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less but, not Hopeless’
‘Homeless but, not Hopeless’
  • 권지담 숙명여자대학교 정보방송학과 4학년
  • 승인 2012.10.19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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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갗을 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매서워진 걸 보면, 가을을 맛보기도 전에 겨울이 왔나보다. 거리에는 어느덧 붕어빵, 호떡 리어카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고 길던 해는 이제 6시가 되기도 전에 자취를 감췄다.

이렇게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질 때 쯤, 항상 떠오르는 추억이 하나있다. 바로 내 생에 가장 가슴 뛰었던 순간이자, 가장 행복했던 순간 말이다. 

2010년 2월 겨울,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가 영등포구 쪽방촌 사람들을 만난 건. 열정과 패기 넘치던 새내기 생활이 끝나고 대학생으로서 처음 맞는 겨울방학, 어딘가 모르게 허전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하루를 보내긴 했지만, 학점도 연애도, 노는 것도, 어느 것 하나도 푹 빠지지 못한 채 영어학원에서 20살을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고민하다 팀을 하나 꾸렸다. 팀명은 ‘대학생의 자격’, 팀원은 20살인 나와 내 친구들, 이제 막 대학에 붙은 예비 새내기들 7명이었다. 우리는 대학생 때,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하고 싶고 또 해야 하는 것들을 찾아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대학생의 자격으로 열정, 넓은 사고, 사회에 대한 관심 등 다양한 것들이 나왔지만 그 중에서도 사람에 대한 관심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사람에 대한 관심을 어떻게 하면 실천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우연히 쪽방촌 기사를 보게 됐다. 바로 겨울철 쪽방촌의 온도가 백화점 온도보다 20보다 낮다는 충격적인 기사였다. 기사를 읽기만 했는데도 그 한기가 온몸으로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그 기사를 보는 순간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은 오직 하나였다. ‘이 분들을 안아드려야겠다.’ 그렇게 우리의 ‘쪽방촌 프리허그’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우리는 쪽방촌에 가기 전 영등포역에 있는 타임스퀘어에 들려 쪽방촌 주민들에게 드릴 간식을 사서 포장하고 편지도 썼다. 쪽방촌은 보기만 해도 작아지는 으리으리한 타임스퀘어에서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곳 여기저기엔 청소년금지구역이라는 표지판들이 보였다.

쪽방촌 주민들을 만나기 전, 쪽방촌 주민들의 식사와 생활을 도와주고 있는 광야교회로 향했다. 좁은 골목, 그곳을 감싸는 싸늘한 공기, 어딘가 모르게 음침하고 낡은 집들이 제일먼저 내 눈을 사로잡았다.

팀장으로서 무슨 일이 날까 걱정이 든 건 사실이었다. 이 분들이 우리를 싫어하거나 무시할까 겁도 났다. 하지만 함께였기에 용기를 냈고 쪽방촌에 가기 전 광야교회에서 급식봉사를 하면서 주민들과 자연스럽게 첫 만남을 할 수 있었다. 급식봉사를 한 뒤 드디어 설렘과 불안이 뒤섞인 상태로 주민들을 만나러 갔다.

쪽방 촌은 꼭 해리포터에 나오는 호그와트 같았다. 방문을 열면 그 안에 또 방, 그 방문을 열면 또 수 십 개의 방이 있었다. 정말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았다. 처음 박스를 손에 든 채 우르르 몰려오는 우리를 쪽방촌 주민들은 썩 반기지 않았다. 우리도 간식만을 드릴 뿐 첫 포옹을 하기 망설이고 있었다.

그렇게 10여분 정도 지났을까? 드디어 한 아주머니를 안아드렸고 포옹에 소녀같이 수줍어하시며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빵을 주거나, 우리 집을 청소해준 사람들은 있었어도 날 안아주러 와준 사람은 처음이에요”라고 말했다. 그 순간 온 몸의 피가 뜨거워지면서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이분들에게 따뜻함을 전해준 것이 아니라 내가 더 큰 따뜻함을 받았음을.

포옹 뒤에 우리에게 귤 3개를 꼭 쥐어주시던 할아버지, 자판기 커피를 뽑아 주시던 쪽방촌 슈퍼 아주머니, 멀리서 다가가는 우리들에게 먼저 팔을 벌려주신 아주머니까지, 이 분들에게 받은 사랑과 따뜻함은 그 순간 나를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아직 대학입학도 하지 않은 새내기들이 사랑과 나눔을 배우고 세상의 따뜻함을 느끼며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을 바꾸는 일이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2012년 3월, 오랜만에 쪽방촌을 다시 찾았다. 그 사이 그곳에선 아이가 태어나기도 하고 체육대회를 준비하는 축구팀도 보였다. 그 분들의 사진을 카메라에 담으며 또 다른 추억을 함께 나눴고 그들의 삶 속에서 절망이 아닌 희망을 보았다.

어느 때보다 사람들에게 추위가 더 매섭게 느껴지는 건 집의 부재, 집이 있어도 가난한 하우스 푸어, 현대인의 필수조건인 부채 때문일까. 하지만 매서운 추위보다 더 따뜻한 사랑과 희망이 있기에 다시 또 쪽방촌을 찾으며 되뇐다. ‘Homeless but, not Hope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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