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기부 몇 가지
내 생애 기부 몇 가지
  • 최소영 회사원
  • 승인 2012.12.14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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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건강한 몸, 건강하게 쓰고 나눠드리겠습니다.
어제 집 앞에 새 해 달력 하나가 놓여있었다. ‘한 마음 한 몸 운동본부’에서 보낸 달력이었다.

조혈모세포를 기증하겠다는 신청을 하고 난 다음부터 매 해 달력이 온다. ‘꼭 맞았으면 좋겠다.’ 올해 달력의 컨셉이었다. 달력을 볼 때 마다 누군가 한 사람과는 꼭 맞았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해가 바뀌어 달력을 받을 때 마다, 나는 절반은 감사하고 절반은 아쉽다. 내 짝꿍이 아프지 않아 다행이어서 감사하고, 아직 내 짝꿍이 나타나지 않아 아쉽다.

조혈모세포 기증은 백혈병 환자들에게 가장 큰 희망이고 선물이라고 한다. 환자와 기증자의 조직적합성 항원(HLA)의 유전자형이 일치해야 기증과 이식이 가능한데, 그 확률은 수천 에서 수만 분의 일. 가족 중에 일치하는 HLA 유전자형이 없다면, 그 환자의 완치 희망이 현실이 될 확률이 수천, 수만 분의 일인 셈이다.

몇 년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의대에 진학을 위한 시험을 준비했다. 물론 나는 지금 의사가 아니라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고 있지만, 의사가 되겠다던 그 결심과, 공부를 하면서 내가 알게 된 이웃과 공동체와 삶에 대한 많은 깨달음은 내 남은 생애를 더욱 풍요롭게 해주리라 생각한다.

아무튼, 의사가 되겠다는 결심과 함께 1월 1일 새해 첫 미사를 드리러 가는 길에 들렀던 곳이 명동성당 아래 장기기증희망신청센터였다.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되겠다는 결심까지 해놓고, 이런 일을 외면하면 되겠냐는 아주 작은 이유에서. 어차피 천국 문턱에 가있다면, 나는 아무것도 모를 텐데, 건강하게 쓴 내 몸을 누군가에게 건강하게 남겨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장기기증희망 신청서를 작성하고 돌아서는데 직원분이 혹시 조혈모세포 기증희망 신청서도 작성해줄 수 없겠냐고 물어보았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신청서를 쓰고 혈액샘플을 채취해두고 나왔다. 함께 갔던 친구가 물었다. “안 무섭냐?” “응!” “어째서 안 무섭냐?” “확률 때문에, 유전자가 꼭 맞을 확률이 수천수만 분의 일 확률이면 그 사람과 나는, 꼭 만나야 할 인연 아니겠냐. 어쩐지 나는 그 사람을 꼭 보고 싶다. 그 인연이라면, 주사바늘이 조금 아파도 꼭 만나봐야 하지 않겠냐?”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서, 부산에 있는 가족들에게 전화를 했다. ‘장기기증, 조혈모세포기증 희망신청서를 내고 오는 길인데, 설명을 들어보니 뇌사상태에서 오래 시간을 끌면 다른 사람에게 이식이 가능할 정도의 건강한 장기를 적출하기 힘들다는 얘기를 하더라.

그러하니, 혹시 나에게 어떤 일이 생겨 병원 측의 전화를 받으면, 우리 딸 얼굴 한 번 만 보게 해주세요, 하기보다, 네, 그 아이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동의합니다. 먼저 이야기해 달라’ 고. 우리 가족은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아참, 그리고 올 해 2월 29일. 몇 년에 한 번꼴로 찾아오는 이 날을, 무엇을 하며 의미 있게 보낼까 생각하다가 인체조직기증희망 신청서도 써서냈다.

나는 이 일들을 기억하며, 오늘도 건강하게 지내주고 있는 내 몸에게 인사한다. 여전히 건강하구나. 누구와 나눠도 괜찮겠구나. 고마운 일이다. 하고.

두 번째. 얼마 전, 돈이 생겼다. 25만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인데다, 나에게는 적지 않은 돈이라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그 기쁨은 또 얼마나 큰지.

가방 안에 들어있는 그 봉투를 보는 내내 흐뭇했다.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 돈을 어떻게 쓸까, 연말인데, 나한테 좋은 선물 하나 해줄까, 그 때 봐둔 그 옷 사면 좋겠다, 좋은데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좋겠다, 온갖 행복한 상상들을 떠올렸다.

그런데 그 때 함께 떠오른 아이의 얼굴이 있었다. 작은 몸으로 쪼그리고 앉아 때꾼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사진 속의 그 아프리카 아이. 손에 작은 빵 부스러기가 들려 있었다.

그 사진은 언젠가 내가 배가 너무 고파 혼자서 브런치 2인 세트를 먹어치우던 날 읽던 잡지에서 본 사진이다. 나는 그 때, 내 배가 무척 고팠음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이런 호화스러운 밥상에 앉아 이 돈을 내며 식사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생각해보았다.

아이한테 미안했다. 그런데 이미 먹다 만 밥을 어쩔 수 없어 반나절이 지나도록 거기 앉아 그 음식을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나왔다.

그런데 내가 25만원이 든 봉투를 보며 헤벌쭉 하고 웃을 때 하필 그 아이 얼굴이 갑자기 떠오른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바보의 나눔’이라는 기부재단에 접속해 비정기후원 25만원을 약속했다.

그 25만원은 내 가방 안에 들어 온지 세 시간 만에 후원금 계좌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일 년 정도 이런 저런 이유로 막혀있던 정기후원 계좌도 다시 열었다. 출금일은 월급날 바로 다음 날짜로.

다음 날인가, ‘바보의 나눔재단’에서 입금확인이 되었다고 전화가 왔다. 고맙다는 인사도 함께. 그리고 왜 후원을 하게 되었는지 물어봤다. “그냥요…”하고 싶었지만, 어쩌면 다시 말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 그 돈이 생기게 된 사연부터 왜 하필 ‘바보의 나눔재단’에 기부를 결심했는지 이야기했다.

그 직원은, 셀 수 없이,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해주셨다. 전화를 끊으며 말했다.
“그 돈을 제가 받았을 때, 저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라 정말 기뻤습니다. 그래서 제가 기부한 그 돈을 받으실 분에게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예상치 못했던 도움을 받아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따뜻한 마음이 들었다. 그 돈은 그 직원 분이 쓸 돈도 아니고, 내가 쓸 돈도 아닌데, 우리는 서로에게 고맙다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보다 어려운 누군가를 위해 쓰일 그 돈을 두고, 그 분과 나는 서로 감사 인사를 나누느라 먼저 행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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