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S와 함께 한 서울타임스 글쓰기 1년의 추억
GIS와 함께 한 서울타임스 글쓰기 1년의 추억
  • 송규봉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12.09.22 10: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의 영역이었던 ‘지도 제작’이 수많은 독자에게로

안선배님, 가을편지 보냅니다.

어찌 지내시나요? 늘 그렇듯 안부인사가 맹탕입니다. 오래 전부터 한번은 긴 편지를 쓰고 싶었습니다. 스물넷에 처음 뵙고 그 사이 저는 마흔 넷이 되었습니다. 별 것 없는 제 삶의 덩어리에서 잠시 선배님과의 세월을 뚝 떼어내어 오늘 한나절은 이와 마주앉으려 합니다.

스무 살에게 20년은 인생전부일 테고 여든 어르신에게는 4분의 1 분량인데 저에게는 절반의 시절쯤 되는 것 같습니다. 스물에 마흔 이후는 가늠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마흔 중반에 이르자 이 쪽 저 쪽 양쪽이 조금씩 더 보이는 것 같습니다.

사십대 문턱에 들어서면 /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아니,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 두고 / 보속(補贖, 죄의 값을 보상함)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 씨 뿌리는 이십대도 / 가꾸는 삼십대도 아주 빠르게 흘러 / 거두는 사십대 이랑에 들어서면 / 가야 할 길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안다 / …… 인생의 지도를 마감해야 한다 / …… 사십대 들녘에 들어서면 /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 다시는 매달리지 않는 날이 와도 /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   시인 고정희(1948~1991), <사십대>중에서

어느 날 우연히 우리 사회의 20대부터 70대까지 인구, 가구, 주택, 직업에 관한 GIS 분석보고서를 쓰다가 한 웹사이트를 발견했습니다. 이 사이트에는 온통 사십대에 관한 시만 모아놓았습니다. 안타깝게도 고정희 시인은 <사십대>라는 시는 썼지만 마흔 셋에 삶을 마감했습니다. 그녀의 <오십대>에 관한 시는 읽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못 되도 꼰대는 되지 말자

제가 좋아하는 후배는 시인이기도 하고 사회학 교수이기도 합니다. 문학과 가까운 문화예술분야의 사회학을 연구합니다. 어느 날 유튜브에서 후배의 강의 동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강의주제는 ‘인간은 못 되도 꼰대는 되지 말자’였습니다. 저와 두 살 터울인 사십 대 초반 후배의 걱정은 자신은 물론 주변 남자들이 ‘꼰대’가 되어 가는 징후에 대한 풍자와 대안제시를 담고 있었습니다.

공식 강의명은 ‘나이듦(Being Aged),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하여’입니다. 이 제목은 홍상수 영화감독이 던진 화두 ‘우리 인간은 못 되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를 패러디해서 ‘우리 인간은 못 되어도 꼰대는 되지 말자’로 잡았다고 배경설명을 합니다. 나이 들며 피부와 주름살을 살피듯 사십대부터 스스로 ‘꼰대스러움’이 없는지 미리미리 신경을 써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꼰대의 사전적 의미와 다른 나라에서 똑 같은 발음의 의미를 소개해줍니다. 스페인어로 꼰대(Conde)는 ‘백작’이라는 뜻이랍니다. 집시들을 이끌기 위해 집시들이 뽑았던 두목이나 족장을 뜻하기도 한다는군요. 일본어 ‘꼰대’라는 발음은 각 지방에 배치되어 지방 관아 또는 관문을 지키던 수비병을 뜻하고 국어사전에서 ‘꼰대’는 ‘선생이나 노인을 칭하는 은어’라고 합니다.

