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S Map으로 그려온 서울, 2011년~2012년
GIS Map으로 그려온 서울, 2011년~2012년
  • 송규봉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12.09.14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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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퉁불퉁 다채로운 ‘스크램블 에그’ 모양 서울의 완성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이 도시로 모여든다. 하지만 내게는 도리어 죽기 위해 모인다는 생각이 든다.’

릴케의 탄식입니다. 20세기 초 거대도시 파리로 이주해온 그의 눈에 비추인 도시입니다. ‘해가 졌는데도 어두워지지 않는다. 겨울 저물녘 광화문 맨몸으로 가로수들이 일제히 불을 켠다. 수 만개 꼬마전구들이 들러붙어 있다.’ 21세기 거대도시 서울을 걸어가는 시인 이문재의 읊조림입니다.

▲ 광화문 이순신장군상
도시는 기억이다
도시는 사람의 기억 때문에 특별해집니다. 그 기억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습니다. 백지를 꺼내 들고 찬찬히 지도를 그려보세요. 살아오면서 특별한 추억이나 기억이 담긴 곳을 표시해보는 겁니다. 지도 위에 점을 찍고 기억의 장소마다 사람, 사건, 시간을 표시해 보세요. 그렇게 당신만의 지도이력서가 그려질 것입니다.

남도 바닷가에서 자란 저에게 서울의 첫인상은 사지 떨리는 추위였습니다. 처음 서울 친척집 방문은 겨울방학이었습니다. 을지로와 명동 빌딩 사이로 부는 겨울바람은 일 년에 한번 눈 구경을 할까 말까했던 남도의 소년에겐 꽤 충격이었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간직한 첫 기억입니다.

대학 입학 후 가장 먼저 가보고 싶었던 곳은 커다란 서점이었습니다.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광화문에 도착했습니다. 유명서점 주변은 두꺼운 방한복에 검은 투구를 머리에 쓴 일군의 전투경찰들로 가득했습니다. 저도 불심검문을 받았습니다. 제가 광화문에 대해 간직한 첫 기억입니다.

그해 초여름 광화문은 한 대학생의 운구를 따르던 백만의 함성이 역사를 바꾸는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국민이 직접 투표로 대통령을 선출하게 되었습니다. 때로 광화문은 붉은 티셔츠나 촛불의 물결로 출렁거렸습니다. 서울에 담긴 제 시간들에서 광화문에 관한 몇 장의 기억을 추려봅니다. 서울은 이렇듯 서울에 얹어놓은 사람들의 시간으로 재건축될 것입니다.

신문사 뜨락의 자작나무

▲ 자작나무숲(사진 왼쪽)뉴욕타임스 본사 1층 로비 자작나무 정원.
뉴욕타임스의 새로운 빌딩을 디자인한 이탈리아 건축가 렌조 피아노는 건물의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허물고 싶다 했습니다. 뉴스의 삶과 실제 거리의 삶의 경계를 사라지게 하려는 의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층 전체를 한 곳의 막힘없이 모두 유리로 투명하게 들여다  보이게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신은 뉴욕타임스 빌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1층 로비에 있는 작은 정원 속의 자작나무라 했습니다. 자작나무는 추운 지방에 주로 자라며 햇볕을 무척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종이가 없던 시절에 자작나무 껍질은 기록보관용으로 쓰였으며 팔만대장경도 산벚나무와 자작나무에 새겼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자작나무, 종이, 햇볕, 신문, 투명유리가 당신의 해석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뉴욕타임스에서 부러운 것은 그들의 오랜 역사도 자작나무가 서있는 신문사 건물도 아닙니다. 부러운 건 이 신문에 대한 뉴욕시민들의 사랑과 자부심입니다. 1917년부터 시작한 퓰리처상은 약 20개 부문에서 수상자를 내고 있는데 최근까지 뉴욕타임스는 퓰리처상을 108번이나 수상해왔습니다.

뉴욕타임스 창간호 4면
뉴욕타임스의 창간호를 들여다보았습니다. 1851년 9월 18일자 2면에는 스스로의 사명에 대해 적어 놓은 글(A Word about Ourselves)이 있습니다. “뉴욕에 있는 다른 신문사보다 더 뛰어난 내용을 보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시민의 안내자(public instructor)로서 우리는 그 어떤 언론사보다 실천과 사고에서 탁월함을 추구할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창간호는 모두 4면이었습니다.

눈길이 머문 문장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보수적이 될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공공선(public good)에 중요하다면. 우리는 급진적이 될 것이다. 우리 시대에 좀 더 급진적인 처방과 개혁이 필요할 때는. 우리는 사회에 완벽히 옳고 완벽히 틀린 것이 있을 수 있는지 의심하려 한다. 우리가 보호하고 증대해야 할 선한 가치와 우리가 끝내고 개혁해야 할 악한 가치에 대해 늘 의심하려 한다.”

