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와 도현이에게
연희와 도현이에게
  • 이지혜 회사원
  • 승인 2012.11.0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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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 11살의 초등학교 4학년. 함께 간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틈만 나면 뛰어다니던 너의 야무진 모습이 마음에 생생하구나. 너를 키워주는 엄마 수녀님이 주는 마이쭈를 두 주먹으로 움켜쥐고선 행복해하던 네 모습이 삶에 지친 내게 시원한 바람 한 줌이 되어 주었단다.

네 티셔츠 주머니에 가득 담긴 새콤 달콤 마이쭈는 네가 동물원 곳곳을 구경하는 동안 네게 소소한 행복을 한 움큼씩 선물했단다. 네가 간식으로 싸온 껌을 입에 오물오물하며 “어른이 되면 껌 한 통 사고 싶다”는 네 말에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

고사리만 한 네 자그마한 손이 내 손에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며 어느새 해가 저물었어. 난 너와 인사를 나누고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너의 개다리춤이 불쑥불쑥 생각나는구나. 친구들과 벤치에 둘러앉아 게임 벌칙으로 신나게 개다리춤을 추며 수줍어하던 네 모습.

대공원에는 엄마 아빠와 함께 손잡고 온 많은 네 또래 아이들이 있었어. 부모의 옷깃을 끌어당기며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사진기를 든 아빠 앞에서 맘껏 포즈를 취하는 아이들…. 

네 또래 친구들이 부모의 살결을 비비며 부모 품에서 어리광을 부리는 동안 너는 내 손을 잡고 다녔어. 너는 나를 ‘봉사자’라고 불렀지.

연희야, 너는 사랑스러워. 네가 봉사자 간식이라며 가방에 넣어온 새우깡과 콜라를 꺼내줄 때에, 네가 김밥 맛이 그냥 그렇다며 한쪽 눈을 찡그릴 때에도. 그 모든 순간이 사랑스러웠단다.

2012년 가을 어느 날, 이 봉사자 언니와 함께했던 순간은 바람을 타고 흩어지겠지만 이것만은 기억하렴. 네 곁에는 부모님 대신 수녀님이 계셨고, 네 손을 잡고 발맞춰 걸은 30대 언니가 있었고, 네 주머니는 네가 좋아하는 마이쭈가 가득했다는 걸. 갖지 못한 것을 탓하는 순간에도 삶의 선물은 네 삶에 이미 풀어져 있다는 것을.

도현.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18살.
널 키워준 엄마 수녀님이 자주 해주셨다는 말이 잊히지가 않아. “(부모가) 없는 것을 탓하지 말고,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에 감사하자”고.

도현아, 네가 KBS 청소년 취업프로그램인 스카우트에 출연해서 했던 말은 참 멋졌어. 두 동생의 손을 꼭 잡고, 너는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아요. 사정이 있으셨겠지요”라고 했어. 방청석 곳곳에서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리더구나.

사실, 어떻게 네가 그때 부모님 사정을 헤아릴 수 있겠니. 그러나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는다는 네 말에서 따스한 햇볕 한 줌이 느껴졌어. 스카우트 녹화방송이 끝나고 수녀님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 너는 방송에 출연하기까지 어렵고 고단했던 즐거웠던 모든 과정을 시시콜콜 수녀님에게 털어놓기 시작했지.

너는 공무원이 꿈이었지만 너와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들에게 세상 선입견에 맞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도전했다고 했어. 그래, 네가 가슴 깊은 곳으로 내려가 길어 올린 꿈은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선물했단다.

연희 그리고 도현아!
살아보니 말이야. 세상에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정말 많더라. 언제가 너희가 가장 춥고 바람막이가 없다고 생각되는 추운 계절이 찾아온다면 자신의 삶을 버리고 너희의 방패막이 되어준 젊은 엄마 수녀님들을 기억해. 그 추운 계절은 어쩌면 젊은 엄마 수녀님들이 할머니가 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네 곁에서 네 눈물을 닦아주고 청춘을 바쳤던 또 다른 엄마를 기억하렴.

엄마 뱃속에서부터 콩닥콩닥 뛰기 시작한 너희의 심장 소리를 기억하고, 엄마 뱃속에서 뼈가 우둑우둑 솟아나고 살덩어리가 만들어진 축복의 순간을 기억하렴.

우리가 밤하늘의 별을 빛나게 하는 어둠의 두께를 이해하게 되는 날, 우리는 별처럼 함께 빛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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