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십자병원-장석주
적십자병원-장석주
  • 박성우
  • 승인 2012.09.24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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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수정 얼음 속에 갇힌 궁전이다
그곳은 천 개의 춥고 어두운 부엌을 거느리고 있다
그곳은 하늘 위에 뜬 모든 구름을 생산하는 공장이다
그곳엔 병든 메아리들과 늙은 골목길들이 입원해 있다
그곳은 세뇌되지 않은 바람이 방목되는 숲이다
그곳엔 일요일 저녁의 극장과 집 나온 고양이들이 사이좋게 어울려 있다
간호사들은 변덕스런 소왕(素王)들을 돌보는 일말고 또 다른 업무가 있는데
그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이튿날 날씨를 결정하는 일이다
적십자병원의 간호사들이 날씨를 결정한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하늘로 주민등록지를 옮긴 고인(故人)의 편지가 배달된
이튿날에는 안개가 끼고
장기 입원 환자였던 <가망없는 희망>씨가 퇴원한 이튿날에는
금싸라기 같은 햇빛이 넘치도록 쏟아졌다

서울 적십자병원은 서대문 네거리 부근에 있다
한 늙은 천사가 한 주일에 세 번 혈액투석을 하러
그곳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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