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자본구 1-하종오
서울특별시 자본구 1-하종오
  • 박성우 시인·우석대교수
  • 승인 2012.12.09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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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 4동 산중턱
좁은 골목 낮은 철제 대문 옆 보안등은
그애가 집을 나설 때면 켜지지요.

숙인 얼굴 속에
어릴 때 담았던 들꽃은 이미 시들고
진한 화장에 멋진 양장을 차려입은 그애가
그림자 길게 끌며 어둠 속으로 내려간 뒷면
그애 손에 피땀 대신에 술이 넘치고
그애 눈가에 눈물 대신에 웃음이 번지지요.

작은 사랑도 없이 큰 분노도 없이
눈동자는 흐려 세상끝까지 흐느적이며 가는 자신을 보지만
돈 때문에 돈 때문에
온몸이 망가져도 그 까닭에 대해선 말할 줄 모르지요.

취한 몸 이끌고 돌아오는 새벽이면
하늘은 돌아누워서 별들을 감추고
붉은 달도 기울어 그애를 내려다보지 않지요.
신당 4동 산중턱
싸늘한 보안등 불빛을 받으며 골목을 돌아드는
그애는 이제 소녀시절에 품었던 별빛도 사위고
달빛에 아름다워지던 추억에도 입 다물지요.
밤하늘에 더 이상 마음을 주지 않지요.
왜 그애가 그리 되었는지 누구나 짐작하지요.
오오, 자본주의는 무서워라, 그애를 살리지 못하지요.
그애에게 결백을 바라는 자 아무도 없지요.

신당 4동 산중턱
좁은 골목 낮은 철제 대문 옆 보안등은
그애가 돌아와 쓰러져 흐느끼다 잠들 때면 꺼지지요.

■ 작품출처 : 하종오(1954~     ),  시집『젖은 새 한마리』

■ 감기에 걸렸다고 쉴 수 있는 회사는 없겠지요. 또한, 급한 일이 생겼다고 해도 회사일이 우선시 되고는 하지요. 사는 게 그렇습니다. 우리는 죽으나 사나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돈 버는 기계처럼 아침마다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해야 하니까요.
그래요.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들 하지만, 미친척하고 내려놓고 싶을 때가 한 두 번 아니겠지요. 어쩌면 우리들은 자신보다는 가족을 위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니까요. “오오, 자본주의는 무서워라, 그애를 살리지 못하지요.” 그놈의 돈 때문에 저녁에야 출근을 하는 ‘그애’의 슬픔이 더욱 씁쓸하게 느껴지는 자본주의의 겨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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