‘봉황새는 물론이요 온갖 잡새와 바퀴벌레가 출연한 난장판’으로 표현할 만하다고 느꼈다.

셰익스피어와 해리포터가 출연하고, 비틀즈와 폴 매카트니가 등장하고, 런던심포니에 미스터 빈이 끼어들어 희극을 연기한다. 여러 명의 평민귀족(작위 수령자)과 산업혁명의 군중이 뒤범벅된다. 거대한 구조물과 올림픽 성화대와 불덩어리 오륜이 하늘을 찌른다.

축구스타 베컴은 쾌속정으로 나타나고, 마침내 봉황새인 여왕폐하가 007 제임스 본드를 대동하고 올림픽 주경기장 상공에 진입하더니 기상천외의 고공 낙하를 감행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깜짝쇼로 반전하려고 안간힘을 쓴 물량주의 무대였다.

그러는 가운데 등장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전혀 격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가 올림픽기 운반자의 하나로 행진하는 장면은 내 눈에 매우 초라하게 보였다. 주책이 없다고 생각했다.

영국인은 본래 절제력이 강하다더니, 지금은 스포츠의 ‘징고이즘’에 빠져 눈이 어두워진 모양인가. 징고이즘은 편협한 애국주의나 자기중심적 심리상태를 가리키는 영국 말인데, 19세기 디즈레일리 수상 시절에 등장했다.

그 기질이 되살아나 자랑하고 싶고 내세우고 싶어 안달이 나서 영국화폐 2700만 파운드(488억원)를 쏟아 부어 이 소란스럽기 짝이 없는 물량주의 올림픽 개막식 공연을 연출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자는 말하기를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정도가 지나치면 안 하니만 같지 않다는 말이다. 물량에 치우쳐 요란하게 떨친 런던 개막식에 나는 과유불급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4년 전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이 연출한 베이징올림픽 개막 무대는 어땠는가. 그 무대는 붉은색과 황금색 투성이로 거창한 규모를 자랑하여 장이머우의 영화 황후화(皇后花)를 연상하게 만들었다. 결국 그 무대는 중국이 평화적으로 몸을 일으킨다는 이른바 화평굴기(和平?起)의 부활을 천하에 과시하고 싶은 나머지 기를 써서 웅장하게 연출했으므로 거국주의(巨國主義)의 발로라고 치부할 수밖에 없었다.

24년 전에 열린 88년 서울올림픽의 개막 무대는 이어령 교수가 기획했다. 태권도의 동태적인 군무(群舞)가 끝났을 때다. 일순 정적이 감돌더니 소년 하나가 나타나 굴렁쇠를 굴려 공간에 동그라미를 그려나간다.

이윽고 대형 전광판이 한국 어머니의 실루엣을 비추면서 율동 있는 다듬이 방망이 소리가 사방에 낭랑하게 울려 퍼진다. 여백의 미를 보여주는 격조 있는 연출이었다는 생각이다.

이런 88올림픽 무대를 프랑스 평론가 기 소르망은 초등학생의 학예회라고 깎아내렸다고 한다. 기 소르망이 혹시 쇼비니즘의 신봉자가 아닌지 의심한다. 프랑스어의 쇼비니즘은 영어의 징고이즘과 동의어이다. 나폴레옹에게 죽도록 열광한 병사 쇼뱅의 이름에서 유래한 말이다.

런던올림픽에 즈음하여 미국의 시사 잡지 타임이 서울올림픽 개막식은 성화를 점화하면서 비둘기가 타죽어 최악의 개막식이라고 지명했다. 비둘기가 희생된 것이 사실이라면 유감스럽지만 앵글로아메리카의 냄새가 나는 보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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