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길이 막히고 길을 잃다
지하철, 길이 막히고 길을 잃다
  • 김진웅 선문대학교 언론광고학부 교수
  • 승인 2012.10.12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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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웅 선문대학교 언론광고학부 교수

현대인의 삶은 소통의 연속이다.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서 정보나 의견을 끊임없이 접하는 것은 물론, 집과 먼 직장을 오가는 육체적 소통도 필수적인 일상사이다. 인구가 밀집된 거대도시 서울의 경우, 몸으로 통(通)하는 일상문화는 무엇보다 중요한 생활이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출퇴근 시민의 모습은 대표적인 광경이다. 특히 서울 지하철은 오백만 여 시민들의 일터를 연계하는 소통수단이다. 러시아워 인파는 마치 홍수의 성난 물결과 같아 빠르게 흐르지 않으면 큰 일이 터질 듯하다.

하지만 필수적 생활공간으로서 서울 지하철은 개선을 요하는 측면도 많다. 우선 수 없이 늘어선 상점은 승객들의 동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상점들은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환승역에 집중되어 있다. 이곳은 보통 길고 복잡한 경로를 거쳐 환승하거나 출입해야 한다. 자연히 승객들은 비좁은 통로를 마치 쫒기는 토끼마냥 매일 왕래한다. 상인들에게는 이곳이 물 좋은 공간으로 인기가 높을 수 있다.

시민편의를 제공하는 상점도 많지만, 일부 점포는 통로의 넓은 공간을 점유하여 통행을 방해하거나 차단하는 경우도 많다. 때로는 냄새, 탁한 공기, 고성의 호객행위까지 가세되기도 한다. 일분 일초가 급하게 일터를 오가는 시민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누적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우후죽순으로 무질서하게 부착되어 있는 광고판, 이에 반해 부실한 안내표지판은 승객들의 시선을 방해하여 종종 길을 헤매게 만든다. 특히 지리에 익숙지 않은 사람, 그리고 한해 천만 명 이상 찾는 외국인에게는 목적지를 찾아가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이들에게 각인되는 서울의 인상이 어떨지 생각해보라.

지하철공사가 점포임대 및 광고수익으로 한해 벌어들이는 수입은 수백 억 원에 달한다. 이러한 수익사업은 시민의 소통문화를 방해하지 않는 선으로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는 공공영역의 상업화 현상이 깊숙이 침투되어 있다. 시민들의 소통공간을 시장에 넘겨준 셈이다. 즉 시민소통의 장이 상품소통의 장으로 변질된 것이다. 주객이 전도된 형상이다.

마치 수용자를 대상으로 광고수익에 주력하는 상업언론과 흡사하다. 더구나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 공기업이 이런 일들을 의욕적으로 벌인다는 점은 공감하기 힘들다.

시민은 지하철 공간이 시장이 아니라 원활한 소통을 위한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여기에 추가한다면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흔히 서구세계에서 우리가 부러워하는 점은 무엇보다 높은 문화수준인데, 이는 시민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제 우리도 서울을 문화도시로 가꾸려면 우선 일상적 생활문화의 품격이 한층 높아져야 한다. 얼마 전 의욕적으로 ‘디자인 서울’을 외치던 정책이 떠오른다. 눈에 띄는 거창한 건물을 세우기 보다는 시민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공공영역의 디자인에 신경을 쓰는 것이 더 소중하지 않을까.

걸림돌 없이 원활히 소통되는 편리한 지하철 공간, 여기에 멋진 그림과 은은한 음악이 곁들여진 전경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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