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의 인격적 관계가 그립다’
‘나와 너의 인격적 관계가 그립다’
  • 김진웅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 승인 2012.09.2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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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웅 선문대 교수

최근 연이은 성폭력 사건들로 민심의 불안이 극에 달해 있다. 어린이까지 폭력에 희생되고, 더구나 이웃에 의한 범행이 자행된다는 사실이 더욱 충격적이다. 이웃과 이웃은 열린 소통 대신에 서로 마음과 몸을 더욱 굳게 닫고 있다. 인간존재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을 자아내게 한다.

게다가 매스미디어의 과열된 보도경쟁은 사건을 더욱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극대화시킨다. 흔히 언론은 중요한 문제에 대한 공론장을 형성하는 역할로 인해 ‘사회적 제도’로서 보장받는다. 언론의 기본준칙은 개인의 인격권을 보호하고, 사회적 차원에서는 선정성과 폭력성을 규제하는 것이다.

자칫 언론은 이런 선을 넘는 황색저널리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작금의 언론현상은 이러한 이상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건에 관한 담론을 형성하기 보다는 성과 폭력을 상품으로 포장하여 유포시키는데 혈안이 된 듯하다.

저널리즘의 위기이자, 공론장의 위기이다. 미디어를 통해서는 문제의 본질이나 해결의 실마리를 기대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일상은 극단적 사건의 직·간접적 체험의 반복이다. 그러나 시민 개개인은 고단한 삶에 쫒긴 나머지, 이러한 위험의 체험들을 오래 기억하지 못한다.

위험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시민들은 그 위험조차 잘 인식하지도 못하게 된다. 반복되는 학습효과로 우리에게는 위험이 이미 만성화된 상태이다. 하지만 미디어는 우리, 즉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기도 하다. 따라서 나, 그리고 우리의 의식 수준이 높아질 때 문제는 사라질 수 있다.

서구의 사상가 마틴 부버(Martin Buber)는 인간관계를 ‘나-너’ 또는 ‘나-그것’으로 구분한다. ‘나와 너’ 관계는 대등한 인격적 관계이자 사랑의 관계이다. 내가 너이고, 너 역시 나이다.

나와 너는 일자(一者)라는 일원론적 인식이다. 이에 반해 ‘나와 그것’ 관계는 비인격적이자 사물적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너는 나에게 인격보다는 사물로 인식된다. 나 역시 상대방에게 사물로 받아들여진다. 상대방은 늘 나의 욕망충족의 대상일 뿐이다.

최근의 불행한 사건들은 우리의 사회적 관계가 나-그것 관계로 전락했음을 상징한다. 그것(상대방)은 나에게 이웃이 아니라 욕망충족의 대상이다. 특히 과도하고 무분별하고 일상화된 성 문화나 폭력은 평범한 시민의 의식 및 상호관계를 비인간적으로 변질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모두는 서로에게 잠재적 피해자이자 가해자일 수 있다. 인간은 신성(神性)과 동시에 수성(獸性)을 갖고 있는 존재이다. 작금은 수성이 개인을, 사회를 지배하는 현상이 고조된다. ‘신의 아들’이라는 인간의 위상이 ‘신의 괴물’로 추락할 것인가는 자유의지의 향방에 달렸다.

각자 내 속에 잠재되어 있는 신성이 빛을 발하도록 매일 성찰의 시간을 갖자. 그 빛이 서로에게 비추어 질 때, 사회는 나-그것 관계에서 나-너 관계로 회복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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