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보도에 투영된 사회경제적 약자
나주 보도에 투영된 사회경제적 약자
  •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
  • 승인 2012.10.19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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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계에서 나주 어린이 성폭행 사건의 후폭풍이 일고 있다. 경향신문은 성범죄사건보도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려고 내부 논의를 하고 있다고 들린다. 특히 기자협회에서 자성적인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기자협회는 국가인권위와 공동으로 성범죄보도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 사건을 전담하는 사회부 기자들이 참여해서 발표하고 토론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성범죄 보도의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만이 능사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것이 제정된다고 하더라도 장차 성범죄 보도에 얼마나 변화가 일어날 지 두고 볼 일이다.

나주 사건을 선정적으로 보도한 모든 미디어는 가해자였다. 어린 피해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다투어서 보도했다. 사건현장은 물론 피해자의 집을 지도로 밝히고 피해자의 일기장을 공개했다. 피해자가 다니는 학교와 치료받는 병원을 찾아가 들쑤셔댔다.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언론의 양식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앞으로 피해자의 가족이 그 동네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이렇듯 보도 경쟁이 지나친 가운데 조선일보는 사건과 관계없는 한 시민을 피의자로 둔갑시키는 오보까지 냈다.

나주사건은 선정보도의 정도가 유독 심했다. 당시 현장을 취재한 기자들에게 물었더니 낯 부끄러운 답변을 듣게 되었다. 피해자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약자이기 때문에 기자들이 두려워할 존재들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함부로 다루어도 뒤탈이 없는 사람들로 인식했고 피해자의 집안으로 들어가 카메라를 눌러도 두려움이 없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우리사회가 병들고 물질만능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고 하지만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 무감각해 지고 분노와 호기심만 양산하는 언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절망적이다.

과열 경쟁 탓 아니다
 이러한 보도행태에는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의 구분이 없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그 권리를 지켜줘야 하는 언론의 참 역할은 간데없고 사건을 들추고 파헤치며 상품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언론은 성범죄사건을 보도할 때 매우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돌변하는 것을 본다. 사건의 예방과 해결의 방법을 찾기보다는 현상에 관심을 쏟는다. 해결책은 분노와 형벌 뿐인양 호들갑을 떤다. 그리고 문제를 지적하면 언론인들은 미디어시장의 열악한 구조로 인한 과열경쟁의 결과라고 하며 선정주의에 탓을 돌리려 한다.

미디어가 낚시 제목과 황색 보도, 그리고 선정 광고로 품위를 잃은 지는 오래되었다. 언론인권센터는 미디어의 선정성으로 피해를 입은 시민의 상담전화를 종종 받는다.

언론이 편향성을 가지고 불공정한 보도를 하는 것과 달리 선정적이고 노골적인 기사와 광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은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잠깐의 수익은 볼 수 있으나 언론으로서의 생명력은 점점 더 사라지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정말 방법이 없는 것일까. 먹고살기 힘들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면 면죄부가 되는 것일까.

대선국면이 달아오른 시점이지만 이미 한 달이나 지난 나주사건을 두고 기자들 사이에서 자성적인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으니 반갑고 고무적인 일이다. 그렇지만 언론계의 자율규제안이 얼마니 실효성 있게 만들어질지, 아직 걱정스럽다.

언론인이 초심을 되찾고 자성을 통해서 실천 가능한 성범죄보도윤리준칙을 만들어 낸다면 시민들은 마음으로 박수를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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