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를 찾아서
신화를 찾아서
  • 김원진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3학년
  • 승인 2012.11.0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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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없다.
임기를 6개월도 채 남기지 않은 이명박 대통령의 자서전 제목이다. 내 방 책꽂이엔 1995년 1판 9쇄 발행본(김영사)이 있다. 이 책을 이 대통령이 후보이던 시절 한 번, 그리고 최근 들어 다시 한 번 읽었다.

문장이 매끄럽고 글의 전개가 물 흐르는 듯하다. 본인이 썼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 책은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고들 회자된다. 심지어 카자흐스탄어로도 번역되어 지난달 31일 출간됐다.

자서전의 제목처럼 지난 4년 6개월도 신화는 없었던 것 같다. 이 대통령에게 몰표를 준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분명히 어떤 혁신적인 신화를 기대했는데, 그것의 어렴풋한 형상조차도 보지 못했다. 그의 신화는 분명, 신기루였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구조주의 기호학자이자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는 조금 다른 차원의 신화를 얘기한다. 그는 자신의 기호학 이론에서 신화(myth)를 읽어내는 행위를 강조했다. 바르트가 말하는 신화는 이렇다.

미국의 TV시리즈 ‘슈퍼맨’ 포스터를 보고 있다고 가정하자. 파란 쫄쫄이와 빨간 타이즈 팬티를 입고 있는 슈퍼맨이 양쪽 허리에 손을 올리고 당당하게 서 있다. 그 뒤로는 미국 성조기가 펄럭인다.

우리는 이 사진을 통해 가장 먼저 근육질의 남성을 보게 된다. 그런 다음 머릿속에는 강인한 남성성, 혹은 남성의 성적 매력 등을 떠올릴 수 있다. 바르트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우람한 남성과 미국의 성조기가 오버랩되면서 그 속에 담겨 있는 의미를 읽어내는 작업을 신화라 불렀다. 슈퍼맨의 신화는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 이데올로기 정도로 볼 수 있다.

신화를 읽어낸다는 건, 겉으론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을 끄집어내는 제법 고단한 작업이다. 물 밖에 드러난 빙산의 일부로, 해수면 아래 있는 빙산의 모양과 형태를 추측하는 셈이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만으로 대상을 파악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평소 독서와 사색, 다양한 경험으로 내공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면 어떤 현상이나 사안의 신화에 접근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이유다.   

2007년, 많은 이들은 현직 대통령의 경제 살리기 이미지에 ‘혹’ 했다. 그 당시만 해도 이명박하면 곧 경제였다. 현대건설 최고경영자 경력과 서울시장 시절 보여줬던 청계천 복원과 버스중앙차로 신설은 그를 대통령 감으로 보이게끔 만들었다.

현실은 달랐다. 대다수의 시민들은 이명박이라는 기호에 감춰진 신화를 읽지 못했다. 경제대통령 이미지만 쫓았다. 정확히 말하면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 참여정부는 거듭된 실정으로 이미 민심을 잃은 뒤였다. 직선제 도입 후 가장 재미없는 대통령 선거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참담했다.  

변화의 시기다. 선택지는 일단 세 개다. 지지율도 엎치락뒤치락한다. 지금까지 나온 공약만 보면 세 후보 모두 큰 차이가 없다. 그래도 이미지는 뚜렷하게 다르다. 정치 혐오를 등에 업고 링에 오른 후보. 친노와 민주당의 후보이자 강직한 이미지의 후보. 그리고 아버지의 공과를 모두 업고 있는 원칙과 선거의 아이콘인 후보.

미디어의 발전은 이미지 정치를 가능하게 했다. 각 후보의 캠프는 어떻게 하면 세련된 포장을 할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한다. 그럴수록 시민들은 점점 이미지에 포섭되거나 혼란에 빠진다.

결국 이미지 뒤에 감춰진 각 후보의 숨겨진 이데올로기(사상)를 읽으려고 개개인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혹자는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데 이데올로기니 신화니 하는 것들이 무슨 소용이냐고 반발할 수도 있다. 물론 어렵다. 논란이 있는 사안에 다양한 관점의 기사나 자료를 접해봐야 하고, 때때로 깊은 고민도 해봐야 한다.

그러나 대안이 없다. 주요 언론이 제구실을 못하는 요즘, 투표권을 가진 시민들마저도 무관심과 냉소로 대선 후보를 일관한다면 한국 사회는 또 한 번 지난 5년을 반복할 수도 있다. 

신화는 있다. 감춰져서 보이지 않을 뿐이다. 지금은 그것을 읽어내려는 개개인의 작은 노력이 필요한 때다. 절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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