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을 쉽게 말하는 사람들
‘사회적…’을 쉽게 말하는 사람들
  • 김원진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3학년
  • 승인 2012.12.07 1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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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겁을 했다.
요새 매일같이 마주치는 지하철 광고 때문이다. 사회적 기업이라는 명패를 건, 제2금융권에 속한 회사의 광고다.

‘사회’가 들어갔으니 금리는 조금 싸려나 싶어 광고 하단에 적힌 깨알 같은 숫자에 눈길을 돌려봤다. 39%.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였다. 물론 이 대부업체는 농협이나 국민은행과 같은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지분을 갖고 있어 차별점이 있긴 하다.

실제로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서민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갖춰져 있다. 사회적 기업으론 첫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고도 한다. 그럼에도 과연 사회적 기업이라는 칭호가 어울리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최대 금리 39%와 ‘사회적’이라는 말은 아무리 봐도 어색하다.

너도나도 사회적 기업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사회적 기업을 창업한다고 분주한 이들이 꽤 많다. 서울시는 몇 해 전부터 사회적 기업을 일구는 청년에게 창업 지원을 한다. 공모전도 제법 많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의 타임라인을 보면 기업경영이나 창업에 관심 있는 친구들은 한번쯤 사회적 기업 관련 분야에 발을 들여 놓는다.   

한국 사회에서 기업에 윤리를 요구하는 현상이 눈에 띈 지는 꽤 오래됐다. 요새는 착한 소비자니 공정 무역이니 하는 말을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대기업은 사회적 책임(CSR) 관련 부서를 만들어 두둑한 예산을 배분한다.

이들은 사회공헌활동이라는 이름으로 문화활동을 지원하거나 취약계층의 경제적 자립에 도움을 준다. 성숙한 시민의식이 기업에 사회적 책임과 적절한 윤리를 요구하고 이를 통해 기업의 구체적인 활동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선 일단 긍정적이다.

흔히 ‘사회적’(social)이라는 개념은 공동체를 떠올리게 한다.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분배를 중요시 하는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라든지 국가가 강제성을 띠고 보험제도를 활용하여 취약계층을 보호하려는 사회보험(social insurance)이 그 예다. 시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인 사회권(social rights)도 중요한 개념 중 하나다.  

그렇다면 사회라는 개념이 기업과 맞물렸을 때, 제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일까. 기업의 사회공헌(CSR)팀에 근무하는 선배는 본인이 속한 조직을 이미지 조작 전담팀이라고 칭했다. 어떻게 돈을 쓰면 선하게 보일까 고민하는 조직이라고 푸념했다. 윤리? 책임의식? 애당초 그런 건 없었다고 한다.

광고나 PR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고 이 선배는 말했다. 물론 성공 사례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한국담배인삼공사(KT&G)의 문화복지사업은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사회적 기업은 그나마 조금 낫다. 성공 사례도 제법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신는 탐스슈즈는 신발 한 켤레를 팔면 빈민가 아이들에게 다른 신발 한 켤레를 제공한다.

제법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많다. 다만 사람들이 이 사례를 분석할 때 ‘기부 마케팅’의 시각으로 접근한다. 결국 기부도 기업 마케팅의 일환이라는 얘기다.

한국의 사회적 기업은 주로 20~30대가 이끌어간다. 성공 모델은 드물다. 주변에 사회적 기업에 뛰어들었던 지인들을 보면 대부분 어려움을 겪는다. 이윤창출은 해야 되는데 사회에 기여도 해야 한다.

수익은 크게 날 수 없고 사업은 성장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가가 해야 할 취약계층 보호를 청춘의 도전(혹은 창업)이라는 이름으로 대신하며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스쳐지나간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정상적인 수준의 최저임금을 지급하고 노동시간을 준수하는 기업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여성 노동자를 보육 문제에서 보다 자유롭게 해주는 기업이 진짜 사회적 기업이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아닐까.

적어도 사업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위중한 병에 걸렸을 때 발뺌부터 하고 보는 기업을 두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라 볼 순 없지 않은가.

우리는 공허한 ‘사회’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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