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 영속성 남긴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
현대미술의 영속성 남긴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
  • 정민희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12.08.18 00: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반짝이는 은박지로 낱개 포장된 500㎏의 사탕이 카펫처럼 미술관 바닥에 펼쳐져 있다. 관람객은 손에 잡히는 대로 사탕을 까서 단맛을 맛보게 된다.

가볍고도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이루어낸 일시적인 기념비적 작품, 곧 현대미술의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쿠바 출신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1957~1996)다.

▲ 무제(완벽한 연인들) 플라토.

38세 짧은 인생의 여정에서 1980~90년대 뉴욕으로 이주하여 제3세계 이민자이자 성적 소수자였지만 자신만의 예술적 정체성을 확보했다. 고정관념을 벗어나 현대미술의 의미와 자기성찰의 측면을 제시했다. 사후 16년이 지났음에도 수많은 전시가 현재진행형의 의미로 공유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미니멀리즘 형식을 유지하되 관람객의 참여에 의해 소멸, 변형, 파괴된다. 그 과정에 사탕은 전시기획자에 의해 끝없이 채워진다.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누구도 그 작품을 완전히 소유할 수 없는 이유이다.

소멸과 재생을 반복하는 그의 작품은 물질만능주의 세태, 채워지지 않는 소유에의 욕망, 끝없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순환을 암시한다. 연인의 죽음이 가져온 상실의 공포와 불안에서 다시 채워지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작품을 통해 소생을 희망했던 것이다.

옥외광고 빌보드, 전구, 종이, 사탕, 시계 등을 상징적으로 활용하여 소유가 아닌 상호관계로 연결된 대중과의 호흡을 요구했다.
▲ 리움미술관에 설치된 ‘스톡홀름을 위하여’

또한 작품의 끊임없는 재해석과 의미 확장을 추구하는 방법으로 동시다발적인 전시를 시도함으로써 의미와 형태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도심 빌보드에 설치된 두 사람이 함께 누워있던 흔적만이 남은 침대의 모습은 24의 약수로 곳곳에 설치된다. 이는 동성 연인 로스가 사망한 1991년에 인물의 부재와 텅 빈 여백을 통한 연인을 잃은 공허한 상실감의 표현이다. 이 뿐만 아니라 단순한 이미지는 보는 이에게 의미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한 쌍의 벽시계 작품 ‘무제(완벽한 연인들)’는 동성의 사랑을 상징하며 동시에 건전지를 넣어도 약간의 오차로 한쪽 시계가 먼저 멈추는, 영원할 듯 한 이 시계들도 결국 자연스럽게 멈추도록 했다.
 
8년간 함께 한 연인과의 1분 1초가 갖는 애잔함을 엿볼 수 있으며 삶, 사랑, 죽음을 은유적으로 나타내는 대표작이다.

짧았던 여생이었지만 사회적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사고의 유연성은 미술관을 벗어난 공공장소 어디에서나 대중과 한 시대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던져준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Double>展. ~9월 28일까지. 플라토. 1577-7595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