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로 본 이중적 환영, 노세환
렌즈로 본 이중적 환영, 노세환
  • 정민희
  • 승인 2012.08.24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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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희의 마음으로 미술읽기-45
▲Meltdown APPLE Pigment Archival 2012

사진가 노세환의 첫 개인전을 본 것은 2006년 봄이다. 찾아가야 미술작품을 볼 수 있는 갤러리 전시기획에 흥미가 없었던 필자는 장소적 특성에 맞춰 고객에 따라 미술작품을 맞춤 설치하는 기획에 보람을 느껴왔다.

대중의 예술적 수준향상이 곧 문화적 선진국이라는 확고한 신념으로 발품을 팔아 협업할 기업을 찾았고, 고객의 니즈(needs)에 맞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작가발굴은 생명수와도 같았다.

언제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도 보는 눈은 제각각이다. 노세환은 대학졸업 직후 헤이리 예술인마을의 ‘소나무 작가’ 배병우 작가로부터 사진을 접했다. 그가 스튜디오로 향하는 자유로를 달리며 흔들리는 차안에서 찍은 첫 시리즈가 <달리는 카메라>였다.

평범한 풍경을 대상으로 풀어내는 젊은 작가의 테크닉은 바로 ‘센스’와 ‘도시스타일’일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후 도로 위를 스쳐지나간 차의 흔적, 해외 대도시 지하철, 신호등에 서있는 사람들의 1초를 담은 <조금 긴 찰나>연작을 통해 도시의 생명력을 렌즈라는 눈을 통해 감각적으로 읽었다.

작가 자신의 분위기와도 흡사한 대도시인의 삶에 밀착한 그의 작품 주제는 런던 스레이드 미술대학원을 진학하면서 일상에서 겪은 에피소드로 전환된다. 다른 문화권의 시각으로 삶에 가치를 부여하면서 관람자들이 접해온 일상 주변의 소품을 작가가 조작해 사진으로 기록하게 된다.

멜트다운(Melt down)이라는 주제는 사과, 바나나, 의자, 병, 피망, 장난감 집 등의 소품을 페인트에 담갔다 건져 올리면 부드러운 시럽처럼 흘러내린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운동화 MELTDOWN Archival pigment print, 2012
이들 사물의 뒤쪽에 나무막대가 꿰어져 있지만 정면에서 보면 허공에 뜬 느낌이다. ‘녹는(melting)’ 것이 아니라 흘러내리면서 ‘굳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다만 관람객은 녹아내리는 것처럼 느낄 따름이다.

정확한 전달이 생명이어야 할 대중매체가 권력에 의해 잘못 전달되는 현상이 ‘녹는 것’이라면 진실의 입장에서 보면 ‘굳는 것’인 것이다. 감상자는 그것이 페인트인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사물이 녹아서 흘러내린다고 믿는 것처럼.

깔끔하고 모던한 이미지는 신선한 조작 과정을 통해 ‘실험하는 작가’가 또 다른 사회현상에 던져주는 메시지를 함께 사유하게 된다. 더 나아가 급변해 나가는 작가의 다음 시리즈는 무엇일까 벌써 기대된다.

<Melt down>展. ~9월 8일. 표갤러리 강남. 02)511-5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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