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따리 작가 김수자
보따리 작가 김수자
  • 정민희
  • 승인 2012.09.14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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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쉬기: 보이지 않는 거울 / 보이지 않는 바늘

80년대 중반 어느 날 김수자(1957~  )작가는 어머니와 이불보를 꿰매려고 바늘을 천에 대는 순간, 천과 바늘과 작가는 ‘관계’ 속에서 어떤 강렬한 결속을 처음 느꼈다. 우주의 에너지와 내 안의 에너지, 그 모든 것이 바늘 끝으로 향하는 듯 한 순간 원초적인 영감을 받은 것이다. 그의 대표 작품 <바늘여인> 영상작품이 10년 넘도록 세계 여러 곳에서 찍히고 있게 한 찰나였다.

뉴욕, 파리, 서울을 기반으로 국제적인 작가로 맹활약하고 있는 김수자는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 메인 전시관에 <바늘여인>시리즈가 소개되었다. 보따리는 생활용품을 담는 원형의 꾸러미이며 이를 꿰매는 행위는 바늘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는 1980년대부터 이불보를 꿰매거나 헌옷을 보따리에 싸서 수없이 많은 설치작품과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실을 꿴 바늘은 사물을 하나로 이어주며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낸다.

바느질은 여성적인 집안일로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하는 노동일수도 있지만, 작가는 전통 한국여성의 평범한 활동을 모티브로 선택함으로써 가사노동의 위상을 격상시킬 뿐 아니라 페미니스트적 시도의 최전방에 있다고 볼 수 있다.

▲ 실의 궤적 - 제 2장
바늘은 침 끝으로 공격을 하고 바늘귀를 통해 치유를 하는 이중적인 성격이 늘 있다. 바늘은 천을 꿰매는 일이 끝나면 역할이 사라지고 실의 흔적만 남는다. 바늘의 속성이 매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는 ‘바늘여인’, ‘보따리’, ‘천, 지, 인’의 관계항 탐구에서 인류학적 삶의 면모를 정신적이고 철학적인 경지로 제시해 준다. 시공간을 넘어선 장소에서의 삶과 문화를 관조적으로 바라보면서 <실의 궤적>을 통해 구조적 연관성을 담아낸다.

서로 다른 전통과 문화를 직물과 같이 꿰매어가는 영상은 현대의 삶에서 정서적, 인종적, 장소적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서로 다른 이질적인 존재들이 미세한 경계에서 서로 이방인이자  관찰자가 되는 것이다.

2006년 베니스 라 페니체 극장에서 상영된 <숨쉬기: 보이지 않는 거울 / 보이지 않는 바늘>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호흡이라는 자연의 리듬을 디지털 색면 추상의 시각적 호흡과 연계하는 작업이다.

그는 30년 넘는 작업 활동에서 보따리, 바늘, 실 등의 소재를 활용함으로써 예술과 삶이 결국 하나 되는 인간적 삶을 성찰하게 한다.

김수자 < To Breath >展. ~10월 10일. 국제갤러리. 02) 735-8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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