꼰대 체크리스트와 처방전

꼰대의 체크리스트입니다. “1)사람들이 자기를 어떤 호칭으로 부르냐에 민감하다. 2) 식당이나 주유소에서 ‘사장님, 어서 오세요’라고 들으면 기분이 좋다. 3) 식당이나 주유소에서 ‘사장님, 어서 오세요’라고 들으면 기분이 나쁘다. 속으로 ‘나 사장 아니고 교수인데’ 생각하면서. 4) 모임에 나가면 ‘내가 해봐서 아는데’ ‘내가 한 수 가르쳐주지’식의 말을 많이 한다. 5) 모임에 나가면 겉으로는 말을 많이 안 해도 속으로는 아주 많이 한다. 주로 ‘이런 한심한’으로 시작하는 말들을. 6) 중요한 말을 하는데 누가 끼어들면 거대한 분노를 느낀다. 7) 칭찬을 들으면 좋아하기는커녕 그 칭찬이 한참 부족하다고 느낀다. 8) 특히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들 앞에서 위에서 제시한 행동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꼰대의 특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까지 해줍니다. “1) 권위주의적이다. 2) 자기만 옳고 타인은 그르다. 3)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거나 질문을 할 줄 모른다. 4) 의식이 깨어 있는 척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구태의연하다. 편하게 이야기해 난 개방적이거든 근데, 나에 대한 호칭은 참 마음에 안 들어. 호칭에 걸려 실제 상대방의 말을 들을 겨를이 없다”고 합니다.

사회학자의 눈에 ‘꼰대’가 되고 안 되고의 분수령이 40대라고 합니다. “꼰대냐 아니냐, 꼰대를 가름하는 연령대는 40대이다. 왜 40대일까? 40대는 일반적으로 사회적 지위나 위치가 상승하는 시기인데 하에서 중으로, 중에서 상으로, 루저(looser)가 되느냐 위너(winner)가 되느냐 사회적으로 관습적으로 정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의 평가에 민감해지는 시기이며 그렇기 때문에 방어기제가 작동한다는 겁니다. “내가 어쨌다고? 내가 뭘 잘못했다고? 최선을 다해 여기까지 왔는데 뭘 더 바래? 뭘 더 어떻게 하라고?” 이렇게 방어기제가 과잉으로 작동하게 되면 ‘수동적 공격행태(Passive Aggressive Behaviour)’가 타인에게 표출된다고 합니다.

친절하게도 ‘꼰대’가 되지 않을 비법까지 알려줍니다. “1)글을 써라. 폴란드 시인 쉼보르스카는 노벨문학상 수상소감 ‘내가 왜 시를 쓰는가?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모른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2)산책 같은 여행, 여행 같은 산책을 떠나라. 명승지 중심이나 짜여진 스케줄에 따라 바삐 움직이는 것 말고 산책하듯이 느리게 여행하듯 새롭게 살아가라. 익숙한 동네 안에도 모르는 삶, 비밀, 이야기, 발견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3)사회적 활동을 하라. 다양한 동호회, 봉사활동,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하면 좋겠다. 갇혀있던 테두리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살아보도록 애쓰는 것이다.”(참고, 강의 동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D5KKkIVC4YM)

꼰대 아닌 50대들

회사에 다니는 오십대 A선배가 그랬습니다. 마흔에는 불혹(不惑)이 아닌 만혹(滿或)이었고, 쉰이 넘어서야 불혹을 조금 알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그 선배는 스스로 유혹에 가득 찬 만혹(滿或)의 징표가 ‘다른 삶에 대한 동경’이라고 했습니다. 여기보다 지금보다 더 멋지고 설레는 삶이 다른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동경 때문에 한없이 기웃거리게 되었다고요. 하지만 지금 여기서도 괜찮고 때론 근사하다 감사하며 산다고. 선배는 여전히 돌아보고 후배들에게 배우며 산다 했습니다.

전직기자 B선배는 쉰둘의 나이에 사직서를 썼습니다. 직장 없이 종종 충남 아산 현충사에서 이순신의 칼을 들여다보며 한 계절을 보냈다 했습니다. “거기에, 장군의 큰 칼이 걸려 있었다. 차가운 칼이었다. 혼자서 하루 종일 장군의 칼을 들여다보다가 저물어서 돌아왔다. …… 영웅이 아닌 나는 쓸쓸해서 속으로 울었다.” 영웅이 되진 못했지만 작가가 되었습니다. ‘작가는 영원한 벤처’라는 말이 잘 어울립니다.

