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지도자
49%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지도자
  • 권종현 우신중학교 교사
  • 승인 2012.12.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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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종현 우신중 교사

많은 사람들의 입과 귀와 손과 발을 분주하게 움직이게 했던 선거가 끝났다. 새로운 대통령과 새로운 서울시교육감을 뽑았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철학과 가치를 공유하는 대통령과 교육감이 당선되었다. 어떤 이들은 위기로부터 국가의 정체성과 교육을 지켜냈다고 환호하고, 어떤 이들은 믿기 어려운 결과가 나타났다며 탄식한다.

환호와 탄식이 공존하는 대한민국의 밤이다.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에 울리는 환호의 함성 소리가 더 높을까, 곳곳의 선술집 및 각종 SNS상에 드리운 깊은 한숨 소리가 더 깊을까.

이제 높은 환호의 함성과 깊은 탄식의 한숨의 간극을 좁혀야 할 과제는 당선된 분들의 몫이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 새로운 대통령과 교육감은 함성보다는 한숨 속에 담긴 목소리에 좀더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당선인들이 선거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다소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 대통령 당선인은 마지막 후보자 토론회에서 합법적 노동조합인 전교조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드러냈다. 대통령 후보자가 일개 노동조합을 특정해서 말하며 전교조는 대화의 상대조차 될 수 없다는 인식을 여과없이 표현했다.

교육감 당선인은 한 걸음 더 나가 전교조로부터 서울교육을 지키고 학교와 학생을 지키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두 당선인의 선거 과정에서의 말대로라면 전교조는 당장 척결해야할 대상이고 그들의 목소리엔 조금도 귀 기울일 가치가 없다. 대통령 당선인이 약속한 100% 대한민국 속에 그들은 속하지 않는다.

선거 과정에서 선거 구도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 과장된 언술을 구사했을 수도 있다.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오늘밤 공존하는 함성과 탄식은 결코 수렴될 수 없다. 비판 세력의 목소리를 전교조를 비롯하여 하나씩 제거하다 보면 49%를 버려야 한다. 결국 51%도 챙기지 못하는 앙상한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

두 당선인이 펼칠 우리 교육의 방향을 짐작해 본다. 협동보다는 경쟁을 통한 인재 양성, 인권보다는 책임과 질서, 보편적 교육복지보다는 선별적 교육복지, 사학 재단에 대한 책임 요구보다는 자율권 강화, 각종 선택권 보장, 학교장에 대한 자율권 강화….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절대적 선악의 문제로 판단할 수 없다. 경쟁과 효율의 강조는 협력과 형평에 의해 보완되지 않으면 결코 이로울 수도 정의로울 수도 없다. 두 당선인이 49%의 목소리를 배척하지 말아야하는 이유다.

동네 화원을 들어가면 엄동설한에도 싹을 틔우는 꽃들이 있다. 예쁘게 피어나는 싹을 보면 옛날 중국 송나라의 어리석은 농부가 생각난다. 모내기를 한 후 다른 사람들의 것보다 덜 자란 자신의 모가 안타까워 잡아 빼주어서 빨리 잘 자라게 하려다가 모두 말려 죽였다는 어리석은 농부의 이야기다.

맹자에 나오는 발묘조장(拔苗助長)의 이야기다. 어제 땅을 헤집고 고개만 간신히 쳐든 싹이 애처로워 내 욕심으로 잡아 뽑아 주었다면 오늘의 예쁜 싹은 못 보았을 것이다.

우리의 교육환경과 모든 제도가 혹시 싹을 미리 잡아 뽑는 시스템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조금만 영특함을 보이면 영재라고 부추겨 아이들의 머리를 쥐어짜는 수많은 영재학교, 학원, 특목고, 자사고 등등. 우리가 어렸을 때 묘기대행진이란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그 많던 영재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적당한 온도와 습도 그리고 햇빛과 공기 등의 사랑과 관심이면 싹은 저절로 자기 고유의 이치를 펼치게 마련이다. 하루 더 빨리 싹을 틔울 수도, 며칠 더 늦게 싹을 틔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스스로 싹을 틔우는 생명이 건강하고 예쁠 것이다.

새로운 대통령과 서울교육감이 설계하고 추진할 교육에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경쟁, 효율, 선택, 집중, 자율, 인적 자원 등의 용어가 가리키는 순기능에 대한 51%의 기대와 함께 발묘조장(拔苗助長)의 역기능을 우려하는 49%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며 균형을 찾아가는 대통령과 교육감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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