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교사 관계 정상화, 교육과 행정업무 분리로부터
학생-교사 관계 정상화, 교육과 행정업무 분리로부터
  • 권종현 우신중학교 교사
  • 승인 2012.11.16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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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종현 우신중 교사

“우리 아이와 얘기 좀 많이 나눠주세요. 우리 아이가 제 말은 안 들어도 담임선생님 말씀은 좀 듣거든요.” 학부모님들께서 가끔 하시는 말씀이다. “예, 그럴게요.” 라고 말하지만 사실 이것은 듣기 좋은 대답일 뿐이다.

학교에서 교사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 보통의 학생과 1:1로 일상의 대화를 나누는 것은 얼마나 가능할까? 요즘 어떤 친구와 사귀는지,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꿈이 무엇인지, 고민은 뭔지, 관심사는 무엇인지, 공부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힘든 것은 무엇인지 등의 대화를 얼마나 나눌 수 있을까? 상호 공감에서 출발하는 교육 본연의 활동이 학교에선 얼마나 가능할까?

필자의 경험으로 보건데, 학교는 공감과 이해, 돌봄과 성장을 위한 본질적 교육 활동을 중심에 놓고 설계된 기관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식 전달 또는 사고력 향상을 위한 수업을 중심으로 설계된 기관일까? 불행히도 이 또한 아니다.

17년 간의 교직 생활 중 학교가 정규수업의 질 향상을 위해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모습은 한 번도 못 봤다. 연구수업이라는 형식적 절차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서류를 보존하기 위한 수단일 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교는 방과후 프로그램이나 보충수업, 자율학습 등 학습시간의 양적 확대에만 관심을 갖는다.

학생과 소통 환경 안 되는 교원업무

이 과정에서 교사에게 요구되는 최고의 덕목은 행정업무 능력이다. 상급 기관이나 학교 관리자의 요구 사항을 일사불란하게 추진하고 시간에 맞춰 깔끔한 형식의 서류로 만들어 내는 능력이야 말로 승진의 필수 덕목이다.

학생과의 일상적 소통에 바탕한 학생 상담과 생활지도, 수업의 질 향상을 위한 연구와 개발은 교사의 개인적 양심과 헌신에 맡겨지는 선택적 덕목이다.

당연히 필수 덕목을 위해 애쓰는 교사가 승진을 해 관료가 되고 교육 정책을 쥐락펴락할 확률이 현저히 높다. 때론 필수 덕목 확보를 위해 선택적 덕목을 과감히 희생시킨다.

오히려 학생과의 소통, 공감, 이해, 창의적 수업 등은 거추장스럽기까지 하다. 이러한 학교 풍토 속에서도 끊임없이 아이들과 함께하며 보다 나은 수업을 위해 노력하는 교사들이 존경스럽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그들을 우대하지 않는다.

학교가 본질적 교육 활동은 등한시하면서 현존하는 교육 체제를 유지 및 강화하는 상황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그 실마리는 교육과 행정을 완전히 분리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오늘의 학교를 병원에 비유하자면 의사가 환자를 받는 업무부터 보건복지부에 대한 각종 보고 공문서 작성, 의료기 구입, 병원 청소 등 온갖 원무과 행정을 처리하며 틈틈이 치료 행위를 하는 꼴이다. 더구나 치료 행위가 아닌 원무 행위로 의사의 능력을 평가받는 꼴이다. 이런 병원에 환자를 맡겨놓고 의사를 탓한들 무슨 소용인가.

교사는 교육활동에 전념하게 해야

교사는 오로지 본연의 교육 활동에만 전념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학생의 상태를 진단하고 이해하는 활동, 그에 바탕한 상담과 생활지도 활동, 교과 전문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연구 활동, 학생의 상태에 맞는 교재 개발과 집단적 수업 연구 활동에 전념하도록 해야 한다.

교육 활동 속에서 보람을 찾고 교육 활동으로 평가 받으며 교육 활동을 잘 한 교사가 승진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시설관리, 학사운영, 학교홍보, 물품구비, 각종 보고 공문서 및 구비 서류 작성 등의 행정업무는 교육 활동으로부터 분리해야 한다. 행정 전담 부서를 만들고 행정에 전념할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1~2명의 추가 인력과 기존 인력의 재배치로도 얼마든지 교육과 행정업무를 분리할 수 있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이미 그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다행히 올해 서울시교육청은 교원노조와의 단체협약을 통해 대부분의 학교에 행정사무요원을 배치했다. 변화의 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는 큰 성과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아직도 변화를 실감하지 못한다.

기존 업무 구조를 고집하는 관리자들, 비정규직 인력배치에 따른 업무 연계성의 미흡, 전문성의 한계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번에 출마한 대통령 후보와 서울교육감 후보들은 교육과 행정업무 분리에 대한 명확한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평범한 교사들이 ‘내 아이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아이의 감성에 섬세하게 반응해 달라’는 학부모의 요구에 ‘물론이죠, 그것이 저희의 일이거든요’라고 ‘립서비스’가 아닌 진심으로 대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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