신촌을 지나 용산역 가는 시내버스 운전사 C선배는 귀밑에 ‘아이돌 가수’들이 달고 나오는 마이크를 귀에 걸고 입술주변에 고정해두었습니다. 출구로 올라오는 모든 승객의 얼굴을 향해 일일이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인사를 합니다. “차 출발합니다. 손잡이를 잡아주십시오. …… 다음은 5호선과 연결되는 서대문역입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예상대로 이 버스는 급정거와 급발차가 없습니다. 버스운전사지만 크루즈 선장보다 멋져 보입니다.

평범한 생활인 D선배는 쉰하나입니다. 평범했던 동네 야산은 점점 특별해지고 있습니다. D선배가 매일 3m씩 10년 동안 10km의 ‘어르신용 산책로’를 수작업으로 만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가파른 등산로에서 칠순 어른이 넘어져 응급차에 실려 갈 때 우연히 부축을 했답니다. 아버님을 떠올리며 시작한 일이 10년에 이르렀습니다. D선배의 아파트 평수는 여전히 비좁지만 얼굴은 맑고 마음은 드넓어 보입니다. 요즘 저에게 힘이 되어주는 50대 인생선배들의 모습입니다.

안선배님, 감사합니다.

우선 ‘꼰대’가 되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제 눈에는 그렇습니다. 1991년 처음 뵌 후로 일 년에 한두 번, 제가 해외에 머물 때를 빼고는 적적하다 싶을 때 옛 동료들과 함께 만나왔습니다. 일상에서 업무에서 활동에서 자주 만나지 않았기에 가끔 찍는 기념사진처럼 저는 대략 일 년에 한 장씩 선배님에 대한 기억을 앨범에 모아두게 된 것 같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지내오게 되었습니다. 우선 이 점이 감사합니다. 너무 가깝지 않아서 제 허물을 많이 보여드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함께 하려 않았기에 오히려 제 부족한 능력이나 불성실이 다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래서 서로 마음의 풍상을 겪거나 실망의 퇴적층을 높이 쌓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서울타임스를 잉크로 찍어낸 첫 지면부터 초대해주신 것도 감사드립니다. 객원 기고자라며 제가 ‘글을 드린다’고 하지만 지나보니 최대 수혜자는 바로 저 자신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저 일의 영역에서 붙들고 있던 ‘지도제작’이 신문지면을 통해 개인으로는 만나볼 수 없을 많은 분들에게 소개된 일은 저희 분야의 동료들에게도 커다란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울타임스 덕분에 좋은 분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특히 서울타임스가 만들어져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모든 구간 구간에 애쓰고 고생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제가 그 모든 분들을 다 알지 못하지만 수많은 분들의 손길을 거쳐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할 것입니다. 모두 감사드립니다.

지난 1년 배운 것들

지난 1년 GIS 지도에 얹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꼰대’의 징후가 드러나기 시작한다는 40대 중반에 ‘꼰대탈출’ 처방전 1번인 ‘글쓰기’를 매주 하게 된 셈입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그 모양이냐’고 물으시면, ‘그나마 매주 글을 써서 괴물은 되지 않은 것 같다’고 답할 생각입니다.

1년 동안 진행한 ‘GIS Map으로 본 서울’ 마지막 기고문은 너무 무겁지 않게, 너무 폼 잡지 않고 쓰고 싶었습니다. 어설프게도 마흔과 쉰의 나이에 대해 쓰게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 서울타임스 독자로 돌아갑니다. 매주 빈약한 원고 때문에 편집팀이 고생 많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인생 최고의 자기계발은 듣고 읽고 말하고 쓰기라는 어느 현자의 조언은 지금 더욱 설득력을 갖는 것 같습니다. 몰라서 듣게 되고, 알고 싶어 읽게 되고, 겨우 배우고 느낀 것을 글로 쓰고 지도로 그리게 되었습니다. 서울타임스 덕분에 다시 도시와 시민들을 바라보게 되었고 덤으로 제 허술하고 영세한 삶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인내심을 갖고 부족한 기고문을 참아주신 독자 여러분께도 큰절 올리는 마음으로 감사드립니다.<끝>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