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부터 진짜 추워진다는데…”
“오늘 밤부터 진짜 추워진다는데…”
  • 이인우 기자
  • 승인 2012.12.03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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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없이 내몰린 강남 넝마공동체 어르신들
▲2일 저녁 강남구 대치동 탄천제방에서 넝마공동체 회원들이 맨 밥에 김치 겉절이만으로 저녁식사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지난 28일 탄천운동에 마련한 임시거처에서 쫓겨나 하룻밤 지낼 곳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사진=이인우 기자]

주말 교외로 나갔던 나들이 차량들이 속속 집으로 돌아가는 2일(일) 저녁, 강남구 대치동 탄천 제방에 작은 저녁상이 펼쳐졌다.

묵직한 압력밥솥 하나에 반찬은 배추 겉절이 한 가지. 플라스틱 1회 용기에 밥을 퍼담은 60~80대 어르신들 20여 명은 차가운 맨 땅에 앉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선 채로 부지런히 숟가락을 놀렸다.

“서서 먹는 밥이 원래 맛있는 법이여~.”

누군가의 썰렁한 우스개에 몇몇이 공허한 웃음으로 맞장구치며 미지근해진 밥을 먹고 차가운 물로 입을 헹궜다. 지난달 28일 새벽 강남구청(구청장 신연희)의 강제 철거로 임시 숙소였던 강남구 대치동 탄천운동장에서 쫓겨난 넝마공동체 가족들이다.

이들이 선채로 저녁을 먹는 탄천제방 입구는 강남구청에서 동원한 제설차와 승합차로 길을 막고, 철거 용역으로 보이는 건장한 청년이 드나드는 사람들을 일일이 통제했다. 넝마공동체 회원들이 임시로 머물던 대치동 탄천운동장은 강남구청에서 포크레인을 동원, 모두 파헤쳐 놓아 발을 들여놓기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넝마공동체 회원들은 지난 1987년부터 강남구 개포동 영동5교 아래 터전을 잡고 헌옷이나 고물 등을 주워 팔며 생계를 꾸려왔으나 지난달 9일 강제 철거됐다. 30년 가까이 몸을 의지했던 터전을 잃고 탄천 운동장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 하지만 강남구청이 이마저 철거용역을 동원, 강제로 몰아내 난데없는 노숙자로 전락하게 됐다.

저녁식사를 마친 넝마공동체 회원들은 당장 하룻밤을 어디서 지낼지를 두고 입씨름을 벌였다.

29일과 30일 밤은 한 단체의 도움으로 1인당 7000원씩의 이용료를 내고 인근 찜질방에 머물렀으나 토요일인 30일에는 돈이 다 떨어져 강남경찰서로 몰려가 하룻밤을 지냈다. 경찰서 측은 차량을 제공할테니 노숙자 쉼터로 가라고 했으나 회원들은 완강히 거부했다.

자신들은 자활공동체회원이지 노숙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탄천 제방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한 70대 회원이 “이대로 있으면 누군가 큰 탈이 날 것”이라며 “어찌 됐든 몇 명씩 나눠 노숙자 쉼터로 가자”고 주장했다.

회원들과 함께 식사를 마친 윤팔병 전 넝마공동체 대표는 “혼자 가는 건 누가 뭐라지 않으니까 알아서 결정하시라”며 “그렇지만 식구 모두 노숙자 쉼터로 가자는 얘기는 하지 말아 달라”고 지적했다.

이날 공동체 회원들은 결국 마지막을 다짐하며 다시 찜질방으로 향했다. 탄천운동장에서 쫓겨난 뒤 받은 시민의 후원금 중 마지막 몇 만 원을 모두 쓰게 됐다.

넝마공동체 회원들은 돈이 없다. 이들은 매월 1만원의 회비를 내면 한 달 간의 숙식을 공동체에서 해결할 수 있다. 그렇다고 놀고  먹으면 안 된다. 넝마공동체의 첫 째 조건은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로 정해놓았다.

회원들은 매일 강남 아파트 단지에서 흘러나오는 재활용 쓰레기를 모아 최소한의 공동체 운영자금을 만들고 수익은 나누어 쓴다. 강남구청은 이들에게 임대주택 우선 입주권 등의 혜택을 주겠다며 영동5교 아래와 탄천운동장의 숙소를 강제 철거했다. 하지만 아파트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보증금 없이 거저 아파트 입주권을 준다고 해도 한 달 관리비는 커녕, 수도세, 전기세 낼 돈도 없기 때문이다. 넝마공동체 회원들은 3일 다시 탄천 제방으로 나왔다. 이곳 말고는 갈 데가 없다. 당장 이날 밤이 문제다.

서울은 오후부터 비나 눈이 온 뒤 기온이 급격히 떨어질 것이란 기상예보다. 한 회원의 말대로 “이대로 있으면 누군가 큰 탈이 날” 시간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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