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구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소방행정과장
이상구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소방행정과장
  • 이인우 기자
  • 승인 2012.10.12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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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위해 420여 쪽 안전교본 펴낸 베테랑 소방관

▲ 이상구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소방행정과장.
소방관은 어느 사회에서나 존경 받는다.

생사를 넘나드는 화재와 사고 현장에 뛰어들어 인명을 구하고 재산 피해를 최소화하는 일을 도맡기 때문이다. 소방관은 따라서 희생정신과 용기가 없다면 할 수 없는 직업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우리나라 소방관들은 누구보다 많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 실제로 서울의 많은 소방관들이 화재 현장에서 목숨을 잃거나 큰 부상을 입는다.

이런 희생의 안타까움을 줄이기 위해 서울의 고참 소방관이 나섰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이상구 소방행정과장은 정년을 1년 반 정도 앞둔 베테랑 소방공무원이다.

용기와 희생정신 뒷받침 하는 필수교본
그는 지난 5일  420여 쪽의 ‘소방활동 위험예지훈련 도해집’을 펴냈다. 이뿐만 아니다. 이를 축약해 일선 소방관들이 휴대할 수 있는 170여 쪽의 소책자를 만들었고 직접 출연해 찍은 동영상 CD도 제작했다. 이 과장은 “후배 소방관들이 더 이상 무모한 희생을 감수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무모한 도전을 한 셈”이라며 웃었다.

도해집 발간을 결심하게 된 동기는 2008년 시민의 신고에 따라 고양이를 구하려다 추락사한 후배 소방관의 사례였다. 또 한강구조대의 보트 전복사고도 소방관으로서 뼈  아픈 자성을 불러일으켰다. 더 이상 일선 소방관들의 위험을 두고 볼수만 없다는 마음에서 도해집을 기획하고 수많은 사고 사례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 과장은 “양천소방서장으로 일하던 2008년 SBS신사옥 건설현장을 보면서 느낀 점도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관할 소방서장으로서 매일 공사현장을 지켜보며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수시로 TBM(Tool Box Meeting·각 팀원들이 공사 장비를 가운데 두고 안전한 시공을 다짐하며 정해진 구호 등을 외치는 과정) 등을 진행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SBS신사옥 건설현장에서는 3년의 공사 기간 동안 단 한 차례의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 과장은 “당시 공사 현장을 지켜보며 위험예지훈련이 소방관뿐만 아니라 건설·토목 공사현장에도 반드시 필요한 자료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며 “고층건물 유리창을 청소하는 작업반원들에게도 필수적인 교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소방활동 위험예지훈련 도해집’
‘소방활동 위험예지훈련 도해집’을 펴내기 위해 그는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을 벌여야 했다. 먼저 이 과장은 소방업무 중 공사상을 입은 실제 사고사례와, 소방공무원이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4500건의 ‘아차사고’(실제 일어날 뻔한 사고) 수집부터 시작했다.

또 이를 정밀 분석해 각기 다른 유형의 사례 143건을 정리했다.

밤샘 작업 자초, 자청한 고생 후회도
모두 일과를 마친 뒤 진행해야 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는 일도 아니라는 게 이 과장의 말이다. 정작 큰 일은 143건의 사례를 그림으로 그려넣는 작업이었다.

만화가를 정해 일단 사고 사례를 말로 설명하고 초고가 그려지면 수많은 수정과 보완을 거쳐야 했다. 이 과장은 “한 장의 그림을 두고 몇 차례 고치다보면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며 “나중에는 이 일을 왜 시작했을까 후회도 많이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완성한 도해집은 일반 시민이 볼 때 평범한 삽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방관들은 그 그림 한 장에서 보통 5~8가지 위험 요소를 찾아낸다고 한다. 그 위험 요소가 바로 사고를 부르는 함정이 된다.

따라서 팀별로 이 도해집을 보면서 1차부터 3차에 이르는 단계별 교육과정을 밟을 경우 사고 예방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 과장은 “일선 소방서에서 교대시간마다 하루에 한 가지씩의 위험예지훈련을 해도 반년 가까이 걸릴 분량”이라며 “이번 도해집은 서울 관할 소방서뿐만 아니라 전국 소방서에도 보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 아쉬운 점이 많다.

먼저 예산 문제로 대부분 흑백 인쇄에 그친 도해집의 전면 컬러 제작부터 서두를 참이다.

이 과장은 “빠른 시일 내에 개정판을 발간해 일선 소방관들이 더 쉽고 빠르게 예지훈련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소방관이 34년 동안 몸바쳐 근무했던 서울 소방과 후배 소방관, 나아가 서울시민들의 안전을 바라는 충정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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