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어록 - 엄원태
어떤 어록 - 엄원태
  • 박성우 시인
  • 승인 2012.11.16 16: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산병원 8층에 오래 누워 계신 노모의 볼에
한바탕 뽀뽀를 해주고 왔단다
돌아갈 땐,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간단 말이 영락없이 맞더란다

당신만이 아는 사연을 새기느라 주름진 입술 오물거리며
힘겹게, 가시고 있는 중이어서
아무것도 묻지 않고
모쪼록 편안하시도록 많이 웃어주기로 했단다

쪼글쪼글, 줄어든 손등에 뺨을 부비며 그이는 용서를 구했다 한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라고 아이처럼 말했더니
그이는 말없이 눈물 한 방울, 주르륵 흘리셨다 한다

따로 어록을 기록해 둘 만한데,
병상에서의 몇 말씀이 천금 같으셨다 한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마음이다, 분열이란 없다”
“지금부터, 나의 행방은 어디로…”

팔순 노모는 췌장암과 치매로 가물가물,
생이라는 커다랗고 무거운 날개를 천천히 접고 있는 중이셨다

■ 작품출처 : 엄원태(1955~     ),  월간『현대시학』2012년 10월호.

■ 작년에도 아산병원에 병문안을 다녀왔었는데, 얼마 전에도 두 번이나 다녀와야 했습니다. 다행히 제가 면회를 가야했던 환자분들은 이 시적 상황처럼 “생이라는 커다랗고 무거운 날개를 천천히 접고 있는 중”은 아니어서 다행이긴 했습니다. 모두 수술을 잘 마치고 퇴원했고 지금은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들 있으니까요.
누구라도 늙어 아프면 “주름진 입술 오물거리며” 힘겹고도 한스럽게 한 생을 마감하게 되겠지만, 만만치 않게 늙었을 자식이 아픈 노모에게 “한바탕 뽀뽀”를 해주고 “모쪼록 편안하시도록 많이 웃어”주는 모습은 처연하고도 시큰하게 아름답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