창간호에서 그들은 160년 동안이나 신문을 발행하게 될지 스스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창간호는 지금의 눈으로는 비뚤비뚤 옹색한 인쇄기술로 탄생했지만 세월은 그들을 빛나게 해주었습니다. “신문이 스스로 말하도록 하리라”는 신념대로 “신문을 읽는 독자들이 판단하도록 하리라”는 나침반을 따라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미약한 시작이었지만 창대한 발전에 이른 역사가 되었습니다.

지도 그리고 신문

▲ 대기업에 대한 시민들의 시선이 변하고 있다. 시민과 함께 하지 않는 어떤 세력도 역사 속에서 끝내 살아남지 못했다. 더 사랑받는기업으로 전진하길.
고산자(古山子) 김정호는 목판에 지도를 새겨 대량 인쇄로 지도 대중화의 전환기를 열었습니다. 오래 전 지도는 왕이나 고위 통치자들만 만질 수 있는 고급정보였습니다. 어떤 시대에는 사전 허가 없이 지도를 제작하거나 지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하던 때도 있었으니까요.

문자와 책이 대중화되듯 지도 또한 누구나 만들고 소유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 지도는 궁중 기밀창고에서 왕과 선별된 신하들만이 참고하는 특수정보가 아니라 운전할 때 식당을 찾을 때 스마트폰에서 자동차에서 관광안내소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생활의 안내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지도로 먹고 사는 지도공(地圖工)에게 ‘서울타임스’ 기고는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지금껏 어떤 신문도 이만한 분량과 비중으로 지도(GIS)를 소통과 공유의 수단으로 활용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GIS(지리정보시스템) 분석의 거장 데이나 탐린(Dana Tomlin)은 ‘기술이 아닌 사람에서 출발하라’는 화두를 던졌습니다. 사람을 돕는 지도를 그리라는 뜻으로 마음에 새겨왔습니다.

지도는 사실의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신문과 같은 종족입니다. 지도는 보이지 않는 사회의 이면을 탐색하려는 본능에서 신문과 동일한 DNA를 가졌습니다. 지도는 독자에게 가고자 하는 길을 비추는 안내자로서 신문과 같은 운명입니다. 이런 동질감을 믿고 지난 1년 동안 ‘서울타임스’의 GIS 기고문을 쓰는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발품의 노작을 원한다
“과연 르포는 축구, 소설은 럭비라는 비유는 적절하다. 축구는 인간이 가장 잘 쓰는 손의 사용을 금지한다. 럭비는 인간이 가장 잘 쓰는 손의 사용을 허락한다. 비단 르포만은 아니다. 무릇 기사는 손의 상상력을 거부한다. 다리의 노작을 요구한다. 그 축적 위에서 비로소 ‘다리의 상상력’을 허락한다. 내막물 발굴의 명수였던 존 간서(John Gunther)가 ‘나는 다리로 생각한다’고 자처했던 이유를 알만 하다.”

언론인 김중배 선생의 조언은 여전히 쟁쟁합니다. 이제 ‘다리의 노작’은 빅 데이터(Big Data)시대에 더욱 각별한 충고가 되고 있습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독자들이 만나는 정보는 어마어마한 양으로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컴퓨터가 점화한 정보혁명은 인터넷을 거쳐 가정, 일터, 학교를 연결하더니 모바일 시대로 진입하며 공간제약은 사실상 없어졌습니다. 여기에 소셜 네트워크가 얹어져 빅뱅(Big Bang)으로 폭발하듯 정보량이 늘고 있습니다.

이제 정보는 수렵채집의 대상이 아니라 시스템적인 활용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이제 대량의 정보를 누가 소유하느냐 보다는 데이터에서 정보, 정보에서 지식, 지식에서 지혜와 통찰을 누가 건져 올릴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소유냐 통찰이냐 묻고 있습니다. 정보에서 비본질적인 것들을 걸러내고 숨어 빛나는 통찰을 발굴하는 ‘관찰의 노작’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의 조류에 GIS 지도가 작은 역할을 해나가리라 소망하게 됩니다.

도시의 시대, 서울타임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1392년 7월 17일 왕위에 올랐습니다. 국호(國號)을 새로 짓기도 전, 왕위에 오른 지 한 달도 안 된 8월 13일 조선의 첫 번째 왕은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에 수도 이전을 명령했습니다. 새로운 왕조는 새로운 수도에서 시작하려는 정치적 결단이었습니다.

