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馬)춤’과 ‘말(言)춤’
‘말(馬)춤’과 ‘말(言)춤’
  • 김진웅 교수
  • 승인 2012.12.08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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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들의 어설픈 말 춤과 정치의 신격화
▲김진웅 교수

바야흐로 말춤 전성기이다. 가수 싸이는 ‘말(馬)춤’으로 단숨에 한국은 물론, 전세계를 무대로 기쁨을 선사하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남녀노소, 신분귀천을 불문하고 모두가 말춤을 따라하면서 즐거워한다.

그의 말춤은 기록을 경신하면서 끝없이 질주하고 있다. ‘강남스타일’의 말춤은 그동안 아득한 장벽처럼 느껴졌던 한류문화 코드의 한계도 단숨에 뛰어넘었다. 그에게 말(言)이 지닌 제한성은 중요하지 않다. 강남스타일에서는 춤이 핵심이다.

그렇다고 가수가 노래보다 춤에 열중한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노래든 춤이든 아무래도 좋다. 모두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선사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싸이의 말춤은 오락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한편 요즈음 정치인들의 ‘말(言)춤’ 역시 넘쳐난다. 그것도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대통령선거에서 현란한 말춤을 춘다. 정치인은 춤이 아니라, 말이 중요하다. 말(言)은 곧 행동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말은 행동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말은 실천의 책임을 동반한다. 그래서 신중을 요한다. 반드시 차후에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만 말해야 한다. 그들에게 말은 춤과 함께 할 수 없다.

사실 춤은 일상생활적 행위가 아니다. 춤은 축제, 놀이에 등장하는 단골메뉴이다. 춤을 추는 자, 이를 보며 환호하는 자, 모두 잠시 일상을 떠나게 된다. 그렇다고 춤을 통해 현실의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잠시 잊게 될 뿐이다. 춤을 비롯한 엔터테인먼트는 노동에 지친 소외된 현대인을 어루만져주는 유희수단이다. 나아가 사회적 재생산을 지속케하는 윤활제이기도 하다.       

어떤 정치인은 어설픈 동작으로 싸이의 말춤을 흉내낸다. 그의 말춤이 즐거움을 주는 의미에서 끝나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말(言)의 무게를 호도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고단한 시민들의 삶을 위한 진정한 말과 실천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정치인에게 ‘말(言)+춤’은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이다. 나아가 그들의 말 역시 춤추는 말로 전락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한 대통령이 취임 후 ‘국민 여러분의 머슴이 되겠습니다’라고 공언한 기억이 생생하다.하지만 실제는 마치 자신이 주인인 듯 군림했던 인상이 진하다.

그의 말은 약속의 인포메이션(Information)이 아니라 말춤이었던 것인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싸이의 말춤을 정치인만은 따라 해서는 안된다. 정치인의 위상이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우리의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류시화 시인은 산문집 <딱정벌레>에서 “삶은 퇴색해 가고 정치가들은 득세한다.

아무도 정치가들을 믿지 않는데 아직도 그들이 우리 위에 군림한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라고 꼬집었다. 이번 선거에서 처음 투표하는 한 제자는 설레임 대신, 정치인들의 말춤같은 공약에 실망감을 토로한다.   

여당 야당 가릴 것 없이 정치인 모두가 국민의 신뢰를 잃은 현실은 슬픈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럼에도 길거리 유세차량에서는 희망의 메시지와 율동과 로고송이 넘쳐난다. 또 그들이 지지하는 후보는 자꾸만 ‘신격화’되는 느낌이다. 그들의 말춤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

진정 국민이 기쁘면 국민 스스로 춤을 출 것이다. 후보와 그 지지자들의 말춤, 이들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무표정은 정치권과 국민 사이를 가르는 깊은 골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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