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과 ‘채움’의 미학, 아니쉬 카푸어
‘비움’과 ‘채움’의 미학, 아니쉬 카푸어
  • 정민희
  • 승인 2012.12.14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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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쉬 카푸어_동굴.
‘비우면 비울수록 더 많은 것이 담기고, 비운다는 것은 곧 채우는 것’. 이는 음과 양의 균형으로서 우주의 섭리가 순환된다는 동양의 공(空)사상과 상통하는 듯하다.

인도 봄베이출신으로 영국에서 미술교육을 받은 아니쉬 카푸어(1954~  )는 동서양 사상의 깊이를 받아들여 형식적인 미술보다 심리적이고 명상적인 세계의 탐구에 작업의 뿌리를 두고 있다.

여기서 단순하게 이질적인 양대 문화의 융합을 넘어서 더욱 보편적이고 신비로운 초월적인 세계에서 인간 삶의 진리를 들여다보고 마음을 정화하는 치유의 힘으로서의 예술을 읽어낼 수 있다.

고향의 고유한 정체성을 평생 작품 속에 녹아내린 카푸어는 인도의 힌두사원에서 영감을 받아 붉은 색을 가장 즐겨 사용한다.

▲ 아니쉬 카푸어_큰 나무와 눈 Tall Tree and the Eye.
80년대 세계미술계에 명상적이고 고요한 안료작업은 신선한 충격을 주는 한편,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공간에의 탐구로 발전시켰다. 민족의 토착색인 붉은 색은 붉은 대지로서의 고향, 어머니로서의 대지이고 탄생의 장인 셈이다.

형태적인 면에서 카푸어 작업의 핵심은 ‘보이드’로 조각의 내부 공간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냄으로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했다. 내부가 텅 빈 ‘보이드’ 작품에서는 동양의 음양사상을 형상화한 듯 안과 밖이 공존함으로써 역설적인 채움의 조화를 보여준다.

“어두운 심연의 응시할 때, 심연도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라는 니체의 경고를 구현하는, 어둠이라는 물리적인 깊이의 한계를 넘어선 무한 공간은 인간이 느끼는 숭고함과 경외감의 근원까지 이르게 하면서 신비감을 더한다.

대나무 줄기가 여러 그루로 보여도 땅 아래에서 하나의 뿌리에 연결되듯이 너와 나는 남남이 아니다.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자, 그리고 화가의 철학을 담은 작품 역시 시간과 공간의 구체적인 관계를 하나로 맺도록 만드는 것이 예술의 완성임을 카푸어의 작품에서는 읽어낼 수 있다.

시공간을 넘어선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가진 카푸어는 1990년 베니스 비엔날레 영국관 작가로 선정, 1991년 터너상을 수상하며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됐다.

한국의 TV광고에서도 접할 수 있는 미국 시카고 밀레니엄 공원의 스테인레스 스틸 공 모양의 거대조각 ‘구름 대문 Cloud Gate', 2012년 런던올림픽 때 오륜을 형상화한 114.5미터의 조형물 ’궤도 Orbit'등으로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 아니쉬 카푸어展. ~1월 27일까지. 리움미술관. 02)2014-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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