▲ 서울의 대기업 위치와 400만 일자리 지도를 번갈아 보자. 대기업이 이끌고 있는가? 400만 일자리 위에 있는가? 시민들의 품 안에있는가?
풍수지리에 관한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정도전은 “정치가 잘되고 못 되는 것은 사람에 있는 것이지 성쇠가 땅에 있는 것이 아니다”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최적의 수도입지를 결정하기 위한 2년의 논쟁과 토론을 거쳐 태조 직위 3년(1394년) 8월 24일 서울은 새로운 수도로 결정되었습니다.

이렇게 서울은 과거와의 단절을 조건으로 미래의 혁신을 위해 탄생되었습니다. 서울이 새로운 수도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논쟁, 토론, 설득, 반론, 대안 제시의 세월을 가졌습니다. 서울타임스의 탄생도 서울이 수도로 거듭나던 시절에서 향후 좌표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19세기는 제국의 시대, 20세기는 국가의 시대, 21세기는 도시의 시대라 했습니다. 덴버 시장을 역임한 웰링턴 웹(Wellington E. Webb)이 남겨준 통찰입니다. 600년을 넘긴 수도 서울도 제국시대와 국가시대의 영욕을 넘어 도시 시대의 새로운 소명을 안고 있습니다. 이제 도시는 궁궐이나 총독부나 정부종합청사가 아니라 사람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해졌기 때문입니다. 서울타임스의 행로도 통치의 상징으로서 서울이 아니라 거리의 시민들과 동행하는 것이라 믿게 됩니다.

계란요리와 도시

▲ 왼쪽부터 삶은 달걀, 계란 프라이, 스크램블드 에그.
도시는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시장에게만 맡길 수 없습니다. HP의 창업자 데이빗 패커드(David Packard)의 말을 도시에 패러디해 본 것입니다. 브루킹스연구소에서는 ‘워싱턴 D.C - 위대한 수도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이를 위해 도시계획가협회(APA)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다양한 도시 관련 전문서적을 참조하여 모두 12가지의 좌표를 정리했습니다. 위대한 도시가 지녀야 할 덕목은 매우 평범했고 시민을 중심에 두고 있었습니다.

위대한 도시(Great City)가 가져야 할 특성으로 ① 독특한 도시 정체성과 장소성 ② 효율적이고 편리한 교통체계 ③쾌적한 자연환경 ④ 양질의 공교육 ⑤ 강력한 치안시스템 ⑥ 다양한 주거선택 가능성⑦ 건실한 시민 ⑧ 건강하고 안정적인 지역공동체 ⑨ 매력적인 도심부⑩ 공원 등 공개공지 ⑪ 역사·문화적 자원 ⑫ 역동적인 이웃 간의 소통을 장려하고 있습니다.‘서울타임스’가 여러 덕목을 두루 챙겨 서울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길 기대합니다.

도시건축가 민선주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도시에 관한 가장 재미난 비유로 계란요리를 들었습니다. 삶은 계란은 도심부와 주변부가 확연하게 나뉩니다. 노른자가 성처럼 도시의 핵심을 차지하고 이는 흰자 지역과 공유되지 않습니다. 계란 프라이는 그나마 노른자가 조금 넓게 퍼지기는 하지만 삶은 계란의 구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노른자 따로 흰자 따로 단절된 도시를 상징합니다.

“미래의 도시는 점점 스크램블드 에그(Scrambled Egg)처럼 될 거예요. 단핵구조의 중심부와 주변부가 아니고 도시 곳곳에 다양한 도시기능이 퍼져있는 다핵구조의 도시가 살기 좋은 도시니까요.” 민 선생님의 지적대로 도시 곳곳에 아트센터,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이 들어서고 작은 상권들이 자신들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뽐내며 다채로운 도시공동체도 여러 곳에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서울타임스의 지면에서 으깬 계란요리처럼 촘촘하고 울퉁불퉁하고 다채로운 서울의 모습을 많이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도시는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란 믿음대로 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담길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서울을 다루는 다른 어떤 매체보다도 새의 눈, 꿀벌의 눈, 개미의 눈으로 입체적인 모습을 그려줄 것을 부탁드립니다. 지난 1년 동안 그러했던 것처럼요.

[사진출처:기사에 소개한 모든 사진은 사진공유 사이트 www.flikr.com에서 저작권에 문제가 없는 사진만을 제공받았습니다. 사진을 제공한 작가의 ID는 각각 사진1 - 아우크소, 사진2 - dwhitaker87, 사진3 - alternatekev, 사진4 - I Believe I Can Fry, 사진5 -romanlily, 사진6- Katie Earley이며 사진을 공유해주신 것에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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